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금소설古今小說- 진어사가 금비녀와 금팔찌를 교묘하게 조사하다陳御史巧勘金釵鈿 5

진어사가 금비녀와 금팔찌를 교묘하게 조사하다 5

다음 날 아침 현청 문에 공고문이 하나 걸렸다. 담당 어사가 감기가 들어 공무를 쉬노니 각 관원들은 자신이 맡은 일을 예정대로 처리하되 별도의 지시가 있을 때까지 대기하라. 현청의 관리들이 아침저녁으로 담당 어사인 진렴에게 문안드린 것이야 말할 필요도 없겠다.

여기서 이야기는 두 갈래로 갈린다. 양상빈은 노학증이 죄를 뒤집어쓰고 죽음을 기다리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는 한숨을 돌렸다. 어느 날 대문 앞에서 요란스런 소리가 나서 벽 틈으로 살며시 살펴보니 포목장수 하나가 머리에는 상주 두건을 쓰고 몸에는 빛바랜 도포를 입고서 강서성 억양으로 연신 소리를 지르고 있었다. 말하기를 자신은 남창南昌사람으로 포목을 팔러 돌아다닌다는 것이었다. 고향집 노친네가 세상을 떠나서 황급히 돌아가야 하는지라 팔다 남은 몇 백 필 포목을 임자만 만나면 밑지더라도 한꺼번에 떨이로 넘기겠다는 것이었다. 구경하던 사람들 가운데 누구는 한 필을 사겠다, 누구는 두 필을 사겠다 하나 그 포목장수는 연신 찜찜해 하면서 도무지 팔려고 들질 않았다.

“이렇게 한 필 두 필 끊어서 팔면 어느 세월에 다 팔고 고향으로 간단 말이요? 누구라도 한 몫에 다 가져간다며 내가 값은 정말 헐하게 드릴 건데.”

양상빈은 집안에서 담장너머의 흥정을 한참이나 지켜보다가 대문 밖으로 나와 물었다.

“그래 남은 포목이 모두 몇 필이나 되오, 본전만 치면 얼마요?”

“4백여 필인데, 본전만 해도 2백 냥입죠.”

“그 정도 양을 한꺼번에 살 사람을 찾는 게 어디 쉽나, 팍 깎아줄 맘이 있어야 살 사람이 나서지 않겠소?”

“열 냥 정도야 뭐 깎아줄 수도 있겠죠, 미적대지 않고 바로 사가기만 한다면 나도 무거운 포목 짐 벗어던지고 가볍게 돌아갈 수 있지 않겠소.”

양상빈이 포목 샘플을 보더니 다시 배까지 쫓아와 거기에 쌓아둔 포목을 자세히 살핀다. 그러더니 연신 “거참 물건은 나무랄 데 없이 좋네” 라고 칭찬하였다.

“아고 마 살 것도 아니면서 남의 물건 이리 들추고 저리 들춰서 괜히 장사만 방해하고 있어.”

“왜 내가 안 살 것처럼 보여?”

“진짜 사실 거라면 은자를 가지고 와서 보여주시구려.”

“추가로 열 냥만 더 깎아주면 내가 80냥에 반절을 팔아주지.”

“무슨 그런 터무니없는 말을 하시우. 그래 2할이나 깎아주고 팔려고 하는 사람이 어디 있어? 게다가 반밖에 안 산다면서. 나머지 반은 누구한테 팔아? 이건 뭐 나랑 장난하자는 것도 아니고. 정말 안 살 게 틀림없구먼.”

그 포목장수는 비꼬는 듯한 말투로 이렇게 중얼거렸다.

“이 북문 밖에 사람들이 이렇게 많이 사는데 정작 돈 있는 사람은 하나도 없어 내 포목 4백 필도 못 사주는구나. 관두라지 뭐, 동문에 가서 물건주인을 찾아보는 수밖에.”

양상빈은 그 포목장수의 궁시렁대는 소리는 신경도 쓰지 않고 그저 그 물건과 그 물건에 매긴 가격을 곰곰이 비교해보았다. 그 가격에 그 물건이면 상당히 구미가 당기는지라 포기하지 못하고 이렇게 말하였다.

