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가을初秋/당唐 맹호연
不覺初秋夜漸長 벌서 초가을인가 밤은 점점 길어지고
清風習習重淒涼 맑은 바람 살살 불어 더욱 상쾌하네
炎炎暑退茅齋靜 무더위도 물러가서 띳집은 차분한데
階下叢莎有露光 섬돌 아래 잔디엔 반짝이는 이슬방울
맹호연(孟浩然,689~740)의 시는 매우 좋은데 의외로 깊이 연구한 교주본이 없다. 무슨 곡절이 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맹호연 시를 만날 때마다 아쉬움이 있다. 이번에도 도서관에 한 번 내려가 봤으나 그다지 참고할 만한 자료가 없다.
올해 날씨로는 아직 분명히 여름이지만 절기로는 가을로 접어들고 있다. 이 작품은 자신도 모르게 은거지에 찾아온 가을을 자각하면서 그 계절의 변화를 호흡하고 있다. 요즘은 냉난방도 발달하고 철과 크게 상관없이 나오는 과일 등으로 계절감이 많이 희석되었지만 예전에는 계절의 변화를 실감할 뿐만 아니라 큰 관심사였다. 농사가 주 산업이니 더욱 그랬다. 글도 영향을 받아서 일상에 가까운 일기나 편지는 말할 것도 없고 축문, 제문 등에도 계절은 빠지지 않는다. 왕에게 올리는 상소문에도 계절에 대한 언급이 많다. 문예 작품 중에는 시의 경우 흔히 계절을 배경으로 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계절 자체를 노래한 시도 매우 많다.
시인도 가을이 온 줄 몰랐는데 어느덧 해가 일찍 져서 밤이 길어진 것을 통해 처음 느낌이 왔다. 이어 불어오는 맑은 바람이 이전과 달리 서늘한 밤공기를 더 상쾌하게 한다. 여기서 ‘처량’은 상쾌하다는 의미이지 쓸쓸하다는 의미가 아니다. ‘중(重)’은 바로 청량한 바람이 밤의 상쾌한 기분을 더해준다는 의미이다.
찌는 듯한 여름에는 개구리나 매미 등이 시끄럽게 울 뿐만 아니라 주변의 잡음도 많다. 공기가 들떠 있고 운무도 수시로 변한다. 이제 가을이 되자 더위는 물러가고 띳집 안에는 차분하고 안정된 기운이 감돈다. 마음도 가라앉아 독서를 할 맛이 난다. ‘정(靜)’ 자는 놓은 이유이다.
이 시에서 초추라 하였으니 입추 무렵의 어느 날인 것을 알겠는데 하루 중 어느 시간에 쓴 시일까?
앞에서 설명하였듯이 맑은 바람이 밤공기의 상쾌함을 더해 주려면 밤이 되어야 한다. 그런데 마지막 연에 보면 ‘노광(露光)’, 즉 반짝이는 이슬방울이 나온다. 초가을에 이슬이 맺히려는 어느 정도 기온이 떨어지는 밤이 되어야 한다. 이 시의 날짜는 소동파가 7월 16일에 쓴 <전적벽부>와 비슷하다. 그 때 소동파는 고기와 과일 술을 장만해 적벽에 나가 배를 띄웠다. 바람은 솔솔 불어 왔고 물결도 잔잔했다. 객과 술을 들고 시를 읊으며 좀 놀다 보니 동산에 달이 떠올라 견우와 직녀성 사이에 있고 흰 이슬이 강에 자욱하고 물빛은 하늘에 닿았다고 되어 있다.
이 시 역시 한 밤이 되어 가을 기분을 느끼며 배회하던 시인이 뜨락에 내려오니 낮은 풀에 이슬이 맺힌 것을 보게 된 것이다. 시에서 달빛이나 시인의 움직임을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시의 현장에는 상쾌한 가을 공기를 음미하며 달빛 아래 섬돌을 내려와 마당을 배회하는 시인이 있다. 가을은 또 이렇게 밤에 조용히 공부하던 은자의 살갗에 소리 없이 다가오는 모양이다.
365일 한시 2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