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촉(巴蜀)의 소녀
巴女騎牛唱竹枝 파촉 소녀 소 타고 죽지가 부르니
藕絲菱葉傍江時 강변에 연꽃 피고 마름 잎 자랄 때
不愁日暮還家錯 날 저물어 집 못 찾을까 걱정 않네
記得芭蕉出槿籬 무궁화 울타리에 파초가 우뚝하니까
소를 뜯기고 날이 저물어 죽지가를 부르며 집으로 돌아오는 파촉 소녀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시의 제목으로 볼 때 당시 민간에서 불리던 노래를 이 시인이 세련되게 만든 것으로 보인다. 날이 저물면 집을 못 찾을까 어른들은 걱정하기 마련인데 이 소녀는 아무 걱정이 없다고 한다. 자기 집에 무궁화 울타리가 있고 거기에 파초가 자라는데 아주 우뚝하여 멀리서도 바로 알아볼 수 있다는 것이다.
대개 소를 타고 가는 목동을 그리면 소년을 주제로 하는데 소녀를 등장시킨 것이 특이하다. 대개 시골에서는 소가 길이 잘 들어 고삐를 잡고 뒤에서 따라가면 소가 알아서 자기 집으로 찾아간다. 이 시는 내용으로 볼 때 파초를 보고 집을 찾아가는 주체가 소녀로 보이지만 소로 설정한다면 더욱 묘미가 있을 듯하다.
시에 이야기가 있고 여름의 정취가 있다. 시에 등장하는 연 줄기와 마름 잎, 파초와 무궁화 울타리 등은 모두 여름 풍경이며 소를 타고 저물녘에 집으로 돌아오는 소녀는 매우 목가적 분위기를 만든다.
파(巴)를 파촉(巴蜀)이라 번역하긴 하였지만 하, 은, 주 고대에 지금의 중경(重慶) 지역에 있던 나라가 파(巴)이고 성도(成都)에 있던 나라가 촉(蜀)이다. 그러므로 정확히 말하면 파 지역, 즉 장강 중류 산악 지역의 소녀를 파녀(巴女)라 한 것이다. 이 지역이 바로 죽지사(竹枝詞)라는 민요가 발생한 지역이다.
무궁화 울타리[槿籬]는 무궁화를 집 담장처럼 심은 것을 말한다. 이런 풍경을 근래 잘 보지 못했는데, 당나라 때 왕유(王維)나 양나라 심약(沈約) 같은 시인들의 시에 나올 뿐 아니라 우리나라 목은 이색이나 다산 정약용 같은 분들의 시에도 나오는데 대개 운치 있는 한 풍경으로 그려 놓은 경우가 많다. 무궁화 가지가 조밀해 붙여 심으면 자연스럽게 울타리 역할을 한 것으로 보인다.
우곡(于鵠)은 당나라 대종과 덕종 연간의 시인으로 장안에 살다가 한양(漢陽)에 은거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절도사의 막료 등의 벼슬도 하였다.
365일 한시 17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