“이 양반, 사람 참 무시하는구먼. 내가 몽땅 다 사지. 그래, 못 살 거 같아.”

“정말 다 살 거라면 내가 20냥을 깎아주지.”

양상빈은 40냥을 깎아달라고 우겼으나 포목장수는 그렇게는 못한다고 버텼다. 이를 지켜보면주변 사람들이 끼어들었다.

“여보슈, 당신은 물건을 다 팔아야 하고, 저 양상빈은 어떻게든 더 깎으려고 하니 각자 조금씩 양보해서 딱가운데 그러니까 170냥에 합의를 보는 게 어떻소?”

포목장수는 처음에는 절대 그럴 수 없다고 버텼으나 주변 사람들이 하도 권유하는 바람에 하는 수 없이 응낙하는 소리를 하였다.

“그래 열 냥은 여러 선생님들의 체면을 봐서라도 내가 양보하리다. 어서 은자를 가져오시구려. 나는 어서 밤을 밝혀서라도 길을 가야하니.”

“은자로만 물건 값을 치르기엔 부족한데, 금붙이 같은 것도 받으시는가?”

“금붙이가 바로 돈이지, 중량이나 속이지 마시우.”

양상빈은 포목장수를 집으로 불러들이더니 은자와 은종으로 1백 냥을 계산하고, 금 장신구를 다 털어 와서는 뭇사람들에게 공정히 재보라고 하더니 70냥이 되게 집어서 포목장수에게 주었다. 포목장수는 돈을 다 받고나서 포목을 넘겨주었다. 양상빈은 수지맞는 거래를 하였다는 생각이 기분이 너무 좋았다.

끝없는 탐욕을 부리니

뱀이 코끼리를 삼키는 셈,

화복을 구분 못하니

사마귀가 매미를 무는 셈.

그런데 저 포목장수는 바로 다름 아닌 어사 진렴이었던 것이다. 그는 병을 핑계 대고 집무실문을 걸어 잠그고는 시종무관인 섭천호聶千戶에게 은밀히 명령하기를 포목을 마련하여 작은 배한 척을 싣고서 먼저 석성현에서 대기하라고 하였다. 그런 다음 다른 사람 눈에 안 띄게 수종 하나를 데리고 이곳에 찾아와서는 섭천호를 만나 섭천호는 자기를 따르는 비서처럼 보이게 하고 수종에게는 배에서 짐을 지키는 심부름꾼처럼 보이게 하니 그들을 알아보는 자가 아무도 없었다. 이게 다 진렴의 묘수였던 것이라. 진렴은 배에서 내려 미리 준비한 체포 표찰에다가 양상빈의 이름을 적어 섭천호에게 주고 몰래 잡아들이라 하였다. 아울러 편지 한 통을 써서 고첨사에게 현청에서 뵙자고 청하였다.

진렴은 어사의 집무실로 돌아와 병이 다 나았으니 집무를 다시 시작한다고 선포하였다. 양상빈은 이미 진즉에 도착하여 있었고 고첨사도 바로 도착하였다. 진렴은 어서 후당에 술자리를 봐 놓으라하고 고첨사를 모셔 목을 축이게 하였다. 그 자리에서 고첨사 또 노학증의 일을 꺼내들었다. 어사는 만면에 미소를 머금으면서 입을 열었다.

“오늘 이렇게 첨사 나리를 모신 것도 실은 이 일 때문입니다. 제가 오늘 명명백백하게 밝혀드리겠나이다.”

말을 마친 다음 진렴은 수종을 불러 작은 서류 상자 같은 거 하나를 가져오게 하였다. 그 상자를 열더니 금은 팔찌와 비녀 두 쌍 그리고 다른 장신구들을 꺼내어 고첨사에게 보여주었다. 고첨사는 그게 다 자기 집 물건임을 즉시 알아보고서 대경실색하였다.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났소?”

“아수 아씨가 목숨을 끊은 연유는 바로 이 물건들이 밝혀줄 것입니다. 나리 조금만 앉아계십시오. 제가 잠시 나가서 그 사연을 나리께 낱낱이 밝혀내드리고 의심을 풀어내드리겠나이다.”

