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권 운수 트인 사내가 우연히 동정홍을 사고
페르시아인이 타룡의 껍질을 알아보다
第一卷 轉運漢遇巧洞庭紅 波斯胡指破鼉龍殼
먼저 사(詞)한 수를 소개한다.
날마다 잔에 술을 가득 따르고, 아침마다 꽃밭엔 꽃이 피네. 혼자 노래하고 춤추며 혼자 마음껏 즐기는데, 구속도 방해도 없어 좋구나. 역사에 춘몽이 몇 번이었고 세상에 뛰어난 인재 얼마나 많았던가? 따지고 계획하지 말고 받아들이세, 지금 이 순간을.
이 사는 송대(宋代) 주희진(朱希眞)1이 지은 것으로, 곡조의 제목은 「서강월(西江月)」이다. 인생의 공명과 부귀는 운명에 달린 것이니 눈앞의 즐거움이나 추구하라는 것이다. 고금을 살펴보면 십칠사(十七史)2 가운데 얼마나 많은 영웅호걸이 마땅히 부유해야 함에도 부유하지 못하고 귀해져야 함에도 귀함을 얻지 못하였던가. 학문이 뛰어나 전쟁에 나가는 말에 기댄 채로 능히 장편의 문장을 써내는 사람이라도 세상이 기용하지 않을 때는 글 몇 장 있어봐야 그것으로는 장독 뚜껑도 제대로 덮지 못한다.3 무예가 뛰어나 백 보 밖에서 버들가지를 맞추는 사람이라도 세상에 기용되지 못할 때는 화살 몇 대로는 밥솥도 끓이지 못하는 법이다.
반면 정말 우둔하고 어리석은 자라도 타고난 복이 있으면 아무리 학문이 형편없더라도 거인(擧人)이 되고 진사(進士)가 될 수 있고, 아무리 무예가 변변치 않더라도 고관이 되어 후한 녹봉을 받을 수 있다. 이것이 바로 이른바 때니 운(運)이니 명(命)이니 하는 것이다. 이런 이치를 잘 말해주는 속담이 있다. “궁핍할 운명이라면 황금을 캐내더라도 동(銅)으로 변하고, 부유할 운명이면 백지를 줍더라도 포목으로 변한다.” 결국 운명의 신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것을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것이다. 그래서 오언고(吳彦高)4도 사를 지어 읊었다.
운명은 정해진 기준이 없는 것. 이리 뒤집혔다 저리 뒤집혔다, 옆으로 넘어졌다 똑바로 섰다 한다네. 눈앞의 모든 것이 이러하다네.
승려 회암(晦庵)5 역시 사에서 이렇게 말했다.
누군들 황금으로 된 집을 원하지 않겠나? 누군들 천종(千鐘)6의 곡식을 원하지 않겠나? 허나 오행(五行)으로 팔자(八字) 따져보면 그런 운은 없지.7 공연히 마음 쓰고 쓸데없이 따져보지만, 자손은 자손 나름의 복이 있는 법.
소동파(蘇東坡) 역시 사에서 이렇게 말했다.8
달팽이 뿔에 살면서 헛된 명성 쫓고9 권력 다투며 파리 대가리만한 이익에 연연하는 것, 따져보면 뭣 때문에 아등바등하는가? 만사는 미리 정해져 있는 것, 누가 약하고 또 누가 강하단 말인가!
이 몇몇 명인들이 이러쿵저러쿵 한 것은 다 한 가지 뜻이니, 예로부터 전해지는 말에 다 함축되어 있다.
만사의 운명은 이미 정해져있거늘, 부질없는 인생은 공연히 홀로 분주하구나.
이야기꾼 양반, 당신 말대로라면 문장이 뛰어날 필요도 무예에 능할 필요도 없는 것이고 게으른 자라도 하늘에서 앞날을 떨어뜨려 주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니오? 힘들여 장사하고 일할 필요 없이 망한 사람도 그저 하늘이 재산을 벌어주기만 기다리면 되는 것 아닌가? 이건 오히려 사람들의 의욕을 꺾어놓는 것 아닌가 말이오?
독자여러분이 모르시는 것이 있습니다. 예를 들어 어느 집에 게으른 자가 나왔다면 그는 원래 천해질 운명인 것입니다. 만약 망한 자가 나왔다면 그 역시 마땅히 궁해질 운명이었던 것입니다. 이것은 당연한 이치입니다. 그런데 전혀 뜻밖에도 눈 깜짝할 사이 가난해지거나 부유해질 수도 있으니, 눈앞의 일은 추호도 정확하게 예측할 수 없는 것입니다. 우선 한 사람의 이야기를 들어보시지요.
