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소하가 출사표를 발견하다 3
다시 며칠이 지나고 성지가 내려왔다. 보안주의 관리들이 공문이 적힌 패를 들고 들이닥쳐 심련 가족을 붙잡고 더불어 평소 심련과 내왕하였던 자들의 명단을 보고서 일일이 체포하였다. 다만 가석은 이미 도망하였는지라 붙잡지 못하였노라는 보고가 접수되었다. 이것 역시 가석의 선견지명이렷다. 당시 시인이 시를 지어 읊었으니:
가석과 같은 의로운 선비 천고에 드문데,
앞날을 미리 알고 화를 피함은 더욱 귀하도다.
아무리 그물을 펴고 붙잡으려 들어도,
하늘 너머 멀리 날아가는 천상의 새를 어이 잡으리.
한편 양순은 심곤, 심포를 심문하며 오랑캐와 내통한 죄를 불라 하였다. 심곤과 심포가 어찌 없는 일을 만들어서 자백할 수 있으랴. 그저 억울하다고 외칠 뿐이었다. 심곤 형제는 이렇게 고문을 받아 몸이 한 군데도 성한 구석이 없었다. 마침내 고문을 이기지 못하고 곤장을 맞다가 죽었다. 애달프다! 젊은 공자 둘이 이렇게 옥사하다니! 이 때 함께 붙잡힌 자들 가운데 오랑캐와 내통하였다고 하여 죽임을 당한 자가 수십 명이었다. 막내 심질만큼은 아직 강보에 싸인 어린아이라 죽음은 면하고 어머니 서씨와 함께 운주의 아주 궁벽한 곳으로 강제로 이거 되어 보안주에 더 이상 살 수 없게 되었다. 노해가 또 양순을 찾아와 이렇게 상의하였다.
“심련의 장남 심양은 소흥에서 유명한 수재 아니요? 만약 그가 나중에라도 출세하면 우리들을 가만 놔두지 않을 것이오. 이참에 같이 제거하여 후환을 영원히 없애는 것이 나을 것이오. 더불어 엄재상께 우리가 이렇게 노력하고 있음을 보일 수도 있을 것이오.”
양순은 노해의 말을 듣고서 바로 문서를 닦아 절강에 보내어 심양은 성상께 죄를 지은 자이니 어서 압송하여 심문케 하라고 요구하였다. 아울러 자신의 심복이자 문서담당관인 김소金紹를 불렀다. 양순은 김소에게 재간 있는 호송원 둘을 찾아내어 문서를 들고 가서 전하고 심양을 잡아오되 도중 기회를 봐서 심양을 죽여 버리고 그저 병들어 죽었노라고 보고하도록 시키라 하였다. 일이 성사되면 호송원들에게는 후한 상을 내릴 것이며 김소에게는 특별승진을 시켜주겠노라 약조하였다.김소는 양순의 특별한 명령을 받고서 바로 돌아가 이 일을 맡길만한 자를 물색하였다. 경험도 많고 믿을만한 호송원으로는 뭐니 뭐니 해도 장천張千과 이만李萬이 최고였다. 김소는 장천과 이만을 자신의 개인 사무실로 은밀히 불렀다. 김소는 장천과 이만에게 술을 대접하면서 스무 냥을 꺼내어 그들에게 주었다. 장천과 이만은 화들짝 놀라면서 말하였다.
“저희들이 한 일도 없는데 어찌 돈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이 건 내가 주는 돈이 아닐세. 총독 양순 나리가 주는 걸세. 자네들은 문서를 들고 절강성 소흥부에 가서 심양을 잡아 오되 도중에 기회를 봐서 이리이리 하게나. 이 일만 잘 처리하면 상을 두둑이 받을 수 있을 걸세. 어서 가서 일을 처리하고 보고해주게.”
“굳이 총독 나리가 아니더라도 문서관 나리께서 부탁하시는 것을 저희들이 어찌 거역할 수 있겠습니까?”
장천, 이만은 돈을 받아들고 김소에게 인사를 올리고 아문에 가서 문서를 받아들고 황망히 길을 나서 남쪽을 향해 떠났다.