진렴은 집무실을 열고 노학증을 불러 심문을 시작하고자 하였다. 노학증에게 일단 한쪽에 있으라 하고는 다시 양상빈을 불러오게 하고는 양상빈을 바라보며 큰소리로 꾸짖었다.

“양상빈, 그래 고첨사 나리 댁에 참으로 훌륭한 일을 하셨더군!”

양상빈은 이 청천벽력과도 같은 소리를 듣고 어떻게든 변명을 하려 들었다. 바로 이 때 진렴은 수종을 시켜 금은 팔찌와 비녀 그리고 다른 장신구들을 보여주게 하고는 물었다.

“그래 이것들은 도대체 어디서 났단 말이냐?”

양상빈이 고개를 들어 바라보니 자기를 심문하는 자가 바로 자기에게 포목을 판 사람이 아닌가. 양상빈은 할 말을 잃어버리고 말았다.

“소인, 죽을 죄를 지었나이다.”

“나도 곤장을 칠 생각까지는 없으니 사실을 솔직히 털어놓도록 하라.”

양상빈도 거짓말해봐야 소용없는 상황임을 깨닫고 자신의 소행을 자백하기 시작하였다. 양상빈이 자백한 내용이 어떠하던가? 남쪽 따듯한 가지에 매어라는 의미의 「쇄남지鎖南枝」라는 노래(詞) 가락에 가사로 붙여 본다.

공소장을 쓰노니, 양상빈 건이로구나. 양상빈의 외사촌 노학증의 장모가 노학증의 집안이 궁핍한지라, 혼례 준비를 도와주려 하였더니. 저, 양상빈 노학증에게 옷을 빌려주며 그 사정을 알게 되었네, 엉큼한 마음이 일어나 노학증의 발길을 붙잡더니. 어둠을 틈타 노학증 행세를 하니 장모 댁의 늙은 집사가 가짜 노학증을 내실로 안내하였구나.가짜 노학증이 장모를 만나니 장모는 그에게 금은보화를 건네고. 머물러 묵게 하니 부정한 일이 생기고 말았구나.3일 후 진짜 노학증이 찾아오니, 아! 아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고.

진렴은 공소장을 다 작성한 다음 고첨사 댁의 늙은 집사를 불렀다.

“꼼꼼하게 살펴보아라. 그날 밤에 네가 안내한 자가 저 사람이 맞느냐?”

늙은 집사는 두 눈을 크게 뜨더니 양상빈을 바라보았다.

출처 每日头条

“예, 나리 저 자가 틀림없습니다.”

진렴은 아전들을 불러 양상빈에게 곤장 80대를 엄히 치라 이르고 노학증이 차고 있는 차꼬를 풀어내어 그걸 양상빈에게 씌우게 하였다. 강간죄를 범했으니 목을 베어야 할 것이라 판결하고 그 집행은 본 현령에게 일임하였다. 포목 4백 필은 다시 팔아서 그 돈은 국고에 환수하도록 하고, 은자와 장신구들은 늙은 집사에 주어 맹부인에게 갖다드리도록 하였다. 금팔찌와 금비녀는 노학증에게 주고 노학증을 방면하여 집에 돌아가게 하였다. 노학증은 진렴에게 머리를 조아리며 목숨을 구해주신 은혜에 감사하였다.

사악한 짓은 만천하에 드러나고,
은혜와 기쁨이 구석진 곳까지 비추네.
산 자나 죽은 자나 모두 아쉬움이 없으리니,
신통한 어사 덕분이라네.

한편, 고첨사는 후당에서 진렴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을 지켜보며 그 신통함에 입이 다물어지지 않을 정도였다. 진렴이 후당으로 돌아오니 그에게 감사의 뜻을 전하였다.

“그대의 이처럼 신묘한 해결 노력이 없었더라면 내 딸내미의 원혼이 편히 눈을 감을 수가 없었을 것이오. 그런데 은자와 장신구들을 도대체 어떻게 손에 넣으셨소?”

진렴은 고첨사의 귀에다 대고 이러이러하였노라 설명해주었다.

