개정판《서유기》역자 서문

중국 현대 소설의 비조(鼻祖)이자 중국 고전소설 연구의 선구자라고 할 수 있는 루쉰(魯迅, 1881~1936)이 《봉신연의(封神演義)》, 《삼보태감서양기(三寶太監西洋記)》와 더불어 고대 중국을 대표하는 ‘신마소설(神魔小說)’로 꼽았던 《서유기》는 그 가운데서도 오락성과 우의성(寓意性), 상징성이 가장 풍부하고 이야기 구성이 뛰어난 걸작으로 평가된다. 이 작품은 현장(玄奘: 602~664)이라는 실존 인물을 모델로 문학적 상상을 덧붙여 만들어 낸 삼장법사와 그의 제자로서 도를 수련하여 술법을 익힌 원숭이인 손오공, 하늘나라의 신선이었다가 죄를 지어 인간 세계로 내쫓긴 저팔계와 사오정, 그리고 용왕의 아들인 백마를 설정하여 석가모니가 있는 ‘서천(西天)’을 향한 십만 팔천 리의 장정(長程)을 주파하게 한다. 온갖 유혹과 일행을 노리는 요괴의 위험이 도사린 이 여정에서는 도술과 요술이 뒤얽힌 환상적인 전투와 기발한 술책이 쉼 없이 이어지면서 흥미와 박진감이 넘친다. 바로 이런 점 때문에 이 작품은 일찍부터 중국은 물론이고 한국과 일본, 베트남까지 동아시아 여러 지역에 널리 유행하여 다양한 파생 상품들을 많이 만들어 냈다. 이 덕분에 우리나라 독자들은 이미 어릴 적부터 즐겨 보았던 만화 또는 애니메이션을 통해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과 대표적인 몇몇 장면을 익히 알고 있기도 하다.


그러나 총 100회의 장편 이야기인 이 작품을 번역을 통해서라도 처음부터 끝까지 완독한 독자는 의외로 대단히 드물다. 작품의 분량이 길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정밀한 역주가 포함된 번역서가 우리나라에서 간행된 역사가 채 20년이 되지 않기 때문이다. 물론 그 이전에도 작품 전체를 번역한 책이 간행된 적은 있지만, 전문적인 역주의 도움이 없이 이 작품에 담긴 심오한 도교 사상과 정밀한 문학적 수사를 통한 풍부한 상징과 은유를 깊이 있게 이해하는 데에는 상당한 어려움이 있었다. 이 또한 ‘완독’을 해낸 독자가 드물었던 이유 가운데 하나가 될 것이다.


《서유기》는 ‘고전 명작’이라는 수식어에 충분히 어울리는 다양한 해석 가능성을 품고 있는데, 당연히 그것은 이 작품의 문학적 성취 덕분에 나타난 결과이다. 먼저 이 작품의 주요 등장인물들은 그 이름을 지을 때부터 정교한 의미를 담았다. 삼장법사의 ‘삼장(三藏)’은 율장(律藏)과 경장(經藏), 논장(論藏)을 포괄하는 일체의 불교 경전이라는 뜻이지만, 이 작품에는 오히려 불교와 도교를 포함한 일체의 절대 지혜를 의미한다. 다만 작품 속의 삼장법사는 이미 완성된 절대 지혜가 아니라 그것을 향해 나아가는 수행자의 모습으로 설정되어 있다. 돌에서 태어나 원숭이 왕이 되고 옥황상제의 권위에 도전하는 용맹한 존재에서 방종을 구속하는 머리테를 쓴 채 삼장법사의 제자로서 새로운 수행을 나서게 된 손오공(孫悟空)은 절대 지혜의 다른 이름인 ‘공(空)’을 ‘깨닫기[悟]’에 ‘모자라고[遜]’ 어린 존재라는 뜻이다. 그러므로 서천을 향한 여행에서 그는 끊임없이 자신의 승부욕과 명예욕을 상대로 싸워야 한다. 물론 그 승부욕과 명예욕은 때로 ‘가짜 손오공’이나 다른 요괴의 형태로 나타나기도 한다. 저팔계(豬八戒)는 승려 즉 수행자로서 지켜야 할 기본적인 계율인 ‘팔계(八戒)’를 ‘저해’(저[豬]와 저[沮]는 발음이 유사하므로)하는 탐욕적이고 게으른 돼지의 품성을 지니고 있으니, 여행을 통해 그 결함을 극복해야 한다. 또 그의 원래 법명인 ‘오능(悟能)’이 암시하듯이 게으름을 이기고 자신의 ‘능력[能]’을 ‘깨달아야’ 한다. 사오정은 유사하(流沙河)의 요괴라는 인간 세계의 신분과 청정한 ‘정토[淨]’에 이르는 길을 ‘깨달아야’ 하는 주인공임을 암시한다.


