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석문향釋文珦 입동일에 야외에서 거닐며 시를 읊다立冬日野外行吟

입동일에 야외에서 거닐며 시를 읊다立冬日野外行吟/송宋 석문향釋文珦

吟行不憚遙 시 읊고 거닐 때 멀어도 괜찮으니
風景盡堪抄 초겨울 풍경 다 감상할 수 있다네
天水清相入 하늘과 물 맑은 기운 서로 보내고
秋冬氣始交 가을과 겨울 절기가 이제 바뀌네
飲虹消海曲 무지개는 바닷가 물을 마시고 있고
宿雁下塘坳 기러기는 우묵한 연못에 내려앉네
歸去須乘月 달이 떠오를 때 돌아가야 하리라
松門許夜敲 소나무 아래 대문 두드려도 좋으니

승려 문향(文珦, 1210~1290 약간 초과)은 지금의 항주 서쪽 임안(臨安) 근처에 있는 오잠(於潛) 사람으로 어려서 항주에서 출가하여 동남방을 두루 돌아다닌 승려이다. 자신이 지은 시에 제영시가 300이요, 돌아다닌 곳이 4천 리라 한 표현이 있다. 나중에 어떤 일로 감옥에 갇혔다가 나온 뒤로는 행적을 감추었는데 죽을 때 나이가 80여 세라고 한다. 호는 잠산노수(潛山老叟)이고 문집 《잠산집(潛山集)》이 있다. 연재 71회에 소개한 것을 다시 옮겨 보았다.

이 시의 1,2 구와 7,8구는 각각 서로 도치 구문을 썼으니 반대로 읽어보면 그 뜻을 바로 알 수 있다. 감초(堪抄)는 ‘뽑아낼 만하다.’는 뜻이다. 풍경을 모두 뽑아낸다는 것은 풍경을 두루 이모저모 구경한다는 의미가 된다. 초겨울의 깨끗한 풍경을 완상하는 재미에 시를 읊으며 산책을 할 때 좀 멀리 가도 좋다고 한다. 그냥 걸으면 가까운 거리도 차를 타고 싶지만 하루 만 보를 걷기로 작정하면 일부러 이리저리 걸어 다니는 이치와 같다. 소나무 아래 있는 자신의 집 대문은 밤늦게 들어가도 좋기에 산보를 멀리 나왔다가 달이 뜨기를 기다려 돌아간다고 한다.

3, 4구와 5, 6구는 모두 대구를 썼다. 특히 3, 4구의 대구는 초겨울 경치를 큰 차원에서 말한 것으로 시인의 구도와 역량이 대단함을 알 수 있다. 쾌청한 하늘과 맑은 물이 서로의 맑은 기운을 발산하는 것을 서로 상대에게 주입하는 것으로 표현하였다. 음홍소해곡(飲虹消海曲), ‘물 마시는 무지개가 바닷가의 우묵하게 들어간 모퉁이의 물을 사라지게 한다는 것은 무슨 뜻일까?

이 말은 고사가 있다. 《한서(漢書)》 권63 <연자왕유단전(燕刺王劉旦傳)>에 보면 무지개가 궁중에 내려와 우물의 물을 마셨는데 우물물이 고갈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무지개를 신비한 생명체처럼 묘사한 신비로운 대목인데 여기서 ‘우물물이 다 고갈되었다.’는 의미를 ‘정수갈(井水竭)’로 표현하고 있다. 이 시인은 고갈된다는 의미의 ‘갈(竭)’을 ‘소(消)’자로 바꾸어 쓴 것이다. 그럼 이렇게 한 것은 시의 평측 때문일까?

시는 짝수 자리의 글자가 중요하지 마지막 운자의 위치가 아닌 홀수 자리는 다소 융통성이 있기 때문에 평측의 제약으로 이 글자로 바꾼 것이 아니다. 무지개가 생명체라 하고 물을 마신다 해도 작은 우물물을 다 마르게 할 수는 있지만, 바다 모퉁이의 물을 어떻게 다 마시겠는가? 뜻은 비슷해도 다소 완화된 적절한 표현을 찾은 결과로 보인다,

마지막 구절은 연재 260회에 소개한 가도의 시에 승고월하문(僧敲月下門), 즉 ‘승은 달빛 아래 문을 두드리네’의 의경을 차용한 표현이다. 송문(松門)은 소나무가 드리워진 대문이라는 의미인데 아마도 이 시인의 집 문간에 소나무가 있었던 모양이다.

이 시인의 시를 좀 읽어보면 젊은 시절은 사방을 편력하는 시가 많고 나이 들어서는 산속에 틀어박혀 그 근처를 소요하며 내면의 충일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이 시도 지은 시기는 알 수 없지만 만년에 은거지 주변을 소요하며 지은 시로 보인다. 시에 속세의 때가 하나도 묻지 않았다.

元 黄公望九峰雪霽圖

365일 한시 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