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통시대 외교사절인 사신(使臣)들이 조선과 중국의 산천, 도시를 경유하며 풍속과 문화를 견문했던 현장을 ‘사행노 정(使行路程)’,또는 ‘연행노정(燕行路 程)’이라고 부릅니다. 역사기행에 관심이 많은 저는 사신들의 ‘연행기록’, 특히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熱河日記)」 노정을 답사하고, 영상기록(사진·동영 상·GPS좌표)하고 있습니다. 연암이 살았던 조선시대만 해도 나라 밖을 여행한다는 일은 매우 특별한 일이었습니다. 지금이야 누구나 세계여행을 나설 수 있는 시대지만, 전통시대에는 매우 선택된 이들만이 특별한 외국여행을 경험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외교사절단인 사행(使行)의 일원이 되는 것입니다. 1780년 조선사신단의 일원이었던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 노정을 따라가며, ‘옛사람들의 외국 견문 이야기’를 12회에 걸쳐 해보려고 합 니다.
연행은 곧 세계인식의 창
조선의 지식인들이 세계를 인식하는 가장 직접적인 통로는 사행 혹은 연행(燕行)을 통해 중국을 여행하는 것이었습 니다. 연행은 곧 세계인식의 창(窓)이었 습니다. 조선은 국가의 외교기조인 사대(事大)와 교린(交隣) 정책에 따라 중국과 일본에 사신(使臣)을 보냈습니다. 중국의 경우 동지사(冬至使)와 같은 정기 사행과 사은사와 같은 부정기 사행이 1 년에도 1~3차례씩 조선과 중국의 국경을 넘었습니다. 연행은 좁은 조선 땅을 벗어나 드넓은 중원을 경험한다는 점에서 일생일대의 기회요, 평생의 꿈이기도 했습니다. 연행을 경험한 관료, 지식인들은 다양한 방식으로 중국 견문 기록을 남겼습니 다. 여정은 일기로, 여행의 소회는 시문(詩文)으로 남겼습니다. 이러한 기록을 ‘사행기록’, 또는 연경에 다녀왔다고 해서 ‘연행록’이라 부르기도 했습니다.
열하일기, 누구나 알지만 모르는 이야기
흔히 연행록의 백미로 꼽는 연암 박지원의 「열하일기」는 정식수행원이 아닌 자제군관(子弟軍官) 자격으로 참여하여 남긴 기록입니다. 자제군관은 사신단의 삼사(三使)인 정사·부사·서장관 의 자제나 문하의 선비들을 수행과 견문을 목적으로 데리고 제도였습니다. 연행의 여정이 약 6개월 이상 걸렸으므로 오늘날 단기 해외연수와 비슷하다고 하겠습니다. 1780년 건륭제의 70세 만수절 축하사절에 참여한 연암 박지원은 삼종형이자 사행단의 최고 우두머리인 정사 박명원의 자제군관 자격으로 연행에 참여하였습니다. 그가 중국 견문을 정리한 「열하일기」는 문학·역사·경세·사상적 측면에서 매우 뛰어나 세상에 나올 때 부터 조선 사회를 동요시켰을 정도로 인기가 많았다고 합니다. 김창업의 <노가재연행일기>, 홍대용의 <담헌연기>와 더불어 연행록의 삼가(三家)로 불리며, 현대인의 고전(古典)으로 널리 읽히는 연행록입니다. 그러나 사실 누구나 「열하일기」를 안다고는 하지만, 구체적인 내용을 이해하기란 쉽지 않습니다. 깊은 사고(思考)를 필요로 하는 내용이 많아서 다소 어렵게 느껴질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연암이 걸었던 노정을 영상 이미지와 함께 살펴보면 「열하일기」 이해에 도움이 됩니다.
연행노정, 이미지로 보완
앞으로 몇 차례에 걸쳐 「열하일기」 내용과 부합하는 기록사진을 제시하여 독자 여러분의 「열하일기」 탐독을 돕고자 합니다. 텍스트의 내용을 영상 이미지로 보완한다는 의미가 있고, ‘역사 의 현장’을 추체험하는 효과도 있어서 고전을 이해하는 독법(讀法)의 하나가 될 수 있을 것입니다. 연행노정의 현장은 옛적의 풍경이 더러 남아 있기도 해서 ‘역사기행’의 즐거움을 주기도 하지만, 개발이라는 이유로 훼손되거나 사라지는 현장도 늘고 있습니다. 일부는 예스럽게, 한편으로는 상상력을 발동해야 비로소 와닿는 우리 역사의 현장입니다. 공간과 공간을 잇는 매개는 길이고, 길 위에는 인마(人馬)가 교통하게 마련입니다. 조선의 관료, 지식인들은 연행노정을 통해서 새로운 세상을 경험 했고, 세계를 인식했습니다. 새로운 문명과 문화와의 조우를 통해 편협한 시각에서 벗어날 수 있었 습니다. 중국 중심의 세계관을 극복하는 자각(自覺)은 조선 후기 정신사(精神史)에 많은 영향을 끼쳤 습니다. 담헌 홍대용과 연암 박지원이 이끌었고, 박제가, 유득공, 이덕무, 김정희 등이 꽃을 피웠으며, 19 세기 개화파 지식인으로 이어졌습니 다. 그런 점에서 이들의 북학(北學)은 ‘사행 외교’의 산물이기도 했습니다. 북학이 태동하던 현장이 바로 ‘연행노정’ 인 셈입니다.
길 위에서 답 찾기
‘길 위에 답이 있다’는 말을 합니다. 현대인들이 고전의 현장을 찾는 이유는 옛사람들의 지혜를 찾을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일 겁니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의 여행을 고민합니다. 앞으로 10회 정도의 연재를 통해 연암 박지원이 걸었던 열하일기 노정, 연행노정을 여러분과 함께 걸어 보겠습니다. 옛사람들의 행적을 추체험하는 여정에서 문득, 오늘날 우리에게 필요한 고민 해결의 단초가 풀릴지도 모를 일입니다.
여행도우미
‘오래된 기억의 옛길, 연행노정’은 조선 사신들의 행적을 추체험하듯 따라가 는 역사기행이다. 방송대학TV가 제작한 <열하일기-길 위의 향연>(연출:신성철·신춘호, 2010)을 유튜브 영상으로 시청하면 이 여행에 도움이 될 것이다. 방송대 학우라면, 문화교양학과 교재 <역사의 현장을 찾아서>와 문화교양 총서1 <옛길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참고해도 좋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