한편, 심양은 호가 소하小霞로 절강성 소흥부의 지방과거 합격자인 수재로 나라로부터 녹을 받는 수재였다. 심소하는 부친이 엄씨 부자를 비난한 것 때문에 벌을 받아 북방 변경으로 유배된 일을 늘 가슴에 새기며 언제고 보안주에 가서 부친을 만나보고 싶어 하였다. 그러나 자신의 집안을 건사해줄 사람이 아무도 없는지라 쉽사리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그러던 어느 날 소흥부에서 사람이 나와서 밑도 끝도 없이 심소하를 결박하더니 소흥부 관아로 끌고 갔다. 소흥부의 지부는 심소하를 체포하라는 공문서를 심양에게 보여주더니 체포 문서에 대한 보고서와 심소하를 함께 호송관에게 건네주며 호송관에게 잘 살펴 돌아가라는 인사를 하였다. 심소하는 이제야 부친과 두 아우가 비명횡사하였으며 모친은 이름 모를 먼 곳으로 쫓겨났음을 알고선 목 놓아 울었다.
심소하가 통곡하며 소흥부 아문을 나서니 길가에 늘어서 있던 동네 사람들이 함께 울어주었다. 심소하는 동네 사람들의 울음소리를 듣고선 더욱 감정이 복받쳐 꺼억꺼억 울음 울었다. 바로 이 순간 심소하의 일가친척들이 소식을 듣고서 달려와 심소하와 이별을 나누었다. 이번에 가면 얼마나 고생할 것인지 잘 알고 있는 이들은 그저 말로라도 심소하를 위로하고 또 격려하였다. 심소하의 장인 맹춘원孟春元은 은자 한 무더기를 꺼내어 호송원에게 쥐어주며 사위를 잘 부탁한다고 머리를 조아렸으나 호송원들은 너무 적다며 받지를 않았다. 심소하의 아내 맹씨가 금비녀 한 짝을 빼내어 더해주자 그제야 모른 척하며 받아들였다. 심소하는 울면서 아내 맹씨에게 당부하였다.
“내가 이번에 떠나면 다시 살아 돌아오기는 힘들 것이오. 괜히 내 걱정하지 말고 그저 내가 죽은 거로 생각하고 친정으로 돌아가 지내도록 하시오. 그대는 뼈대 있는 집안의 자손이니 함부로 재혼하지는 않을 것이라 나도 그런 걱정은 하지 않는다오.”
그런 다음 다시 소실 문숙녀聞淑女를 가리키며 말을 이었다.
“저 문숙녀는 나이도 어리고 어디 의지할 곳도 없으니 개가하도록 해야 할 것이오. 하나 지금 내가 나이
서른인데도 아들이 없는 상황이고 문숙녀가 지금 임신 2개월째라오. 만약 문숙녀가 아들을 낳으면 우리 집안의 대를 잇게 되는 것 아니오. 부인께서는 그 동안 지내온 우리 부부의 인연을 생각하여서 그녀를 당신 친정으로 같이 데리고 가셔서 해산달이 되어 아들이든 딸이든 낳게 되면 그때 부인이 그녀를 떠나 보내주시오.”
심소하가 말을 채 마치기도 전에 문숙녀가 이렇게 말하더라.
“아니 낭군께서는 무슨 말씀을 그렇게 하십니까? 낭군께서 수천 리 먼 길을 가시는데 사고무친 돌봐줄 사람은 아무도 없으니 어떻게 낭군님 혼자 떠나게 할 수 있겠습니까? 형님은 친정으로 들어가시라고 하고 제가 머리가 헝클어지고 얼굴에 먼지가 묻더라도 낭군님을 모시고 같이 길을 떠나겠나이다. 낭군님 혼자 외롭게 길 떠나게 할 수도 없고요. 제가 괜히 형님께 부담을 줘서도 아니 될 것입니다.”
“자네가 같이 길을 가겠다고 하니 굳이 말릴 필요가 어디 있겠냐만 내가 지금 떠나는 길은 죽음을 향해 가는 길이로다. 뭐 하러 자네마저 죽을 길을 따라나선단 말이냐?”
“시아버님은 조정에서 벼슬살이하시고 낭군께서는 줄곧 고향에 계셨음은 아는 사람은 다 아는 사실입니다. 비록 시아버님이 억울한 누명을 입으셨다고 하더라도 낭군께서는 줄곧 고향에 계셨으니 어찌 함께 만나 모의를 할 수나 있었겠습니까? 제가 낭군을 따라 관가에 가서 이 사실을 낱낱이 고하여 낭군껜 절대 죄가 없음을 밝히겠나이다. 만약 낭군께서 옥에 갇히신다면 제가 옥바라지를 하겠나이다.”