그는 송나라 변경(汴京)10 사람으로, 성은 김(金)이요 이름은 유후(維厚)이고 장사꾼이었다. 그는 늘 아침에 일찍 일어나고 밤에는 늦게 잤다. 잠에서 깨어나면 이리저리 궁리하고 계산하여 저렴한 물건을 고르고 골라 장사를 했다. 후에 집안에 여유가 생기자 그는 장기적인 계획을 세우게 되었다. 수중에는 자잘한 은자들만 가지고 썼고, 두 덩어리가 넘는 좋은 은이 있으면 보관해두고 건들지 않았다. 그래서 은이 백 냥 정도 모이면 녹여서 큰 덩어리로 만들어서 붉은 실로 끈을 만들어 덩어리 가운데를 묶어 베개 맡에 놓아두었다. 밤이면 그것을 한 번씩 어루만지고서야 잠이 들곤 했다. 평생을 모아 딱 여덟 덩어리를 만들었는데, 이후로는 이리저리 모아도 백 냥이 되지 않아서 그냥 그만두었다.
김 노인은 네 아들이 있었다. 하루는 그의 칠순 생일이었다. 네 아들은 주연을 베풀어 생신을 축하하였다. 김 노인은 네 아들의 반듯한 모습을 보고 매우 기분이 좋아서 아들들에게 말했다.
“비록 일생동안 힘들기는 했지만, 하늘이 도와주신 덕에 재산은 그럭저럭 살만큼 모았다. 더욱이 내가 평소 뜻을 두고 은 덩어리 여덟 개를 만들었는데, 평생 쓰지 않고 내 베개 밑에 끈으로 쌍을 지어 묶어두었다. 이제 좋은 날을 택해서 너희들에게 나누어주려고 한다. 한 사람 앞에 한 쌍씩 줄 테니 집안의 든든한 보물로 삼도록 해라.”
네 아들은 기뻐 감사를 표하고 실컷 놀다 헤어졌다.
그날 밤, 김 노인은 취기가 올라 등을 켜 놓은 채 침상에 올랐다. 게슴츠레한 눈으로 어렴풋이 보니 은덩어리 여덟 개가 번쩍거리면서 베개 맡에 줄지어 있었다. 몇 번을 만져보다가 허허 하며 웃고는 잠이 들었다. 아직 잠이 깊이 들지 않았을 때 침상 가에 사람 발자국 소리가 들려 도둑이 들었나 하고 의아해했다. 다시 자세히 들어보니 마치 누군가 서로 먼저 나서라고 양보하는 듯 했다. 침상 앞에는 등불이 희미하게 켜있었다. 그가 휘장을 젖히고 바라보니 흰옷을 입고 허리에는 붉은 띠를 맨 여덟 명의 덩치 큰 사내들이 있었다. 그들은 허리를 굽히고 다가와 이렇게 말했다.
“저희 형제들은 하늘이 정해준 명으로 이곳에 보내져서 그동안 주인님 댁에서 명령을 받들어왔습니다. 주인님의 깊은 사랑과 보살핌을 입어 성인이 되었고, 일도 시키지 않으시고 소중히 하신 지 여러 해가 되었는데, 이제 명부(冥府)의 정해진 운명이 거의 다 되었습니다. 원래는 주인님이 하늘로 돌아가신 후 다시 저희들의 갈 곳을 찾아보려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 듣자니 주인님께서 곧 저희들을 여러 아드님께 나눠준다 하시는데, 저희들과 아드님들과는 원래 전생의 인연이 없습니다. 그래서 먼저 와서 작별인사를 드리고 모 현(縣) 모 촌(村)의 왕(王) 모 씨에게 가서 몸을 맡기고자 합니다. 인연이 다하지 않았으면 후에 다시 뵐 수 있을 것입니다.”
말을 마치자 그들은 뒤돌아 떠나갔다.
김 노인은 어찌된 영문인지 몰라 깜짝 놀랐다. 몸을 일으켜 침대에서 내려와 신발을 신을 새도 없이 맨발로 따라갔다. 저 멀리 여덟 명이 집 문을 나서는 것이 보였다. 김 노인은 급히 쫒아 나가다 문지방에 걸려서 꽈당 넘어졌다. 문득 놀라 깨어나 보니 남가일몽(南柯一夢)11이었다. 급히 불을 밝게 켜고 베개 맡을 비추어 보니, 이미 여덟 개의 은덩어리는 보이지 않았다. 꿈속의 말을 곰곰이 생각해보니 그들의 말은 모두 사실이었다. 그는 한숨을 쉬고는 한동안 오열했다.
“믿을 수가 없구나. 내가 일생동안 힘들게 모은 것을 아들들이 누리도록 나누어주지도 못하고 다른 사람의 것이 되다니! 사는 곳과 이름을 분명히 들었으니 일단 천천히 종적을 찾아보기로 하자.”