“기가 막히는구먼, 다만 한 가지, 양상빈의 처도 자기 남편의 소행을 알고 있었을 가능성 높고 못사는 형편이 은자나 장신구를 빼돌렸을 수 있으니 번거로우시더라도 한번 조사하여 주시오.”

“무에 어려울 게 있겠습니까?”

진렴은 바로 문서를 닦아 석성현의 양상빈 처를 찾아가 엄히 심문하여보고 혹 남은 장물이있는지 찾아보라 하였다. 고첨사는 진렴에게 인사를 하고 돌아갔다. 한편 석성현의 현령은 진렴의 문서를 보고서는 양상빈을 데려오게 하여 물었다.

“니 마누라의 이름이 어떻게 되느냐? 네가 저지른 일을 네 마누라가 알고 있느냐?”

양상빈은 마누라를 증오하는 마음이 치밀어 올라 이렇게 대답하였다.

“소인의 마누라는 전씨 성을 가진 년이온데 사실 그년이 재물에 눈이 어두워 소인이랑 처음부터 공모한 것입니다.”

현령은 곧장 사람을 파견하여 전씨를 잡아들이라고 하였다. 이야기는 여기서 또 두 갈래로 갈린다. 양상빈의 아내 전씨는 친정 부모가 다 돌아가신 상황이라 친정오빠와 올케와 함께 바느질로 호구하고 있었다. 이날은 마침 오빠 전중문田重文이 일이 있어 현청 앞을 지나다가 자기 동생을 잡으러 간다는 소식을 듣고서 황망히 집으로 돌아와 동생에게 이 소식을 알렸다. 양상빈의 아내 전씨는 오빠에게 이렇게 말했다.

“제가 다 알아서 처리할 테니, 오빠는 걱정하실 필요가 없습니다.”

전씨는 지체 없이 양상빈이 자신에게 건네준 이혼서를 챙겨들고 가마를 불러서 고첨사댁으로가 맹부인을 뵈었다. 맹부인은 눈이 갑자기 어질어질하니 지금 딸내미 아수가 들어오는 것 같았다. 하나 전씨가 좀 더 다가오니 아수가 아닌 다른 젊은 아낙이라. 깜짝 놀라며 물었다.

“누구시더라?”

전씨는 엎드려 머리를 조아리며 아뢰었다.

“소첩은 양상빈의 아내 전가이옵니다. 제 남편이 한 짓이 너무도 악랄한지라 혹시 그 화가 저에게까지 미칠까 하여 남편과는 진즉에 헤어졌사온데, 첨사 나리께서는 아직 그 사정을 잘 모르고 계신 듯합니다. 청컨대 마님께서 소첩의 목숨을 살려주십시오.”

말을 마친 전씨는 곧바로 이혼서를 꺼내어 맹부인에게 올렸다. 맹부인이 그저 멍하니 바라만 보고 있으려니 전씨가 갑자기 맹부인의 소매를 부여잡고 대성통곡을 하였다.

“어머니, 아버님 저에게 이렇게 큰 고통을 안겨주시다니요!”

맹부인이 들으니 그건 분명 저세상으로 떠난 딸 아수의 목소리였다. 맹부인은 울면서 물었다.

“얘야,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게냐?”

전씨는 두 눈을 꼭 감고서 애절하게 울음을 울 뿐이었다.

“소녀, 한때 사람을 잘못 알아보고 몸을 망쳤으니 노공자를 뵈올 면목이 없어 스스로 목을 매어 저의 정절을 지키려하였나이다. 하나, 아버님께서 일을 성급하게 몰아붙이는 바람에 애꿎은 공자가 누명을 쓰고 죽을 뻔했습니다. 다행히도 이제 사건의 전모는 밝혀졌으나 노공자는 정혼한 처자를 잃어버리고 말았습니다. 저와 어머님이 그에게서 처자를 빼앗은 것이나 다름없다 할 것입니다. 어머님이 저를 사랑하신다면 아버님에게 노공자가 누명을 썼던 일을 잘 마무리하셔서 우리 집안과 그분 집안의 정혼으로 맺어졌던 인연이 이렇게 그냥 끝나버리지 않도록 하여 주십시오. 만약 일이 이렇게 잘 처리된다면 소녀 구천에서도 여한이 없겠나이다.”