맹씨 역시도 남편을 혼자 보내기에는 너무 걱정도 되었던 데다 문씨가 하는 말도 나름 일리가 있는지라 남편에게 문씨를 데리고 같이 길을 나설 것을 극력 권하였다. 심소하는 문씨가 현숙하기도 하고 지혜롭기도 하고 늘 아껴왔던 데다가 맹씨가 극력 권하기도 하니 그냥 그 말을 따르기로 하였다.
그날 밤 사람들은 모두 맹춘원 집에 몰려가 잠을 청하였다. 다음 날 장천, 이만은 어서 길을 떠나자고 재촉하였다. 문씨는 온몸에 하얀 옷을 입고 머리에는 파란 두건을 쓰고 보따리를 매고서 심소하를 따라 길을 나섰다. 이 이별의 슬픔을 어이 필설로 다할 수 있으랴! 길을 걷는 동안 문씨는 심소하의 곁을 한 발짝도 떠나지 않고 매 끼니마다 심소하를 챙겼다. 장천과 이만은 처음에야 그저 좋은 말로 대해주는 듯하였지만 양자강을 넘어 서주徐州에 도착하자 이젠 심소하의 고향과 얼마 정도 떨어졌다는 생각에 본색을 드러내어 이리저리 욕하고 함부로 대하여 심소하 부부를 견디기 힘들게 하였다. 문씨는 이런 걸 눈치 채고는 심소하에게 말하였다.
“저 호송원들은 우리를 어찌할 꿍꿍이속을 가지고 있는 것 같습니다. 저야 길을 잘 모르지만 아무튼 사람들이 잘 안 다니고 외진 곳을 지날 때면 꼭 마음의 준비를 하고 방비하여야 할 것입니다.”
심소하가 그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긴 하였지만 속으로는 반신반의하였다.
다시 며칠을 더 길을 떠났다. 두 호송원 장천과 이만이 서로 귀엣말을 주고받으며 은밀히 뭔가를 상의하는 게 자주 눈에 들어왔다. 우연히 그네들의 짐 꾸러미에서 날이 시퍼렇게 선 일본도를 발견하고선 가슴이 쿵쾅거리기 시작하였다. 그는 두려운 마음에 문씨에게 말했다.
“저 호송원들이 불량하다고 자네가 나에게 말한 적이 있는데 정말 내가 보기에도 그런 것 같네. 내일이면 우리가 제녕부濟寧府 언저리에 도착할 건데 제녕부를 넘어가면 태항산太行山과 양산악梁山濼이라. 사방이 거친 들판이라 도적 떼가 출몰하는 곳이오. 그런 곳에서 저놈들이 흉포한 짓을 저지르게 되면 나도 당신을 구하지 못하고 당신도 나를 구하지 못할 것이니 어쩌면 좋단 말이오?”
문씨가 남편 심소하에게 대답하였다.
“기왕에 이렇게 된 거 낭군께서는 어서 도망가십시오. 저는 혼자서 여기 남겠나이다. 저놈들이 그래 저를 잡아먹기야 하겠습니까?”
“마침 제녕부 동문東門에 풍주사馮主事라는 분이 부친상을 치르러 와있소이다. 이분은 부친과 같은 해에 과거에 급제한 분으로 의협심이 있으셔서 부친께서 특별히 가깝게 지내셨던 분이오. 날이 밝으면 그분에게 찾아가 볼까 하오. 그분이라면 나를 받아주실 것이오. 다만 자네가 힘없는 여자의 몸으로 저놈들의 행패를 견뎌내야 할 것이니 내 마음이 어찌 편안하겠는가? 자네가 저놈들의 패악질을 견뎌낼 만한 힘이 있다면야 내가 도망을 가더라도 그렇게 걱정은 안 될 것이오만. 그렇지 않으면 차라리 자네랑 나랑 같이 여기서 죽는 게 나을 것 같네. 이것도 다 우리의 운명이 아니겠는가!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네.”
“낭군께선 나름 살아날 방도가 있으니 어서 그 길로 가십시오. 저는 제가 알아서 할 것이니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장천과 이만은 낮에 고생했다며 술을 퍼마시고 코를 골며 잠들었는지라 심소하와 문씨가 이렇게 서로 상의하는 것을 전혀 눈치 채지 못하였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자리에서 일어나 길을 떠났다. 심소하가 장천에게 물었다.