그는 밤새 한 숨도 못 잤다.
다음날 아침에 일어나서 아들들에게 이 이야기를 해주었다. 아들 중에서는 놀라는 이도 있고 의심하는 이도 있었다. 놀라는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우리 손에 들어올 물건이 아니었기에 괴상한 일을 보게 되는구나.”
의심하는 아들은 이렇게 말했다.
“아버님이 기분이 좋은 김에 이야기를 하시면서 우리에게 준다고 하셨다가, 다시 생각해보니 또 아까워서 나눠줄 수가 없으니까 이런 허튼소리를 지어내신 것일지도 몰라.”
김 노인은 의심하는 아들도 있는 것을 보고는 서둘러 이 사실을 증명하고자 하였다. 드디어 그 마을을 찾아갔더니 정말로 왕모 씨가 있었다.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 보았다. 대청 앞에 휘황하게 등촉이 켜있었고 세 가지 희생 제물을 놓고 그곳에서 제사를 지내고 있었다.
김 노인이 물었다.
“댁에 무슨 일이 있어 제사를 지내시오?”
하인은 안에 고하여 주인을 밖으로 청했다. 주인 왕 노인은 김 노인에게 읍하고 앉아서 방문 이유를 물었다. 김 노인이 대답했다.
“이 늙은이에게 미심쩍은 일이 한 가지 있어 수소문이나 해보려고 특별히 댁을 방문하게 됐습니다. 지금 보니 댁에서 제사를 드리고 있는데 필시 연유가 있을 터이니, 알려주시면 고맙겠습니다.”
“이 늙은이의 안사람이 병이 들어 점을 쳐보니 점쟁이가 침대를 옮기면 좋아진다고 하더군요. 어제 안사람이 병석에 있는데 흰 옷을 입고 허리에 붉은 끈을 묶은 사내 여덟 명이 어렴풋이 보이더니 안사람에게 이렇게 말하더랍니다. ‘저희들은 본래 김 씨 댁에 있었는데, 이제 그곳의 인연이 다하여 댁에 의탁하고자 합니다.’ 말을 마치고는 모두 침대 밑으로 쑥 들어왔답니다. 아내는 깜짝 놀라 식은땀을 흘리고 나서 몸이 좋아졌습니다. 침대를 옮겨보니 어디서 왔는지 먼지 속에 여덟 개의 은덩어리가 있었는데, 모두 붉은 끈으로 가운데를 묶은 것이었죠. 이것은 모두 하늘이 보우하신 것이라 제물을 사서 감사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지금 댁이 이를 물어보시는 게 설마 그 내막을 알고 물어보시는 건 아니지요?”
김 노인은 주저앉으며 말했다.
“그건 이 늙은 것이 평생 모은 것인데, 전날 꿈을 꾸고 나서 사라져버렸습니다. 꿈속에서 노인장의 성명과 주소를 정확하게 말했기에 여기를 찾아올 수 있었던 겁니다. 천수(天數)는 이미 정해져 있다는 것을 알았으니 저는 아무 원망이 없습니다. 다만 한 번 꺼내 보여주실 수만 있으면 제 시름도 끝날 것 같습니다.”
“그거야 어렵지 않지요.”
왕 노인은 희희낙락하면서 들어가 시동 네 명에게 각각 접시에 받치고 나오게 했다. 접시마다 두 덩어리씩 놓여있는데 모두 붉은 끈으로 묶은 것이었으니 김 씨 집안의 것이 분명했다. 김 노인은 그것을 뻔히 보고서도 어찌할 수가 없어 자기도 모르게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그것을 한 번 쓰다듬어 보며 이렇게 말했다.
“늙은이가 이렇게 박명하여 써보지도 못하는구나.”
왕 노인은 시동들에게 가지고 들어가게 하였으나, 김 노인의 괴로워하는 모습을 차마 볼 수가 없었다. 그래서 따로 은자 석 냥을 싸서 김 노인에게 주며 작별을 고했다. 하지만 김 노인은 거듭 사양하며 절대 받으려 하지 않았다.
“자기 물건 누릴 복도 없는데 무슨 남의 은혜가 필요하겠습니까!”