다음으로 이 작품의 주제는 독자의 관점에 따라 여러 가지로 해석될 수 있도록 안배되어 있다. 우선 삼장법사 일행이 서천에서 가져와야 하는 불경은 수행자 개인의 해탈만을 중시하는 것이 아니라 고난에 시달리는 ‘중생’을 제도하여 구제하는 보시(普施)를 통해 공덕을 쌓아서 부처의 길로 가는 대승불교의 경전이다. 그러므로 이러한 그들의 여정을 방해하는 요괴들은 적폐를 옹호하는 부패한 기득권 세력이다. 사람을 잡아먹는 요괴라는 것은 달리 말하자면 백성을 수탈하는 권력자이고, 그런 존재를 제거하는 삼장법사 일행은 사회적 병폐를 치유하는 혁명 세력이다. 그러므로 요괴들은 그 세력의 수장을 잡아먹어서 ‘영생(永生)’ 즉 안정적인 기득권을 확보하고자 혈안이 된다. 하지만 관점을 달리해서 보면 이 작품은 원시적 욕망을 지닌 생명체에서 수행을 통해 부처와 같은 지고한 경지에 오르는 과정을 은유한 종교 경전이자 철학서이기도 하다. 사실 승려인 삼장법사를 전면에 내세우면서도 이 작품에는 도교와 관련된 내용이 주를 이루고 있으니, 남송(南宋) 전진도교(全眞道敎) 도사인 취현자(翠玄子) 석태(石泰: 1022~1158)가 지은 81편에 이르는 오언절구(五言絶句) 《환원편(還原篇)》과 역시 같은 도교와 도사인 마단양(馬丹陽: 1123~1183)의 《점오집(漸悟集)》, 장백단(張伯端: 983~1082)의 《오진편(悟眞篇)》 등에 들어 있는 많은 시 작품이 곳곳에서 인용되고 있는 데에서도 알 수 있다. 또 삼장법사 일행이 고난을 겪는 낙태천(落胎泉)이 상징하는 도교 수행──‘영아(嬰兒)’ 즉 ‘원신(元神)’을 기르는 내단(內丹) 수련──의 단계랄지, 삼장법사가 부처를 만나기 전에 접인조사(接引祖師)가 상앗대를 잡은 바닥없는 배를 타고 능운도(凌雲渡)를 건널 때 육신을 벗어 던지는 ‘시해(尸解)’를 이루는 장면(제98회) 등은 이러한 해석의 충분한 근거를 제공한다. 이럴 경우 장안에서 서천에 이르는 동안 삼장법사 일행이 겪는 81개의 고난은 득도하여 ‘정과(正果)’를 이루기 위한 헤아릴 수없이 많은 단계와 그것을 방해하는 장애 즉 ‘마장(魔障)’을 의미한다고 할 수 있다.


사실 이러한 이유로 이 작품을 외국어로 번역하는 것은 대단히 어려운 일이고, 심지어 작품에 내재한 풍부한 은유와 상징을 두루 설명하는 역주를 붙이는 작업도 완벽하게 해내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여기에 덧붙여서 이 작품에 적지 않게 포함된 원나라 말엽부터 명나라 중엽까지 민간에서 사용되던 속어들도 번역의 난이도를 높여 놓았다. 《서유기》는 민간 이야기꾼의 공연 대본을 문인의 손으로 다듬어 재구성하는 방식으로 장편소설을 만드는 당시의 전형적인 관례에 따라 나온 대표적인 작품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이 때문에 이 작품에서는, 특히 대화문에서 많은 속어가 사용되었다. 하지만 이 분야에 관한 학술적 연구는 비교적 최근에야 일정한 성과물이 나오고 있는 실정이기 때문에, 20세기 초기에만 하더라도 마땅히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었다. 우리가 이번 수정본을 기획하게 된 가장 큰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15년 전에 나온 우리 번역본 초판은 이와 같은 한계로 인해 불가피하게 생긴 오역이 (관점에 따라서는 그다지 심각하지 않은 것도 제법 있지만) 있었기 때문이다. 다만 이번 수정본에서도 작품에 인용된 도교 관련 시들에 대한 좀 더 정밀한 해설은 보류할 수밖에 없었다. 이 부분까지 깊이 있게 해설하기에는 역자들의 역량이 아직 충분하지 않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 이 부분은 그야말로 전문 연구자들의 몫이기 때문이다.


《서유기》는 감각적인 재미와 이성적인 사색을 위한 단서를 동시에 제공하는 명실상부한 ‘고전 명작’이다. 동양적 판타지의 진수를 보여주는 이 작품은 지금도 애니메이션과 게임, 영화, 판타지 등등 여러 분야에서 새로운 콘텐츠를 생산하는 데에 훌륭한 자료가 되어 주고 있다. 최근에 전 세계적인 인기를 누린 《반지의 제왕》이 바로 여기에서 영감을 얻어 창작되었다는 사실은 이 작품의 위상과 가치를 대변하고 있다. 그러므로 우리나라 독자들도 이제는 ‘장난꾸러기 손오공’과 ‘답답한 사오정’ 등의 피상적인 인상에서 벗어나 진정한 고전 명작에 담긴 깊은 맛을 감상해 볼 필요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를 위해 우리의 번역본이 의미 있게 기여할 수 있기 바란다.

2019년 가을 역자를 대표하여
백운재에서 홍상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