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날의 산책秋行/송宋 서기徐璣
戛戛秋蟬響似箏 앵앵대는 가을 매미 아쟁 소리 같은데
聽蟬閑傍柳邊行 한가로이 버드나무 길 걸어가며 듣네
小溪清水平如鏡 작은 계곡 맑은 물 거울처럼 잔잔한데
一葉飛來浪細生 나뭇잎 하나 날아와 작은 파문 생기네
이 시는 가을날에 길을 걷다가 우연히 마주한 사소한 정경을 그려내었다.
버드나무 길을 걸어가는데 가을의 매미 소리가 들려온다. 생명의 종장을 앞두고 있어서인지 마지막 힘을 쏟아 마치 아쟁 소리처럼 애잔하게 운다. 이윽고 버드나무 잎사귀 하나가 가을 햇살에 팔랑이며 길가 저편 작은 계곡의 잔잔한 물에 떨어진다. 작은 파문이 일어난다. 그 뾰족하고 가느다란 버드나무 잎사귀만큼의 작은 물결이 생긴다.
아쟁 소리를 닮은 가을날의 매미 소리와 잔잔한 계곡물에 떨어진 버드나무 잎이 이 시의 제재 전부이다. 이리 보면 계절을 노래한 것 같고, 저리 보면 영물시 같고, 또 어찌 보면 이런 게 삶의 한 부분인 것도 같다. 아주 사소하지만 그냥 잊어버리기엔 아까운 인상적인 가을 풍경이다. 특별히 대단할 것도 없는 소소한 풍경을 소재로 삼아 정경 묘사 외에는 어떠한 의미 부여도 하지 않았다는 데에 이 시의 특징과 가치가 있다. 자연과 함께하는 소소한 행복과 자질구레한 것도 시가 될 수 있음을 적극적으로 보였다.
서기(徐璣, 1162~1214)는 송나라 온주(溫州) 영가(永嘉) 사람으로 호가 영연(靈淵)이다. 대체로 낮은 벼슬을 전전하였다. 그런데 재미있게도 당시 시를 잘 짓는 사령(四靈)이 있었는데 모두 호에 영(靈)자가 들어가고 다 영가 사람이었다. 그래서 이들을 영가사령(永嘉四靈)이라 부른다. 사령은 소위 강호파(江湖派)를 열었는데, 당나라 가도(賈島)와 요합(姚合)의 시를 배워 야일(野逸)하고 청초하며 시의 제재도 좁고 시경(詩境)도 얕은 데다 다소 잗단 면이 있다는 평가를 받는다.
이 시는 시인의 이런 특징을 잘 보여준다. 우리나라 현대시도 이런 특징을 보이는 시들이 많다. 그런데 여기서 그치지 않고 딱히 이유도 없이 난해한 멋을 부려 시를 망친 것들이 많다. 작고 쉬운 것의 아름다움과 의미를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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