그러자 왕 노인은 억지로 김 노인의 소매 속에 넣어주었다. 김 노인이 끄집어내어 돌려주려 했으나 얼른 은이 잡히지가 않아 얼굴이 온통 빨갛게 달아올랐다. 그는 결국 왕 노인이 권하는 것을 뿌리치지 못하고 작별할 수밖에 없었다. 그는 집에 와서 아들들에게 있었던 일을 모두 말해주었고, 모두들 한바탕 탄식하였다. 이어 왕 노인이 마음씨 좋게도 헤어질 때 은 석 냥을 준 이야기를 하면서 소매를 더듬었다. 그런데 아무리 뒤져봐도 은이 나오지 않자 그저 길에서 떨어뜨린 것 같다고 말하고 말았다. 하지만 사실은 김 노인이 거절할 때 왕 노인이 소매 속으로 마구 집어넣다 바깥 소매 안으로 들어갔던 것이다. 그런데 소매에는 재봉선이 끊어진 곳이 있어 왕 노인이 더듬을 때 이미 뜯어진 곳으로 빠져나와 문지방에 떨어졌던 것이다. 손님이 가고 문간을 쓸다 보니 또 왕 노인이 줍게 되었다. 이처럼 밥 한 술, 물 한 모금이라도 다 전생에 정해진 몫이 있는 것이다. 자신의 물건이 아닌 것은 팔백 냥이 아니라 석 냥이라도 가질 수가 없는 것이다. 또 자신의 물건인 것은 팔백 냥이 아니라 석 냥이라도 밖으로 내보낼 수 없는 것이다. 원래 가졌던 사람은 잃어버리고 원래 없던 사람에게는 생기게 되었으니, 결코 사람이 계산할 수 있는 게 아닌 것이다.
1 주희진(朱希眞): 남송(南宋)의 사인(詞人) 주돈유(朱敦儒)으로, 자(字)가 희진(希眞)이다. 사집(詞集)으로 《초인(樵人)》이 있다.
2 십칠사(十七史): 《사기(史記)》, 《한서(漢書)》, 《후한서(後漢書)》, 《삼국지(三國志)》, 《진서(晉書)》, 《송서(宋書)》, 《남제서(南齊書)》, 《양서(梁書)》, 《진서(陳書)》, 《위서(魏書)》, 《북제서(北齊書)》, 《주서(周書)》, 《수서(隋書)》, 《남사(南史)》, 《북사(北史)》, 《신당서(新唐書)》, 《신오대사(新五代史)》를 말한다. 송대에 생겨난 정사(正史) 구분법으로, 명대에도 그대로 따랐다.
3 《한서(漢書)》에 다음과 같은 이야기가 전한다. 서한(西漢) 시기 문인인 양웅(揚雄)이 《태현(太玄)》을 지었는데, 유명한 학자인 유흠(劉歆)이 이를 읽어보고는 사람들이 높이 평가하지도 않는데 공연히 헛수고를 했다면서 “나는 후세 사람들이 이것으로 장독이나 덮을 것 같다.”고 악평을 했다고 한다.
4 오언고(吳彦高): 금대(金代) 사인 오격(吳激)으로, 자(字)가 언고(彦高)이다. 저서에 《동산집(東山集)》이 있다.
5 회암(晦庵): 승려 회암은 남송 시대 사람으로, 그의 생애에 대해서는 별로 알려진 것이 없다. 현재 「만강홍(滿江紅)」이라는 사 한 수가 전한다.
6 천종의 곡식이란 녹봉이 풍부함을 비유한 말이다. 종(鍾)은 고대의 용량 단위로 대략 48되 정도에 해당한다.
7 금(金), 목(木), 수(水), 화(火), 토(土)를 오행이라고 한다. 술수가(術數家)들은 오행과 사람의 팔자 간지를 조합하여 그 사람의 명이 좋은지 나쁜지를 예측한다.
8 소동파(蘇東坡): 북송 시대의 대문호 소식(蘇軾)으로, 호가 동파거사(東坡居士)이다.
9 이 부분의 원문은 ‘와각허명(蝸角虛名)’으로, 이는 《장자(莊子)》의 우언에 나오는 성어이다. 달팽이의 왼쪽 뿔 위에는 촉씨국(觸氏國)이, 오른쪽 뿔 위에는 만씨국(蠻氏國)이 있어 서로 전쟁을 하며 자리를 뺏으려 했다는 이야기로, 세상 사람들이 서로 이익을 쫒으며 헛된 명성을 구하는 것을 풍자한 내용이다.
10 변경(汴京): 북송의 도성 변량(汴梁), 즉 개봉(開封)으로, 흔히 ‘동경(東京)’이라고 한다.
11 남가일몽(南柯一夢): 당대 이공좌(李公佐)의 전기(傳奇) 「남가기(南柯記)」에서 유래한 성어이다. 주인공 순우분(淳于棼)이 홰나무[槐木] 아래서 낮잠을 잤는데 꿈속에서 대괴국(大槐國)으로 가게 되어 공주에게 장가들고 남가(南柯)의 태수가 되며 일생동안 부귀영화를 누렸으나 결국 꿈에서 깨어났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