“제녕부까지는 얼마나 남았소이까?”
“40리밖에 안 남았으니 반나절이면 도착하겠구먼.”
“제녕부 동문에 선친의 친구이신 풍주사가 살고 있소이다. 한데 풍주사가 지난번에 서울에 있을 때 선친에게서 은자 2백 냥을 빌린 적이 있고 그 빚 문서를 내가 갖고 있소이다. 풍주사가 지금 북신관을 관할하고 있고 마침 집에 은자도 있다고 하니 내가 가서 빚을 돌려달라고 하겠소이다. 그가 지금 이렇게 고생하고 있는 나를 본다면 분명 두말 않고 빚을 갚지 않겠소? 그럼 우리 같이 길 가는 노잣돈이 조금은 여유가 생길 것이니 생고생이야 면할 것 같소이다.”
장천이 이 말을 듣고 귀찮다는 듯이 머뭇거리고 있을 때 이만이 우선 그러라고 대답한 다음
에 장천에게 이렇게 속삭였다.
“이봐, 이 심도령이 그래도 사람이 거짓말할 거 같지는 않아. 게다가 둘째 부인하고 짐이 다 여기 이렇게 있는데 뭐 다른 짓이야 하겠어? 심도령한테 가서 돈을 받아오라고 하면 그게 다 너랑 나랑 우리 돈이 되는 건데 가지 말라고 말릴 이유가 없잖아?”
장천이 대답하였다.
“그렇긴 하지만 일단 객점에 가서 짐을 내려놓고 내가 둘째 부인을 객점에서 지키고, 자네가 그를 데리고 같이 다녀오는 게 문제가 안 생기고 확실할 것 같아.”
쓸데없는 이야기는 여기서 접자. 아침 아홉 시가 조금 넘었을 즈음에 일찌감치 제녕부濟寧府 성곽 인근에 도착하였다. 일행은 나름 정갈한 객점을 잡고 짐을 부렸다. 심소하가 장천과 이만에게 말을 붙여보았다.
“나랑 같이 동문3)에 갔다 와서 식사를 하셔도 늦을 것 같진 않는데요.”
이만이 대답하였다.
“내가 너랑 같이 가마. 혹시 그 집에서 술이랑 안주를 대접해줄지도 모르잖아.”
문씨가 일부러 남편에게 이렇게 말하였다.
“사람 낯빛은 상대방 지위의 높낮이에 따라 변하고, 사람 인심 쓰는 것은 돈 있고 없는 거에 따라 변한다고 하였으니 풍주사가 비록 시아버님에게 돈을 빌리기는 하였으나 시아버님은 이미 돌아가시고 당신도 이렇게 횡액에 빠진 것을 보면 순순히 돈을 갚으려 하지 않을 것입니다. 잘못하였다간 우세사기 십상인데 일단 요기를 하시고 길을 나서는 게 더 좋을 듯합니다.”
심소하가 이렇게 말하였다.
“아니 여기서 동문까지 뭐 얼마나 멀다고! 어차피 다녀와야 할 길인데 일찍 다녀온다고 뭐 손해라도 보나?”
이만은 2백 냥이 눈에 아른거려 어서 가자고 재촉하였다. 심소하가 문씨에게 다시 말했다.
“꾹 참고 기다려봐. 만약 내가 가자마자 금방 돌아오면 그건 바로 아무런 소득이 없다는 것이고, 만약 풍주사가 우리를 붙잡고 뭔가 대접해주면 그건 보나 마나 빌린 돈을 갚겠다는 것이니, 내가 내일 바로 가마를 불러 자네를 태워주겠네. 요 며칠간 나귀 잔등을 타고 오느라고 고생이 참 말도 못하게 심했을 텐데.”
문씨는 장천과 이만이 보지 않는 틈을 타서 심소하에게 눈짓을 하며 이렇게 또 말했다.
“낭군님 그럼 갔다가 늦지 않게 돌아오셔요. 저 혼자서 너무 오래 기다리지 하지 마셔요.”
이만이 이 말을 듣고 궁시렁대었다.
“아니 얼마나 먼 길을 간다고 이렇게 말이 많아, 이거 참 촌놈들이 하는 짓거리하고는!”
문씨는 심소하가 길나서는 것을 보고는 일부러 이만을 불러 세워 부탁하였다.
“만약 풍주사가 식사 대접한다고 붙잡아 시간을 너무 지체하면 나리가 꼭 어서 돌아가야 한다고 재촉하여 주시와요.”
