류얼시劉二囍-서점의 온도書店的溫度 8

8 샤오옌小燕, 서점의 청각장애인 직원书店里的听障员工

“광저우는 번화하고 바쁜 도시예요. 하지만 우리의 이 독서의 성은 너무나 조용하죠. 우리는 문자로 책을 읽고, 문자로 생각을 나누고, 문자로 서로를 느껴요. 이렇게 소박한 방식으로 사람들과 교류할 수 있어서 저는 기뻐요. 저는 책 속에 빠져 있는 사람들을 최대한 방해하지 않으려고 해요.”

– 샤오옌

이번에는 1200북숍의 청각장애인 직원, 샤오옌(小燕)에 관해 이야기하려 한다. 청각장애인을 서비스 직원으로 고용하는 것은 꽤 드문 일이다. 그런데 돌이켜보면 여기에는 매우 긴 사연이 담겨 있다. 먼저 4년 전으로 돌아가 보자.

*

2012년 10월, 그때는 내가 타이완에 가서 생활한 지 얼마 안 됐을 때였다. 그 전에 나는 중국 이외의 지역에서 살아본 적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가오메이(高美) 습지에 가는 길에 놀라운 광경을 보았다.

그날 저녁 숙소에 돌아오자마자 나는 아래와 같은 글을 썼다.

“교문 앞에서 168번 버스를 타고 수십 개 정류장을 지나 칭수이(淸水) 정류장에 닿았다. 중간 경유지인 그곳에서 한 시간을 기다려 또 다른 버스를 타야 했기 때문에 우리는 흩어졌다 다시 모이기로 했다. 나는 그 도시의 외곽을 한가로이 돌아다니기 시작했다. 그곳에는 시끌벅적한 점포도 없고, 멋들어진 빌딩도 없고, 환한 거리도 없었다. 꼭 중국의 소도시 같으면서도 또 다른 버전이었다. 나는 편의점에서 물 한 병을 사고 나와 문 앞 파라솔 밑에 조용히 앉아 있었다. 사람들이 계속 앞을 오갔는데 그중 세 명이 강한 인상을 남겼다.

첫 번째 사람은 키가 140센티미터도 안 되는 성인 남성이었는데 음료수 한 병을 갖고서 가게에서 나와 스쿠터를 타고 가버렸다.

두 번째 사람은 눈빛이 멍해 보이는 정신지체 남자아이였는데 방금 산 녹차 한 병을 들고 내 뒤에서 어슬렁거리다가 쓰레기통에 빈 병을 버린 뒤 자전거를 끌고 사라졌다.

세 번째 사람은 체형이 이상하고 걸음이 불편한 중년 남성이었는데 검은 승용차에서 나와서 생수 두 병을 갖고 돌아와 차를 몰고 훌쩍 떠나갔다.

나는 그 세 사람이 신체 기능이 정상이 아님을 확인했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런 사람을 볼 확률이 그렇게 높다는 사실에 탄식했고, 또 타이완 사회에서는 신체 기능이 정상이 아니어도 정상인처럼 살아갈 수 있다는 사실에 더 탄식했다. 지금 내가 있는 타이완에서는 건강하지 못한 이들도 구걸할 필요 없이 존엄성을 누리고 있는데, 전에 내가 있었던 중국에서는 건강한 이들조차 점점 더 존엄성을 버리고 구걸을 택하고 있다.“

당시 나는 타이완의 장애인 비율이 특별히 높은 것은 아닌지 잠깐 의심했다. 왜냐하면 중국에서는 그런 이들과 자주 마주치기가 힘들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나중에 내가 틀린 것을 깨달았다. 중국에는 장애인이 없는 것이 아니라, 그들이 대중 앞에 나서는 데 필요한 편의 시설과 충분한 취업의 기회가 없을 뿐이다. 그들은 집에 있을 수밖에 없으며 밖에 나오더라도 대부분 육교 위나 지하도 안에 있다.

그 후에도 계속 타이완에 머물며 나는 항상 그들을 보았다. 사실 맨 처음에 맥도널드에서 체형이 이상한 직원에게 서비스를 받았을 때는 속으로 불만을 느끼기도 했다. 하지만 그 뒤에 숨겨진 배려를 안 뒤로는 다시는 색안경을 끼지 않았다. 매번 그들과 마주칠 때마다 가능한 한 미소를 지어주려 했다.

사회적 취약계층에게 취업 자리를 제공하고 그들이 보통 사람처럼 자아실현의 기회를 갖게 해주는 것, 이것이 바로 내가 타이완에서 감동을 받은 점이자, 타이완인이 지닌 인간미의 표현이었다. 그래서 24시간 서점을 열 기회를 얻었을 때, 나는 서점이 인문뿐만 아니라 인정을 더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다만 그때는 장애인을 직원으로 고용하는 문제를 진지하게 생각하지 못했을 뿐이었다.

시간이 흘러 2015년 1월의 어느 깊은 밤, 나는 카메라를 들고 서점 안을 어슬렁거리며 ‘1인 1스토리’를 취재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것은 서점의 한 프로그램으로, 직원마다 자유롭게 서점에 온 손님을 인터뷰해 그들의 인생 이야기를 공유하는 것이었다. 그때 나는 두 아가씨 앞에 앉았다. 그런데 말을 걸자마자 그 두 사람이 아예 듣지도 말하지도 못한다는 것을 알았다.

