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벽에 정자사를 나와 임자방을 전송하며曉出淨慈寺送林子方/송宋양만리楊萬里
畢竟西湖六月中 마침내 서호는 유월이 한창이라
風光不與四時同 풍광이 다른 계절과는 다르구나
接天蓮葉無窮碧 하늘 닿은 연잎은 끝없이 푸르고
映日荷花別樣紅 햇빛에 빛나는 연꽃은 유난히 붉네
이 시를 소동파(蘇東坡)의 시로 소개한 책도 있으나 실제로는 양만리楊萬里, 1127~1206의 시이다. 내가 187회에 소동파의 시라고 한 시가 바로 이 시이다. 양만리가 61세 되는 1187년에 지은 시이다. 이 시의 제목을 흔히 <서호(西湖)>라고 한다. 간결하고 시의 내용과 잘 어울린다.
다만 본래의 제목 <새벽에 정자사를 나와 임자방을 전송하며[曉出淨慈寺送林子方]>에 유의하면 이 시를 더욱 깊이 감상할 수 있다. 이 시는 동일 제목에 2수가 있는데 그 두 번째 시로 새벽에 임자방(林子方)을 전송하기 위해 정자사에서 서호로 나온 것으로 보인다. 임자방은 양만리와 같은 해에 진사에 급제하고 같은 해에 벼슬을 시작한 친구로 직각비서(直閣秘書)를 지낸 학자이다. 정자사는 지금 서호의 뇌봉탑(雷峰塔) 뒤 산록에 있는 큰 절인데 서호를 감상하기에 더할 나위 없이 좋은 위치에 있다. 그리고 달이 채 사라지기 전 새벽이라는 시간에 이 연꽃을 감상하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아무리 연꽃이 좋아도 날도 더운데 한 낮에 감상하면 무슨 재미가 있겠는가? 신선한 아침 공기를 호흡하며 갓 피어난 연꽃을 감상하는 장면을 상상해야 한다. 그것도 아주 친밀하게 지내는 사람과 작별을 앞두고 말이다. 이처럼 한시는 시인이 본래 처음 정한 제목을 잘 헤아려 보는 것이 중요하다.
그러므로 앞 두 구를 “반드시 서호는 6월 달에 풍광이 다른 계절과 다르다.”라는 일반적인 진술로 이해하면 안 되고, “지금 드디어 서호가 6월 달이 되어 풍광이 다른 계절과 다르다.”라고 이해해야 한다. 이런 이해는 바로 앞에서 설명한 제목의 해석에 기초한 것이다. 따라서 현토를 하면 ‘畢竟西湖六月中이라 風光不與四時同을’이라 해야지, ‘畢竟西湖六月中에 風光不與四時同을’이라 하면 안 되는 것이다.
그렇다면 ‘필경’, 즉 ‘결국’, ‘마침내’라고 해석되는 이 말을 통해 이 시인이 서호의 경치를 나름대로 잘 안다는 추정과 함께 당시 서호의 가장 아름다운 경치를 만났다는 반가움을 감지하게 된다. 이런 반가움은 좋은 벗과 이별한다는 아쉬움을 만나 더욱 격정적인 찬탄으로 드러난다. 이 점이 바로 ‘필경’을 이 시의 맨 앞에 쓴 이유이다.
벽(碧)과 홍(紅)으로 색채 대비를 하고, 필, 육, 월, 불, 접, 엽, 벽, 일, 별 등 9자의 입성자를 써서 시를 긴장시킨 것도, 결국 벗과의 이별에 대해 한 마디도 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 이별의 아쉬움을 표현한 것이니 이 시인의 수준이 어떤가를 보여준다. 이런 점이 시가 예술의 특징이기도 하다.
내가 몇 년 전에 서호를 집중해서 살펴보러 갔을 때 이 정자사에서 보는 저녁 경치가 아주 좋았으며, 그 앞에 호수 가에 있는 뇌봉탑에 올라가서 내려다보는 서호의 풍광은 누외루(樓外樓)에서 술 한 잔 하며 바라보는 풍경과 함께 잊을 수 없다. 지금 이 시로 보건대 바로 지금쯤 서호에 가면 수많은 연꽃과 함께 그 아름다운 경치를 모두 가슴에 담을 것이라 생각한다. 서호에 갈 기회가 있는 사람이면 이 시와 함께 소동파의 <맑았다가 흐려지는 서호 가에서 한 잔 마시며[飮湖上初晴後雨]>(143회)도 아울러 기억하면 좋겠다.
365일 한시 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