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시정의柴靜儀 추분 일에 아들 용제를 생각하며秋分日憶用濟

추분 일에 아들 용제를 생각하며秋分日憶用濟/청清 시정의柴靜儀

遇節思吾子 추분을 맞아 우리 아들 생각나서
吟詩對夕曛 시를 읊으며 저녁노을 바라보네
燕將明日去 제비는 내일이면 떠나갈 것이고
秋向此時分 가을도 이때부터 이전과 다르리
逆旅空彈鋏 덧없는 인생 몰라준다 한탄하고
生涯只賣文 지나온 생애 글을 판데 불과하네
歸帆宜早掛 귀향하는 배에 서둘러 올라타서
莫待雪紛紛 분분히 눈 내릴 때까지 있지 말라

오자(吾子)는 상대방에 대한 경칭으로도 쓰이는 말이지만 여기서는 ‘우리 아들’이라는 말이다.

제비는 춘사일(春社日)에 왔다가 추사일(秋社日)에 돌아가므로, 여기서 말하는 내일이 추사일이 아닌가 한다. 가을이 이때부터 구분된다는 말은 이제 가을이 절반을 넘어 점점 쓸쓸하고 추워진다는 말이다.

탄협(彈鋏)은 칼자루 두드린다는 말인데 고사가 있다. 전국 시대에 제(齊)나라 사람 풍훤(馮諼)이라는 협객이 맹상군(孟嘗君)의 식객으로 있었다. 맹상군이 자기를 후하게 대접하지 않자 칼자루를 치면서 고기도 없고 수레도 없으니 집으로 가야겠다고 노래하자 맹상군이 이를 듣고 후하게 대접했다고 한다. 《사기》 <맹상군열전(孟嘗君列傳)>에 나온다.

잠시 여관에 머물렀다 가는 덧없는 인생인데 나는 세상이 나를 푸대접하고 몰라 준다고 부질없이 한탄하였다. 그리고 지금까지 나의 생애를 돌아보건대 내가 시를 쓴다고 하면서도 그 실상을 보면 시를 팔아 이름을 얻고자 한 데 불과하다.

이 5, 6구가 이 시의 가장 정채로운 부분이다. 객지에 있는 아들에게 시를 보내면서 왜 갑자기 자신을 돌아보면서 이런 뼈아프고 청성 맞은 소리를 할까? 지금 심용제는 세상에 나가 자신의 문학적 재능을 인정받아 벼슬을 구하려고 할 것이다. 그런데 그게 말처럼 쉬운 일이겠는가? 필시 남의 식객이 되어 듣기 싫은 소리도 듣고 아니꼬운 일도 겪을 것이다. 그런데 그의 어미 시정의는 아들의 마음을 배려하여 곧장 말하지 않는다. 반대로 자신의 지난 인생을 돌아보면서 치기 어리고 명예욕에 눈 멀었던 젊은 시절을 통렬히 반성한다. 그 자애로움과 심원한 가르침이 절로 느껴진다.

아마도 아들 심용제는 어미가 무슨 말을 하는지 다 알아들었을 것이다. 아들아! 객지에서 사서 고생하지 말고 이제 그만 집으로 돌아와 나하고 여기서 자족하고 자락하면서 살자꾸나! 이렇게 말하는 것을. 추운 겨울이 와서 눈이 내리기 전에 어서 빨리 배에 돛을 달고 돌아오기를. 눈 내릴 때를 기다리지 말라는 말은 눈이 내리는 추울 때까지 꾸물거리지 말고 어서 빨리 돌아오라고 재촉하는 말이다.

시정의(柴靜儀)는 생몰년이 불분명하다. 다만 이 시에 나오는 그의 아들 심용제(沈用濟)가 1671년 전후에 살았기 때문에 17세기 중반에 살았던 것은 분명하다. 시정의는 항주에서 태어난 여류 문인으로 시와 금 연주, 그림에 두루 능하였던 인물로 동생 시정의(柴貞儀)와 함께 시명이 높았다.

그녀는 풍우령(馮又令), 전운의(錢雲儀, 임아청(林亞清), 고계아(顧啟婭)와 함께 시 동아리 초원음사(蕉園吟社)를 결성하였는데 사람들이 초원오자(蕉園五子)라 불렀다. 그런데 이 초원오자에는 청대 여류시인의 우두머리라 하는 서찬(徐燦)과 며느리 주유칙(朱柔則)이 들어가기도 하고 초원칠자라고도 하는데 청나라 시대의 대표적인 여류 시 동아리로 알려져 있다. 그녀는 《응향실시초(凝香室詩鈔)》, 《북당시초(北堂詩草)》 등의 저작을 남겼다. 그의 아들 심용제 역시 어머니의 재주를 물려받아 《한시설(漢詩說)》을 지었고, 며느리 주유칙(朱柔則) 역시 시화에 능하였다.

宋 赵佶 《池塘秋晚》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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