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백박白樸 천정사. 여름天淨沙. 夏

천정사. 여름天淨沙. 夏/원元 백박白

雲收雨過波添 구름 걷히고 비 그치고 물 불어나고
樓高水冷瓜甜 누각 높고 물 차갑고 참외 달콤한데
綠樹陰垂畫簷 푸른 나무 드리운 그늘 아름다운 집 
紗廚藤簟 비단 휘장 등나무 자리 
玉人羅扇輕縑 미인은 비단 부채 들고 얇은 옷 차림

비가 지나가고 맑게 갠 날씨에 참외 향기도 달콤한데 녹음이 드리운 아름다운 집, 비단 휘장에 등나무 자리를 깔고 얇고 가벼운 비단 옷을 입고 누워 부채를 가볍게 부치고 있는 미인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희곡의 어떤 대목에서 이 노래를 부르는지는 알 수 없으나 여름철 미인의 아름다움을 고혹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참외의 달콤한 향기와 여러 비단을 등장시킨 것도 여름의 오수에 잠긴 미인을 위한 소품으로 보인다.

<천정사(天淨沙)>는 곡패(曲牌) 이름이다. 곡(曲)이란 바로 원나라 때 유행한 희극에서 부르는 노래, 산곡(散曲)을 말하고 패란 그 명패(名牌), 즉 명칭을 말한다. 그럼 천정사(天淨沙)는 무슨 뜻인가? 이것 자체를 설명한 문헌은 알지 못한다. 다만 이 곡패를 <새상추(塞上秋)>라고 하며 그 기원은 금나라 때 무명씨가 지은 사(詞)에 “변새의 맑은 가을 이른 추위[塞上清秋早寒]”라고 한 구절로 알려져 있다. 원래 제목이 없는 노래를 그 가사 일부를 인용해 제목을 삼은 것을 알 수 있다. 이 구절 앞에 “평평한 모래 가는 풀 선명하고, 감도는 시내 흐르는 물 잔잔하네[平沙細草班班, 曲溪流水潺潺.]”라고 되어 있는 문맥을 볼 때 ‘천정사(天淨沙)’는 ‘맑은 가을 하늘 아래의 모래사막’인 것을 알 수 있다. 이 노래가 본래 북방 사막에서 유전되었다고 하는 것과도 일치한다. ‘천정사’는 처음의 이런 유래는 나중에는 의미가 없고 곡조의 이름만이 실질적 의미로 남은 것이다.

<천정사>는 5구 28자로 되어 있는데, 1,2,3,5구는 각 6자이고 4구만 4자이다. 1,2,5구는 운자와 평측이 완전히 동일하다. 또 전구에 압운을 하되 3구는 평성자 압운을 4구는 측성자 압운을 하고, 3구의 5번째, 4구의 4번째 글자는 거성(去聲) 자를 놓아야 한다. 이를 격률에는 ‘厶’로 표기한다. 그러므로 3, 4구에서 의미와 음률에 변화가 일어났다가 5구에서 정리되는 것을 알 수 있다. 절구가 3구에서 파란이 일었다가 결구에서 정리되는 것과 같은 구조이다. 연구자들에 의하면 <천정사>를 곡패로 한 노래가 총 107수이며 이는 원곡 158개 곡패 중 13위에 해당하고 원곡에서는 상용하는 곡패하고 한다.

이 시는 한국어 발음으로 읽어도 매구가 떨어지는 자리에는 동일한 모음, 즉 종성이 같아 각운이 형성되어 있고, 언어의 조합이 2글자이며 그 구조가 1,2구는 모두 주술이고, 3~5구는 ‘陰垂’만 주술이고 나머지는 모두 수식 구조로 되어 있다. 따라서 해석 순서가 오르락내리락 하는 일반 한시에 비해 문자에 대해 밝지 못한 일반 대중들도 쉽게 무슨 말인지 알아듣고 즐겼을 것으로 보인다. 마치 춘향전에 많은 한문 고사를 쓰고 문자를 쓰지만 어떤 전제된 상황에서 나열하는 방식을 사용하고 있어 의미의 추정이 가능한 것과 비슷하다.

실제 연극의 상황에서 이 노래를 창으로 들으면 더 묘미가 있을 것으로 보이는데 관람할 기회가 팔자에 있을지 모르겠다. 하여튼 시대의 유행에 따라 시가 참으로 다채롭게 변화하는 것을 알 수 있다.

백박(白樸, 1226~약1306)은 개봉부 사람으로 원나라 시대의 저명한 희곡 작가이다. 본명은 백항(白恒)인데 개명하였으며 평생 벼슬을 하지 않았다. 만년에는 금릉, 지금의 남경에 살았다. 관한경(關漢卿), 마치원(馬致遠), 정광조(鄭光祖)와 함께 원곡4대가라 불린다.

사진 출처 四郎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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