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우 시절로 접어들어入梅/송宋 주남周南
地濕衣生醭 대지가 축축해 옷에 곰팡이 나고
天涼葛未裁 하늘이 서늘해 갈옷 입지 못하네
暴暄偏壞藥 뜨거운 더위에 작약은 유독 지고
微灑似成梅 안개비 뿌려 매실 익어 가는 듯
苦筍相將盡 쓴 죽순 앞으로 끝나가려 하는데
良朋久不來 좋은 친구는 오래도록 오지 않네
若無書作伴 만약 동반자가 되는 책이 없다면
那得好懷開 어떻게 좋은 회포 펴볼 수 있나
매우 시절의 정경을 그린 시이다. 구체적인 상황을 묘사하여 풍토성이 완연하고 독서를 통해 회포를 펴본다는 것이 시인의 취향을 잘 드러내고 있다.
이 시는 마지막 2구를 제외하고는 모두 정교한 대구로 이루어져 있다. 통상 대구는 형식적 제약으로 인해 표현의 제약을 가져온다고 인식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이 시의 3, 4구를 살펴보면 일반적 문장에서는 말이 안 되지만 대구의 문법을 이용해 오히려 표현이 가능해진 것을 만나게 된다. 또 대구는 병렬로 이루어져 ‘~요’라는 토가 달리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5, 6구는 ‘~한데’ 정도의 토가 달린다. 이는 병렬이 아니라 상황의 제시나 역접에 해당한다.
3구의 ‘포헌편괴약(暴暄偏壞藥)’은 ‘맹렬한 더위에 유독 약이 무너진다.’는 말이다. 이게 무슨 말일까? 맹렬한 더위는 이해가 가도 그 더위에 왜 약이 무너지며, 그 약은 무엇인가? 만약 이런 문장을 산문에 구사하면 의사소통이 안 된다. 그런데 다음 구에 ‘미쇄사성매(微灑似成梅)’, 즉 ‘부슬부슬 뿌리는 비가 매실을 완성하는 것 같다.’는 구절이 대를 이루고 있어, 앞에 사용된 약(藥)이 매화와 대응되는 식물이어야 하고, 성(成)이 긍정적 방향의 전개이므로 앞의 괴(壞)가 그 반대의 뜻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성매(成梅)는 매실과 비의 관계에 의해 숙매(熟梅)의 의미를 평측의 제약으로 그렇게 표현한 것을 알 수 있으며, 이에 따라 위의 ‘괴약(壞藥)’은 작약 꽃이 졌다는 표현임을 알 수 있다.
가령, 사령운(謝靈運)의 <중서성에 직숙하며[直中書省]> 시에 “붉은 작약은 뜰에서 한들거리고, 푸른 이끼는 섬돌에 올라오네.[紅藥當階翻, 蒼苔依砌上]”라는 구절이 있고, 우리나라 강진(姜溍, 1807~1858)의 시에 “붉은 작약은 바람에 하늘거리며 곱고 푸른 매실은 비를 맞아 살찌네[紅藥飜風艶, 靑梅帶雨肥.]”라는 구절로 이런 추정을 증명할 수 있다.
김영랑의 시에 “오월 어느 날, 그 하루 무덥던 날, /떨어져 누운 꽃잎마저 시들어 버리고는/ 천지에 모란은 자취도 없어지고,”라고 하는 구절이 있다. 여기서 오월은 바로 음력을 말하고 모란이 지는 상황을 사실 그대로 묘사한 것을 알 수 있다. 이 시에서 말한 ‘포헌편괴약(暴暄偏壞藥)’이 바로 이것이며 ‘편(偏)’과 ‘괴(壞)’에는 작약이 져서 ‘하냥 서운해 우옵는’ 심리적 의미까지 담겨 있음을 포착하게 된다.
이처럼 대구는 표현의 제약뿐만 아니라 표현의 가능을 가져오기도 하는데 유능한 시인일수록 이 대구가 걸림돌이 아니라 디딤돌의 역할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이것이 바로 대구의 묘미이고 한시의 중요한 문법적 특징이다.
5, 6구의 대구는 일종의 유수대(流水對)로 147회에서 소개한 적이 있다. 병렬로 구성된 것이 아니라 뒤의 구가 앞의 말을 받아 이어진 것이다. 이런 점에 대해서는 왕력(王力, 1900~1986)이 《한어시율학(漢語詩律學)》에서 깊이 연구를 하였고, 우리나라 강민호는 《두보 배율 연구》에서 두보시를 예로 들어 논증하고 있다.
형식적인 측면을 자꾸 말하면 따분할 수 있다. 다만 중요한 것은 시의 의미를 정확히 알기 위해서는 그 형식적 특징도 깊이 공부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런 형식적 특징은 드러내어 많은 말을 할 것은 아니지만, 마치 오리가 태평하게 물 위를 떠다니는 것은 그 아래 쉼 없이 움직이는 물갈퀴가 있는 것과 같다.
주남(周南, 1159~1213)은 송나라 오군(吳郡) 사람으로, 비서성 정자(祕書省正字), 지주 교수(池州敎授), 시관(試官) 등을 지냈다. 문집 《산방집(山房集)》이 사고전서에 수록되어 있는데 이 시도 그 책에 있다.
365일 한시 17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