“그야 여부가 있겠나!”
이만이 대답하였다. 이만이 객점의 계단을 밟아 내려가고 있을 때 심소하는 이미 저만큼 앞서 걸어 나가고 있었다. 이만은 방심하고 있던 데다 제녕부는 늘 다니던 곳이라 익숙하기도 하고 동문의 풍주사네 집도 알고 있었던 터라 아무런 의심도 하지 않았다. 이만은 얼마 안 있어 오줌도 마려워 도중에 길가 측간을 찾아 소변을 보고 나서 천천히 동문을 바라고 다시 길을 갔다.
한편, 심소하가 고개를 돌려보니 이만이 뒤따라오지 않는지라 냅다 풍주사 집까지 한숨에 달려갔다. 그래도 심소하에게 운이 있으려니 마침 풍주사 혼자서 대청에 있었더라. 심소하와 풍주사는 서울에서 서로 만나 안면이 있는 사이였더라. 풍주사는 심소하를 보더니 깜짝 놀랐다. 심소하는 인사를 올릴 겨를도 없이 풍주사의 옷소매를 부여잡고 말했다.
“조용히 말씀드릴 게 있습니다.”
풍주사는 뭔가 사연이 있나 보다 하는 생각에 심소하를 바로 서재로 데리고 갔다. 심소하는 서재에 들어서자마자 방성대곡하였다. 풍주사가 말했다.
“아니, 조카! 사연이 있으면 어서 말을 해야지. 우는 데 정신 팔려 일을 그르치면 어쩔라고?”
심소하는 여전히 울음을 그치지 못하면서도 입을 열어 하소연하기 시작하였다.
“선친께서 간신 엄씨 부자에게 억울한 누명을 입어 돌아가신 것도 억울한데 선친의 임지로 같이 떠났던 동생 둘마저도 양순과 노해에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제 겨우 저 하나 살아남았으나 저들이 저 사는 소흥부에 공문을 보내어 저를 붙잡아 벌을 주라고 합니다. 이제 우리 가문이 아예 멸족을 당하게 생겼습니다. 게다가 저를 호송하는 호송원 놈들은 불량하기가 그지없으니 이는 분명 양순과 노해의 지시를 받고서 태항산이나 양산 같은 으슥한 곳에서 저를 없애려는 수작입니다. 제가 이리 궁리 저리 궁리하다가 이렇게 숙부님을 찾아왔나이다. 숙부님께서 저를 좀 숨겨주시면 하늘에 계시는 선친께서도 숙부님의 은혜에 감격할 것입니다. 만약 숙부님께서 저를 숨겨주실 수 없으시다면 저는 차라리 저 돌계단에 제 머리를 부딪쳐 죽겠나이다. 그게 저 간사하고 흉악한 놈들의 손에 죽는 것보다 나을 것입니다.”
“조카는 너무 걱정하지 마시게. 내 침실 뒤쪽 벽에 이중벽이 있어 그 벽과 벽 사이에 숨으면 다른 사람들은 절대 찾을 수 없을 걸세. 내가 조카를 그곳에 안내할 테니 일단 거기서 며칠 숨어 지내시게나. 나에게 나름 다 생각이 있네.”
풍주사가 직접 심소하의 손을 잡아 이끌어 침실 뒤쪽으로 데리고 갔다. 침실 뒷벽의 널빤지 나를 들춰내자 지하로 통하는 통로가 나왔다. 그 통로를 따라 대여섯 걸음을 옮기니 불빛이 새어 나오기 시작하였다. 한 세 칸 정도의 방이 보였다. 사방은 창문 하나도 없이 그저 벽이 둘러쳐져 있었다. 누구에게도 들킬 일이 없는 그런 곳이었다. 매일 먹을 거는 풍주사가 직접 날라주었다. 풍주사 집안의 가풍이 너무도 엄한지라 그 누구도 풍주사가 하는 일을 밖에다 단 한 마디도 옮기지 않았다. 정말로:
깊은 산골짜기엔 표범 숨을만하고,
빽빽한 버들가지엔 갈까마귀 숨을만하다네.
계포 걱정은 할 필요 없으시네,
노나라의 주가朱家가 있지 않은가?3)
한편, 바로 이 날 이만은 측간을 다녀와서 동문의 풍가네 집을 바라고 갔다. 풍가네 집 앞에 도착하여 문지기에게 물었다.
