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 시견오施肩吾 여름비가 내린 뒤 푸른 연이 있는 절夏雨後題靑荷蘭若

여름비가 내린 뒤 푸른 연이 있는 절夏雨後題靑荷蘭若/당唐 시견오施肩吾

僧舍清涼竹樹新 절집은 청량하고 대숲은 산뜻하니
初經一雨洗諸塵 한바탕 여름비 먼지를 씻어냈네
微風忽起吹蓮葉 산들바람 불어와 연잎을 흔드니
靑玉盤中瀉水銀 푸른 옥반에서 수은 방울 쏟아지네

난야(蘭若)는 범어 아란야(araṇya)를 음역한 아란야(阿蘭若)의 약칭이다. 이 말은 ‘산림이나 황야’를 말하는데, 그 속뜻은 ‘출가 수행자들이 조용히 수행하기에 적합한 장소’라는 의미를 지닌다. 달리 연야(練若)라고도 한다. 그런데 이 말이 장소라는 뜻 외에도 아란야가(阿蘭若迦, āraṇyaka), 즉 이곳에 거주하는 사람이라는 의미도 지닌다. 이 말은 사원, 정사(精舍), 사찰 등의 의역과 대비되는 말이다.

갑자기 우리말 ‘절’이 불교가 들어오기 전에 있었는지, 무슨 의미였는지 궁금해진다. 찾아보니 역시 절을 하는 곳이라는 데서 연유했다는 학설이 있다. 그 외에 신라 때 선산 모례(毛禮)의 집에 고구려 아도 화상이 와 있었는데, 모례는 ‘터러기’ ‘털’이라는 경상도 말이니, 이 말 ‘털’이 ‘뎔’로 변하고 다시 ‘절’로 변했다는 학설도 있다.

그런데 난야(蘭若)는 음차이긴 하지만 ‘Coca-Cola’를 ‘가구가락(可口可樂)’으로 음차하는 데서 보듯이 의미도 살리고 있다는데 주의해야 한다. 이 말은 난초(蘭草)와 두약(杜若)이라는 향초를 연상하게 하여 청정한 곳이라는 의미를 역시 담고 있기 때문이다.

제목을 곧이곧대로 풀이하면 ‘여름비가 내린 뒤에 푸른 연꽃이 있는 절에 대해 쓰다.’가 된다. 금방 한바탕 여름 비가 지나간 뒤라 대나무 숲과 연이 아주 선명하다. 먼지하나 없이 깨끗해진 연 잎에서 물방울이 쏟아진다는 것이 단순한 자연현상의 아름다움 이상의 것을 말하는 듯도 하다. 수은이란 말에서 이 시인이 도교에 심취하여 연단(鍊丹)을 한 것이 자연스럽게 드러난다.

연 잎에 있는 물방울이 쏟아질 때 보면, 잎을 옮겨 가며 유동하는 물방울에 따라 연잎이 기우뚱하고 다시 그 움직임에 물방울이 달아난다. 큰 물방울이 작은 물방울로 나뉘기도 하고 작은 물방울이 합쳐져 큰 물방이 되기도 하는 아름다운 광경을 연출한다. 굳이 연잎이 아니라도 여름에 시골집 마당에 자라는 토란에서 물방울이 춤추는 것을 흔히 볼 수 있다. 이 시인이 전달하고자 하는 것도 그 ‘땡그런’ 물방울들이 영롱하게 빛나며 쏟아지는 바로 그 장면일 것이다.

시견오(施肩吾, 780~861)는 당나라 항주 사람으로 진사 시험에서 장원을 하였다. 벼슬을 하다가 은거하였는데 당시 백거이와 교유가 있었다. 그는 859년 나라가 혼란해지는 것을 느끼고는 온 일가를 이끌고 큰 배를 타고 여러 날 항해하여 대만 팽호(澎湖) 열도에 들어가 살았다. 그 팽호에 가서 지은 시도 있다. 대만 왼쪽에 보면 섬들이 많이 있는데 그게 바로 팽호 열도이고 그 열도를 개척한 선구자가 지금 이 시를 쓴 시견오이다.

澎湖 출처 wikipe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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