굽이진 연못의 연꽃曲池荷/당唐 노조린盧照鄰
浮香繞曲岸 연꽃 향기 굽이진 언덕 감돌고
圓影覆華池 달빛 아름다운 연못 감싸고 있네
常恐秋風早 가을바람 일찍 불어와 다 시들어
飄零君不知 그대가 보지 못할까 늘 걱정하네
이 시는 노조린(盧照鄰, 630~680추정)이 만년에 쓴 시로 알려져 있다. 노조린은 범양(范陽) 출신이다. 이곳은 한나라 때 탁현(涿縣)으로 유비의 고향인데 지금 북경 남쪽에 위치한다. 노조린은 처음에는 문서를 관리하는 아전 비슷한 일을 하였는데 그 재주를 인정받았다. 당시 시로는 왕발, 양형, 낙빈왕과 함께 초당 사걸로 꼽히지만 실제 인생은 괴로웠던 것으로 보인다. 나중에 사천성 신도현(新都縣)의 현위를 맡았는데 금방 수족이 마비되는 증세가 와서 그만두고 태백산(大白山)에 가서 요양을 하였다. 태백산은 지금 서안 남쪽에 있는 종남산(終南山)을 말한다.
그런데 도가 수련을 하다가 수은에 중독되고 마침 부친상을 만나 애통해 하다가 병이 심해졌다. 병과 가난 속에 고관의 도움으로 근근이 살아가다가 마침내 하남 구자산(具茨山) 기슭으로 가서 땅도 좀 마련하고 주변의 영수(潁水)를 끌어들여 집을 빙 둘러가게 해 놓고 요양을 했지만 그래도 병이 낫지 않아 친척들과 작별을 하고는 영수에 스스로 빠져 자살하였다.
이 내용은 《당재자전(唐才子傳)》 에 있는 내용을 발췌하여 풀어 본 것이다. 이런 긴 이야기를 하는 것은 이 시에 보이는 우의성(寓意性) 때문이다. 시인은 달빛이 비치는 연못에 핀 몽환적인 연꽃의 아름다움이 서리가 와서 다 망쳐지면 어쩌나 하는 근심을 하고 있다. 이 근심은 결국 병든 시인 자신에 대한 연민의 투영이다.
연꽃의 향기나 달빛에 빛나는 연꽃의 자태는 결국 시인의 박학이나 재능이며, 그 연꽃이 일찍 시들어버리는 것은 바로 병든 자신의 미래에 대한 불안과 걱정이다. 바로 회재불우(懷才不遇)의 탄식인 것이다.
2구의 원영(圓影)은 ‘연 잎의 둥근 그림자’라고 보기보다는 ‘달빛’으로 보인다. 연꽃과 연잎을 직접 말하지 않고 향기와 달빛을 말한 것은 그 아름다움을 최대한 상상하게 하기 때문이다. 마지막 구는 굴원(屈原)이 지은 《이소(離騷)》의 “초목의 잎이 모두 떨어지니, 미인을 제 때 만나지 못할까 걱정이네[惟草木之零落兮, 恐美人之遲暮]”라고 한 대목의 뜻을 취하였다. 이런 맥락을 이해하고 보면 이 시는 결국 시인의 자화상인 것이다.
화가들도 자화상을 그리지만 시인들도 자화상을 그린다. 김시습이 그랬고 강세황이 그랬고 서정주가 그랬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서화와 시문은 자화상 아닌 것이 거의 없을 정도이다. 시에는 산수와 함께 늘 그 사람의 인격이 있고 삶의 호흡이 있고 학식이 담겨 있다. 그러기에 과학이 아니고 예술이고 문학인 것이다. 대량으로 모방할 수 없고 진품만이 그에 걸맞은 대접을 받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365일 한시 2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