결국 우리는 펜으로 종이 위에서 대화를 진행했다.

“우리는 선전에서 왔는데 너무 늦어 돌아갈 수가 없어서 여기서 밤을 보내러 왔어요.”

그리고 그중 한 명이 이런 이야기를 했다.

“저는 얼마 전에 직장을 관뒀어요. 사장이 제 월급을 떼어먹었거든요. 그렇게 불공평한 대우를 받는 것을 참을 수가 없었어요.”

마지막으로 그녀는 자신의 소원을 말했다.

“커피숍이나 서점을 열고 장애인을 점원으로 고용하고 싶어요. 그러면 저뿐만 아니라 이 친구의 일자리까지 해결되잖아요.”

두 사람은 서점이나 커피숍 같은 업무 환경을 무척 동경했다.
그녀의 생각이 내 마음을 움직였다. 서점은 상대적으로 리듬이 완만하고 조용한 장소인데다 대다수의 손님들이 우호적이다. 이런 업무 환경은 확실히 그들이 적응하기 쉬웠다.

나는 그 일의 실현 가능성을 고민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들과 폭넓게 접촉할 경로가 없었는데, 며칠 뒤 우연히 프리저브드 플라워 공방에 갔다가 그곳 직원들이 거의 장애인라는 것을 알았다. 나는 그녀들이 자기 일에 집중하고 있는 것을 보았다. 비록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지만 눈이 마주쳤을 때 눈빛에 담긴 미소를 보고 나는 그녀들이 행복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그런 미소는 인정받고, 존중받고, 공정하면서도 우호적인 대우를 받을 때 나오는 것이었다.

나는 바로 그 공방의 책임자에게 며칠 전 서점에서 있었던 일을 털어놓은 뒤, 가능하다면 나도 서점에서 시험 삼아 청각장애인에게 일을 제공해보고 싶다고 말했다. 그는 내 계획을 지지해주었고 그 후로 조금 복잡한 과정이 있기는 했지만 어쨌든 우리는 함께 그 계획을 성사시켰다.

2015년 중반, 1200북숍 톈허북로점이 문을 열었을 때 두 명의 청각장애 여성이 그곳의 직원이 되었다. 그중 한 명이 바로 앞머리의 그 샤오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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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오옌은 한 살 때 병으로 청력을 잃었다. 부모님은 그녀를 일반 학교에 넣으려고 시도했지만 결국 실패하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그녀는 어려서부터 집에서 멀리 떨어진 특수학교를 다녔다. 그리고 졸업 후에는 전자제품 회사에 들어가 휴대폰 액정유리를 깨끗이 닦는 일을 했다.

반복적인 노동이 너무 지겨워서 얼마 안 돼 샤오옌은 직장을 나왔다. 그리고 1200북숍에 들어오기 전까지 이 90년대 생 아가씨는 한참을 좌충우돌하며 지냈다. 청각장애인이 할 수 있는 일은 결코 많지 않았는데, 그녀의 친구들 중 누구는 인터넷쇼핑몰을 차렸고 누구는 디자인 일을 했으며 교사는 운이 좋아야 될 수 있었다. 그녀는 어느 날엔가 자기가 서점의 일원이 될 것이라고는 한 번도 생각해본 적이 없었다.

처음에 그녀는 실수가 잦았다. 그녀가 주로 하는 일은 서빙과 설거지, 테이블 정리, 손님들의 주문을 돕는 것이었다. 각 테이블마다 “서점 내에 청각장애인 직원이 있습니다.”라는 표시가 있기는 했지만 모든 손님이 다 완전한 문장으로 필요한 사항을 적어주지는 않았다. 그녀는 이가 빠진 문장을 보며 머리를 굴리다가 정 이해가 안 가면 직접 가서 손님에게 물어봐야 했다. 하루에도 수백, 수천 개의 컵을 닦고 역시 수많은 손님들과 접촉해야 하는 일은 막 사회에 발을 디딘 그 아가씨에게 벅찬 도전이었다. 처음에는 늘 해야 할 일을 까먹거나 틀린 메뉴를 가져다주곤 했다.

더군다나 모든 손님이 다 호의적인 것도 아니었다. 어느 날 밤, 술에 취한 남자가 카페 구역에 앉아, 주문을 받으러 온 그녀에게 계속 떠들기만 하고 글로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거부했다. 그는 그녀가 청각장애인라는 것을 아예 믿지 않고 장애인등록증을 보여달라고 요구했다. 결국에는 점장이 달려와 그 주정뱅이를 쫓아내야 했다. 그녀는 화나고 풀이 죽은 샤오옌에게, “자기 할 일을 잘 했으니 괜찮아요.”라고 말했다.

