잠 못 이루는 밤 倦夜/당唐 두보杜甫
竹涼侵臥內 대숲 공기 침실로 스며들고
野月滿庭隅 들의 달빛 정원에 가득하네
重露成涓滴 무거운 이슬 뚝뚝 떨어지고
稀星乍有無 드문 별은 있는 듯 없는 듯
暗飛螢自照 어둠 속의 반딧불 깜박이고
水宿鳥相呼 자는 물새들 서로 화답하네
萬事干戈裏 만사가 다 전란 속에 있으니
空悲清夜徂 맑은 밤 새우며 슬퍼할 밖에
이 시는 764년 두보(杜甫, 712~770)가 53세 때 엄무(嚴武)의 막하에서 잠시 휴가를 내어 완화계(浣花溪) 초당에 있을 때 지은 시이다.
전 6구는 정경이 묘사되어 있고 마지막 2구는 서정을 서술하여 앞에 그렇게 한 이유를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8구를 모두 포괄하는 말로 제목에 권(倦)자를 근엄하게 놓았다. 권은 지루하고 피곤한 것을 표현할 때 쓰는 글자이다. 밤에 침실에 가만히 누워 있는데 왜 피곤하다고 하는 것인가?
첫 2구는 침실에 누워 있을 때 대숲에서 불어오는 청량한 공기와 정원 귀퉁이에 가득한 달빛을 묘사하고 있으니 이른 밤에 해당한다. 이때는 침실에서 누워 자려고 하는 때로 보인다.
그런데 다음 구를 보면 대나무 잎사귀에 이슬이 맺혀 방울져 떨어지고 하늘의 별이 중천에 뜬 달로 보일 때도 있고 안 보이기도 하는 것은 한밤중의 일이며 이런 것을 묘사하자면 방 안에서는 불가능하다. 방 안에서 어떻게 이슬 떨어지는 것을 보겠는가? 즉 잠이 안 와 정원에 나와 거닐고 있는 것을 알 수 있다.
반딧불이 스스로 비춘다는 말은 하늘의 달빛이 없으니 반딧불이 깜박깜박 빛나는 것을 표현한 말이다. 달이 진 상황이다. 물새들이 동이 트면 날 것을 대비해 서로 화답하고 있으니 이는 날이 트기 전의 묘사이다. 물새 소리는 침실에서 뒤척이며 듣더라도 반딧불은 나가 봐야 알 수 있다.
그렇다면 두보는 밤새 잠을 자지 않고 뒤척이거나 마당에 나가 거닌 것을 알 수 있다. 그 이유가 마지막에 서술되어 있다. 아직도 전란이 계속되어 이런 맑은 가을밤이 다 새도록 부질없이 슬퍼하고 있다고 한다. 마지막 대목을 읽어야 비로소 앞에 6구에 서술된 경관의 묘사가 의미하는 것을 알 수 있으며 왜 제목에 저런 글자를 썼는지 역시 알게 된다. 두보 시의 구성이 매우 치밀한 것을 알 수 있다.
일본 아베의 경제 도발과 그에 덩달아 역사를 되돌리려 하는 무리들이 날뛰고 있다. 이런 때는 특별히 애국자가 아니라도 역시 잠 못 이루는 사람이 많을 것이다. 이 시가 공감되는 사람 역시 많을 것이다.
365일 한시 24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