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육유陸游 5월 1일에 짓다五月一日作

5월 1일에 짓다五月一日作/송宋 육유陸游

處處稻分秧 곳곳마다 벼는 모내기를 하고
家家麥上場 집집마다 보리는 타작을 하네
敢悲身老大 이 몸이 늙었다고 슬퍼하리오
獨幸歲豐穰 풍년들어 다행하기만 한 것을
酪美朱櫻熟 우유는 맛있고 앵두는 빨가며
菰青角黍香 줄풀 푸르고 쫑즈는 향기롭네
翛然一竹几 속세를 떠나듯 죽부인을 안고
飽受北窗涼 북창의 시원한 바람 만끽하네

오늘 광화문에서 덕수궁까지 걸어가 보니 눈부신 햇살이 단오가 머지않았음을 실감하게 해 준다. 이 시는 초여름의 싱그러움이 절정을 향해 치닫는 5월 초하루의 시골 풍경을 노래하고 있다. 가끔 풍속화에 보면 노인이 지팡이를 짚고 들판을 바라보거나 산수화에 보면 노인이 시원한 집에서 낮잠을 자는 모습을 만나게 되는데 이 시는 그런 평화스러움과 풍요로움을 담고 있다.

예전에 농사철에는 채마 밭으로 쓰고 수확기에는 타작마당으로 쓴 것을 흔히 ‘장포(場圃)’라 한다. 맥상장(麥上場)은 ‘수확한 보리를 마당으로 실어 나른다.’는 말이니 결국 보리타작을 한다는 뜻이다.

몸이 늙어 모내기에도 참여하지 못하고 보리타작도 도와주지 못한다. 그래도 이런 풍년이 고맙기만 하다. 지금 시골에 가면 70, 80 먹은 사람이 일을 하니 2, 3 구의 의미를 알기 쉽게 설명해 주면 어떤 반응을 보이실지 궁금하다.

‘락(酪)’은 소, 말, 양 등에서 짜 낸 유(乳)를 말한다. 이를 통칭하는 말을 알지 못해 우유로 번역했다. 주앵숙(朱櫻熟), 붉은 앵두가 익었다는 말이니, 결국 앵두가 발갛게 익었다는 말이다. 각서(角黍)는 쫑즈(粽子)를 말한다. 찹쌀에 잣 등 고명을 넣고 고엽(菰葉), 즉 줄풀 잎사귀에 싸서 찐 음식을 말한다. 이 쫑즈의 재료가 아마도 처음엔 기장이고 삼각형 형태로 만들기에 이런 이름이 붙은 것으로 보인다. 전에 소삼협을 여행할 때 배가 잠시 정박하면 인근 마을 소녀들이 이 쫑즈를 바구니에 넣어 와서 팔았는데 그 때 더 많이 사 주지 못한 것이 아쉽다.

‘소연(翛然)’은 아무런 구속도 받지 않고 자유롭게 날아다니는 것을 말한다. 그러니 ‘빠르다’라거나 ‘세속을 떠난다’는 뜻이 나온다. 여기서는 뒷방 문을 열어 시원한 바람을 쐬니 신선이 된 것 같은 느낌을 이런 의태어로 표현한 것이다. 죽궤(竹几)는 죽부인을 말한다.

이 시는 마지막 2구만 산구이고 앞의 6구는 모두 대구를 쓰고 있다. 초여름의 정취를 이만큼 담아낸 시도 드물다. 계절도 요즘에 딱 맞아서 이런 풍경을 주변에서 보는 분들은 더욱 읽을 맛이 나지 않을까 한다. 여름은 북창의 서늘한 바람이 그리운 계절이다.

사진출처 太平洋撮影博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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