月下洗藥달 아래 약초에 물을 주며/당唐 전기錢起
汲井向新月 초승달을 행해서 우물을 길어
分流入衆芳 약초 꽃에 나누어 물을 대네
濕花低桂影 촉촉한 꽃 달빛에 고개 숙이고
翻葉靜泉光 번성한 잎 샘물 빛에 차분하네
露下添餘潤 윤기를 보태려 이슬 내리고
蜂驚引暗香 향기에 이끌려 벌들 놀라네
寄言養生客 양생을 하는 객에게 전하노니
來此共提筐 이곳에 와서 함께 바구니 잡길
전기(錢起, 약 722~780)는 절강성 오흥(吳興) 사람으로 751년 진사 시험에 합격하였는데 이 기록이 전기의 생몰년의 기준이 된다. 서법가 중에 초서로는 장욱(張旭)과 회소(懷素)를 치는데 이 회소의 속성이 전씨(錢氏)로, 바로 전기의 삼촌이다. 전기는 한림 학사를 지냈다.
<귀안(歸雁)>을 통해서 전기가 시풍이 매우 청신하고 기발한 줄은 짐작하였지만 이렇듯 낭만적이고 운치가 있는 줄을 몰랐다. 초승달이 뜨는 월초의 늦은 저녁이나 혹은 이른 밤에 약초밭에 물을 대 주면서 느낀 아름다움을 시로 승화한 작품이다.
시골에 살게 되면 한낮을 피해 해거름이 될 무렵 마당이나 텃밭의 작물에 물을 준다. 이 시인은 물을 준 뒤에 변하는 약초의 생기를 시에 담고 있다.
오늘은 마침 초승달이 떠서 더 분위기가 있다. 물을 길어 약초 꽃밭에 물을 조금씩 나누어 흘려주니 더위에 시달린 꽃들이 물기를 머금어 생기를 찾는다. 물에 적셔 축축해진 꽃은 마치 달에 부끄러운 듯 머리를 살짝 숙이고 있다. 또 무성한 잎들은 땅에 흘려보낸 샘물 빛에 낮의 흐느적거리던 태도와 달리 차분해 보인다.
마침 약초의 윤기를 더해주려는 듯이 하늘에서 이슬이 내려오고 벌들은 그윽한 향기에 놀라 다가온다. 양생을 하는 분들이 있으면 여기 와서 나와 함께 이 꽃들을 따서 약으로 다려 먹으면 어떨지? 바구니를 잡는다는 말은 몸에 좋은 약초를 골라 바구니를 잡고 따 담는 것을 말한다. ‘제(提)’ 자가 ‘영(盈)’으로 된 판본도 있다.
‘노하(露下)’는 약초에서 이슬이 땅에 떨어지는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이슬이 약초에 내리는 것을 말한다. 시인은 꽃의 윤기를 보태주려고 그런다고 말한다. 벌들이 그윽한 향기에 이끌려 화들짝 놀라 다가온다는 표현과 함께 이 시를 더욱 빛나게 하는 대구이다.
이 정도의 시심이면 일상생활이 신선과 다름이 없다. 임어당(林語堂, 1895~1976)의 《생활의 발견 : 원제 生活的藝術》에 수록된 많은 내용이 이렇다. 재미있는 놀이를 일로 만들어 사람을 삭막하고 피곤하게 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늘 하는 일도 마치 재미있는 놀이로 만드는 사람도 있다. 그 일이 문제가 아니라 누가 그 일을 어떻게 하는가의 문제인 경우도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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