“주사 나리 계신가?”
“예, 집에 계십니다.”
이만이 다시 물었다.
“하얀 옷을 입을 남자 한 명이 나리를 찾아온 적이 있지 않은가?”
“예 바로 지금 서재에서 점심을 같이하고 있습니다.”
이만은 그 말을 듣고 적이 안심이 되었다. 아직은 오후 1시가 갓 넘었을 시각, 아니나 다를까 하얀 옷을 입은 남정네 하나가 걸어 나왔다. 이만이 급히 다가가 바라보니 아니 이건 심소하가 아니지 않은가? 그 남정네는 대문을 나서서 그냥 가버렸다. 이만은 조바심이 나기 시작하였다. 배도 고파 오는지라 문지기에게 물었다.
“아니 나리랑 같이 서재에서 식사를 한다고 하는 그 양반은 앉아있기만 하고 왜 이리 나오지를 않는 거야?”
“아니 아까 한 분 나가지 않았어요?”
“그럼 지금 나리 서재에 손님이 있는 거야, 없는 거야?”
“그거야 나는 모르죠.”
“방금 나간 그 하얀 옷 입은 사람은 누구야?”
“아, 나리의 처남으로 자주 놀러 오시곤 하시죠.”
“그럼 나리는 지금 어디 계신가?”
“나리는 점심 드시고 나시면 꼭 낮잠을 주무시니까 지금은 낮잠을 주무시고 계시겠네요.”
이만은 문지기랑 말을 나누면서 어 이거 이상한데 하는 생각이 들면서 엄청 당황하기 시작하였다.
“사실 나는 선부와 대동을 관할하는 총독의 명령을 받잡고 소흥부에 사는 심소하가 천자께 죄를 지었다 하여 압송하는 중일세. 제녕부에 이르렀을 때 그 녀석이 자기 선친과 동년에 과거에 급제한 분이 계시니 인사를 드리고 싶다고 간청하기에 여기까지 데리고 온 것이란 말일세. 근데 한 번 집안에 들어가더니 이거 아무리 기다려도 나오질 않네. 아마도 아직도 서재에 있을 것 같은데. 근데 지금 자네는 모르겠다고 하고! 미안하지만 자네가 안에 들어가서 어서 길을 떠나야 한다고 말 좀 꼭 전해주시게.”
문지기가 일부러 이렇게 소리를 내어 대꾸하였다.
“아니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요? 당최 알아들을 수가 있어야지.”
이만은 억지로 성미를 죽이며 저간의 사정을 세세하게 이야기해주었다. 문지기는 이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가래침을 확 끌어올려 뱉어버리고는 욕을 해대었다.
“아니 어디서 귀신 씻나락 까먹는 소리여, 무슨 심공자인지 심맹자인지가 왔다는 거여? 지금 나리가 상중이라서 외부 손님은 하나도 받고 있지 않은데. 그리고 이 집의 대문이 이 몸의 소관이라 내 허락을 받지 않고는 누구도 드나들 수가 없다고. 아니 지금 당신 무슨 황당한 소리를 하는 거냐고! 지금 백주대낮에 남의 집에 들어와 도적질이라도 하겠다는 거야? 그러니까 무슨 총독입네 하는 사람 사칭해가지고 여기 물건이라도 어떻게 쓱싹 해보시겠다 이거지. 어서 썩 꺼져. 이 몸한테 된통 혼나기 전에.”
이만은 문지기의 말을 듣고선 더욱 황당했다. 급기야 화를 버럭 내며 소리를 질렀다.
“이 심소하는 대역무도한 죄를 지은 사람이라고. 내가 지금 농담하는 줄 알아! 어서 가서 네 나리를 모시고 나오라고. 내가 할 말이 있으니까.”
“아니 나리가 지금 주무시고 계신데 어떻게 내가 감히 나리를 깨운단 말이야. 아니 이건 뭐 생판 촌놈이구먼. 물정을 이렇게도 모를까.”
말을 마치더니 문지기는 그대로 몸을 돌려 어깨를 흔들며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아니 이놈의 문지기 앞뒤가 꽉 막혔구먼. 주인한테 말 한마디 전하는 게 뭐가 어려워. 심소하가 저 안에 있는 게 분명한데 말이야. 나한테 관에서 준 공문서가 있지 않나. 그래 내 개인 일도 아니니 내가 직접 안에 들어가서 알아보면 뭐 어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