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백박白樸 천성사天淨沙 · 겨울冬

천성사天淨沙 · 겨울冬/원元 백박白樸

一聲畫角譙門 성 망루에서 울려 퍼지는 화각 소리
半庭新月黃昏 황혼 무렵 초승달이 반쯤 비치는 뜰
雪裏山前水濱 눈 덮인 산 앞으로 흐르는 개울 가
竹籬茅舍 대나무 울타리에 띳집
淡煙衰草孤村 맑은 연기에 시든 풀 누운 외딴 마을

<천정사(天淨沙)>는 곡패(曲牌) 이름이다. 곡(曲)이란 바로 원나라 때 유행한 희극에서 부르는 노래인 산곡(散曲)을 말하고, 패란 그 명패(名牌), 즉 명칭을 말한다. <천정사>는 5구 28자로 되어 있는 짧은 형식의 노래라 소령(小令)이라고 부른다. 1,2,3,5구는 각 6자이고 4구만 4자이다. 1,2,5구는 운자와 평측이 완전히 동일하다. 그러므로 3, 4구에서 의미와 음률에 변화가 일어났다가 5구에서 정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 연재 164회, 277회에 여름과 가을에 해당하는 노래를 이미 소개하였는데 이 내용은 164회에서 소개한 내용을 간추린 것이다.

이 시를 지은 백박(白樸, 1226~약1306)은 원나라 시대의 저명한 희곡 작가로, 관한경(關漢卿), 마치원(馬致遠), 정광조(鄭光祖)와 함께 원곡4대가라 불린다. 백박은 본래 금나라 사람인데 그가 7살 때 몽고가 금나라 개봉을 함락하여 어머니는 포로로 잡혀가고 자신은 추밀원 판관의 직책에 있던 아버지가 금나라 임금을 따라 가는 길을 함께 하면서 온갖 고생을 맛보았다. 다행히 집안에서 알고 지내던 원호문(元好問)의 도움으로 살아났고 공부도 할 수 있었다. 원나라가 천하를 통일한 뒤에 금릉으로 옮겨 살면서 벼슬길은 단념하고 남북으로 여행을 다니고 시와 술로 감정을 풀면서 살았다. 이런 연유로 그의 시에는 어릴 적 겪었던 아픔이 담겨 있다. 매우 맑고 아름다운 필치로 써진 이 시에 어딘가 애잔함이 깃들어 있는 것은 이 때문이다.

백박이 지은 <천정사>는 모두 4수로, 4 계절의 경치를 담아내었는데 4계절이 서로 고리를 물고 이어지는 듯하며 맑은 운치가 있는 가운데 고적하고 애잔함이 스며있다. 이 시는 부제목에 보이듯이 겨울에 해당하는 작품으로 황혼 무렵 교외의 외딴 마을에 감도는 청한(淸寒)한 풍경을 그리고 있다. 모든 단어가 2글자로 이루어져 어떻게 보면 시를 쓰기 위해 메모한 핵심어 같기도 하고 사진이나 영화의 컷을 모자이크 한 작품 같아 보이기도 한다. 1, 2구는 대구를 쓰고 있는데 현상에서 본질로 나아가는 서술로 되어 있다. 3~5구는 연결이 되는데 큰 범위에서 점점 좁아졌다가 5구에서 다시 넓어지는 구도를 보여준다. 어떻게 이런 시를 썼을까 싶을 정도로 시선에 대한 감각이 극도로 교묘하고 세련되어 현대 시인의 작품처럼 보일 정도다.

화각(畵角), 즉 뿔피리는 군대에서 주로 쓰는데 지금 여기서는 성 망루에서 불어 저녁 시간을 알리고 있다. 멀리 설산을 배경으로 한 고촌(孤村)에 뿔피리 소리가 더해져 애잔한 감정을 불러일으킨다. 이처럼 시에 채택된 소재와 서술 방법을 보면 느끼겠지만, 묘사한 풍경 묘사 속에 사실 시인의 정서가 엉겨 있다. 시의 내용을 다시 재구성하여 산문으로 풀면 이렇다.

성의 망루에서는 화각 소리를 길게 뿌우우~하고 불어 애잔한 소리가 허공으로 퍼져 간다. 황혼 무렵 초승달이 떠서 집의 마당 절반 정도를 비스듬히 비추고 있다.
산 위에는 눈이 쌓여 있고 그 산 아래로는 시내가 흘러간다. 그 한 귀퉁이에 이 집이 있는데 울타리는 대나무로 엮었으며 지붕으로 띠 풀로 이엉을 해 덮었다. 지붕 뒤 굴뚝에서는 맑은 연기가 피어오른다. 저녁밥을 짓고 있는 중이리라. 집 옆으로는 이미 시들어 마른 풀들이 어지럽다. 이 마을은 외따로 떨어져 있다.

宋 李唐 <雪窗讀書圖>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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