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이상은李商隱 晩晴저녁에 날이 개어

晩晴저녁에 날이 개어/당唐 이상은李商隱

深居俯夾城 옹성을 내려다보는 호젓한 곳
春去夏猶清 봄이 가고 여름 와도 화창하네 
天意憐幽草 하늘의 뜻 그윽한 풀 사랑하고 
人間重晚晴 세상에선 날 갠 저녁 좋아하네
並添高閣迥 게다가 높은 누각 전망 트이고
微注小窗明 작은 창문에 저녁 햇살 비치네
越鳥巢幹後 남녘 새 젖은 둥우리 마른 뒤라 
歸飛體更輕 돌아오며 젓는 날개 더욱 가볍네

이 시는 이상은(李商隱, 812~858)이 36세 때인 847년 계관 관찰사(桂管觀察使) 정아(鄭亞)의 막료로 부임하여 계림(桂林)에 온지 얼마 안 되어 지은 시이다.

이 시는 보일 듯 말 듯, 알 듯 모를 듯, 자신의 의사를 시로 표현한 점이 돋보인다. 이 시인이 거처하는 곳은 다소 외딴 곳 깊숙이 있다. 그 곳은 협성(夾城), 즉 옹성이 내려다보이는 언덕이다. 이 언덕은 봄이 가고 여름이 와도 아직 덥지 않고 청화(淸和)하다. 그 곳에서 자라는 풀을 유초(幽草)라 표현하였는데 하늘은 이 풀들을 사랑하여 비를 내려주었다. 저녁에 비가 그쳐 더욱 전망이 좋은 이곳의 높은 누각에서는 아주 멀리까지 보인다. 저녁 햇살이 작은 창문으로 들어온다. 심거(深居), 유초(幽草), 고각(高閣)은 모두 이 시인이 사는 곳을 나타낸 말들이다.

자신이 지금 살고 있는 계림(雞林)을 월(越)이라 표현하였다. 계림이 고대에 백월(百越)이라 부르는 지역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둥우리가 마른 것은 낮에 오던 비가 그쳤기 때문이다. 그래서 날개에 붙은 묵은 빗물도 털어버리고 돌아오는 새는 몸이 더욱 가볍다. 이 새에는 시인의 마음이 의탁되어 있다. 이는 당시 이덕유(李德裕), 우승유(牛僧孺)로 대표되는 두 당파의 싸움과 관련이 있는 것으로 보인다. 위에서 언급한 계관 관찰사 정아는 바로 이덕유의 당이다. 그런데 이상은이 종래 따르던 당은 우승유의 당이었다. 이상은의 입장에선 이제 묵은 빗물을 털고 가볍게 새처럼 날고 싶었을 것이다. 앞에서 심거(深居), 유초(幽草), 이런 말을 쓰고 저녁에 날이 맑아지고 높은 누각에서 멀리 내다보면서 저녁 햇살을 맞이하는 시상을 전개한 것은 다 이 때문이다.

이러한 시상은 이 시인의 평소 시 짓는 습관과 관련이 있어 보인다. 이상은은 시를 지을 때 책을 옆에 잔뜩 가져다 놓고 많은 고사를 사용하기를 즐겨하였다. 이 시는 고사를 노출하여 바로 사용하지는 않았지만 역시 많은 말들이 출처가 있다. 《이상은시가집해(李商隱詩家集解)》(중화서국, 2004.)에 밝혀 놓았다. 그리고 이 시는 거기에 더해 자신의 마음을 의탁하고 있는 점이 특징이다.

그런데 아슬아슬하게 당파 사이를 오가며 줄타기 하던 이상은의 인생은 대체로 순탄치 않았다. 이 시에 담은 희망과 달리 채 1년이 안 돼 정아가 다른 곳으로 다시 좌천되고 이상은은 실직하여 장안으로 돌아가기 때문이다. 치열한 당쟁 속에서 순수한 문인들이 설 자리는 별로 많지 않은 것이다.

이상은의 불우한 삶과는 별도로 이 시는 이상은이 얼마나 섬세하게 언어를 다루고 있는지, 자연 경물과 자신의 감정을 어떻게 결합하여 시를 쓰는지, 그 한 수준을 보여주고 있다는 점에서 눈여겨 볼만하다. 이용악, 백석 이런 시인들도 그 신산스런 삶과 달리 얼마나 아름다운 시를 보여주었던가?

사진출처 古建中国

365일 한시 1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