이제 2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다. 샤오옌과 다른 청각장애인 직원은 이미 손님들과 원활하게 의사소통을 한다. 종이에 글을 써서 대화를 하기 때문에 효율은 좀 떨어지지만 다들 충분히 두 사람을 참아주고 배려해준다. 나는 이 점이야말로 두 사람이 성실히 일하는 것과 불가분의 관계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 샤오옌은 점원들에게 간단한 수화를 가르쳐주었고 요긴한 말을 카드로 준비해두었다가 필요할 때 손님들에게 보여줘 주문을 돕는다. 《표정의 독심술》이라는 책을 읽으며 다른 사람의 표정을 살피는 법을 익히기도 한다. 그래서 남이 눈썹을 찌푸리면 바로 다른 행동을 취한다. 그리고 이따금 실수를 하면 혀를 내밀고는 “제가 가끔 잊어먹는 일이 있으니 꼭 지적해주세요.”라고 글을 적어 보여준다. 그녀는 남이 신경 쓰지 못하는 부분을 헤아릴 줄 알아서 사람들과 잘 융합하고 있고 모든 사람이 그녀의 트레이드마크인, 눈을 구부리고 입을 내밀며 짓는 미소를 기억한다.

우리가 보기에 그녀는 다른 90년대 생 아가씨들과 별로 다르지 않다. 히가시노 게이고의 《나미야 잡화점의 기적》을 좋아하고 잭 케루악의 《노상》을 읽으며 미래의 어느 날, 바깥 세계를 보러갈 수 있기를 꿈꾼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가진 것에 만족하면서도 언젠가 승진하고 싶다는 작은 야심도 있고, 연애도 좀 하라는 엄마의 채근에 조바심도 치고, 엄마의 건강 문제로 걱정도 하고, 가끔씩 소소한 일탈을 하고 싶어 심야영화를 보고 싶어 한다. 하지만 퇴근이 늦고 집도 멀어서 계속 시간을 못 내고 있다.


우리 서점에서 장애인 직원을 모집한다는 소문이 퍼져, 장애인 몇 명이 찾아와 면접을 보았다. 지금 1200북숍의 네 지점에서는 모두 청각장애인 직원이 일하고 있다.

그녀들에게 취업의 기회를 제공한 것은 내게는 작은 수고에 불과했다. 사실 우리 서점으로서는 별로 희생한 것이 없다. 솔직히 말해 이를 위해 큰 대가를 치러야 했다면 나는 결코 이런 일을 벌이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치러야 할 대가가 적고 누군가에게 큰 도움이 된다면 나는 앞으로도 이런 일을 하고 싶다.

이것은 지나가는 노인을 부축해 길을 건너는 것과 같다. 나는 일이 분의 시간을 낭비하겠지만 당신과 노인 그리고 당신을 보는 사람까지 모두가 기분이 좋아진다. 집의 소파 하나를 배낭족에게 제공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나는 그를 접대하느라 조금 번거롭긴 하겠지만 낯선 이의 우정과 이야기를 선물로 얻을 것이다. 그리고 길가에서 떨고 있는 부랑자에게 헌옷을 주는 것도 똑같다. 나는 옷을 정리하고 세탁하느라 시간이 들겠지만 다른 사람을 따뜻하게 해준 덕에 나도 따뜻한 기분을 느낄 것이다.

이것들이 모두 내가 생각하는 사소한 수고이며 내가 서점에서 하는 일도 똑같은 이치이다. 우리 서점이 사람들에게 선의와 온정을 제공하고 있는 것 때문에 많은 이들이 나를 착한 사람으로 잘못 알고 있다. 그렇게 도덕적으로 높은 평가를 받으면 나로서는 영 난처하고 적응이 안 된다. 사실 나는 착한 일을 한 적도 있고, 나쁜 일을 한 적도 있는 사람이다. 길거리의 개를 거둬 서점에서 기르기도 하지만 폭력으로 일부 손님들을 쫓아낼 수도 있는 사람이고, 따스한 글을 쓸 줄도 알지만 야한 시를 쓸 줄도 아는 사람이다.

이야기가 조금 빗나갔다. 작년 서점의 연례 모임은 직원 숫자가 그 전해보다 많이 늘어나 분위기가 꽤 시끌벅적했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청각장애인 직원들이 아직 하나로 녹아들지 못했다. 그녀들은 휴대용 메모판을 이용해 옆의 동료들과 소통했지만 확실히 글을 쓰는 속도는 사람들이 웃고 떠드는 리듬을 따라가지 못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을 멍하니 구경만 하고 있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속으로 조금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도 다행히 올해의 우수사원을 뽑는 익명 투표에서 샤오옌이 최다 득표를 했다.
나는 그녀에게 상과 상금을 주면서 그녀에게 꿈이 뭐냐고 물었다.

“세계를 돌아다니고 싶어요. 바다도 보고요. 또 하나, 저도 서점을 열고 우리 서점의 라떼 같은 개를 키우고 싶어요. 서가에 제가 좋아하는 책을 잔뜩 꽂고요.”

나는 또 물었다.

“만약 다른 사람의 말을 들을 수 있다면 제일 먼저 하고 싶은 일이 뭐죠?”

그녀는 전화를 거는 것이라고 말했다.

“엄마 아빠한테 전화를 걸어 말씀드릴 거예요. 내가 두 분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고 말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