말을 마치고 그녀는 바닥에 쓰러져 버렸다. 맹부인 역시 울다가 혼절하여 버렸다. 집안의 찬모, 침모, 보모들이 모두 몰려와 맹부인을 흔들어 깨웠다. 전씨는 아직도 멍하니 바닥에 앉아있었다. 이리 묻고 저리 물어도 아무런 말도 못 알아들었다. 맹부인은 전씨를 보고서는 죽은 딸 아수가 생각나서 다시 눈물이 흘러내렸다. 하녀들은 맹부인을 달래느라 애가 닳았다. 맹부인은 슬픔에 가위눌린 듯한 표정으로 전씨를 보고서 물었다.

“부모는 계신가?”

“두 분 다 돌아가셨나이다.”

“딸내미를 먼저 저세상으로 떠나 보낸 몸, 자네를 보니 내 딸을 보는 듯하네. 그래 자네가 내 수양딸이 되어줄 텐가?”

“마님을 모실 수 있다면 소인에게는 더 없는 영광이겠습니다.”

부인은 전씨를 기쁨으로 거두었다. 고첨사는 집에 돌아와 전씨가 이미 진즉에 양상빈과 이혼하여 양상빈이 저지른 일과는 무관하다는 이야기를 듣게 되었다. 이에 서찰 한 통을 꾸려 전씨의 이혼장과 함께 현령에게 보내어 굳이 이 일로 전씨를 조사할 필요가 없으니 어사에게 그렇게 보고하여달라고 하였다. 한편 전씨는 수중에 돈은 없으나 지혜롭고 사람이 겸손하여 보이기에 부인의 소청대로 수양딸로 거두기로 하였다. 맹부인은 고첨사에게 죽은 아수가 전씨의 몸을 빌어 현신하여 한 말을 그대로 전해주었다.

“아수가 노씨 댁과의 인연을 그냥 끊어버리지 말아 달라고 애원하였나이다. 우리의 수양녀가 인물이 출중하니 노공자를 그녀와 맺어주면 어떠하겠습니까? 그러면 아수와의 못 이룬 인연을 이어주는 것 아니겠습니까?”

고첨사는 노학증이 그 동안 애꿎게 고초를 당한 것이 못내 맘에 걸렸는데 부인이 이렇게 제안해주니 어찌 가타부타하겠는가? 다만 노학증이 이런 제안을 색안경을 끼고 받아들일까 걱정되어 직접 노학증 집에 찾아가 저간의 상황에 대하여 사과도 하고 넌지시 결혼이야기를 꺼냈다. 노학증은 연신 사양하다가 마지못해 응낙하였다. 노학증은 아수에게서 받은 금비녀와 금팔찌를 예물 삼아 택일하고 혼례를 치렀다.

사실 고첨사는 노학증에게 전씨를 양녀로 들인 먼 조카뻘 처자라고만 소개하고, 맹부인은 또 전씨에게 수재 하나를 데릴사위로 들인다고만 말하고 서로에게 상대방의 이름과 내력을 말해주지 않았다. 혼례를 치르고 나서야 전씨는 자신의 남편이 노학증임을 알게 되었고, 노학증은 또자신의 아내가 양상빈의 전처 전씨임을 알게 되었다. 혼례를 치른 전씨와 노학증은 금슬이 좋았을 뿐 아니라 고첨사 부부를 지극 정성으로 모셨다. 고첨사에게 자식이 없었으니 노학증이 고첨사의 재산을 물려받고서 오직 독서에만 매진하였다. 고첨사는 노학증이 세 부문의 시험에 모두 준비가 탄탄함을 보고서 노학증을 국자감에 보내주었다. 노학증은 연거푸 과거에 급제하였다. 노학증이 두 아들을 낳으니 하나는 노씨 성을 따르고 다른 하나는 고씨 성을 따르게 하여 두 집안의 제사를 모시게 하였다. 하나 양상빈의 가문은 폐절되고 말았구나.

하룻밤의 쾌락으로 몸을 망치고,
백년가약을 맺은 부인을 다른 사람에게 보내는구나.
허튼 수작 부리는 세상
사람들이여, 저 양상빈을 좀 보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