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가현옹家鉉翁 원추리에 대하여萱草篇

원추리에 대하여萱草篇/송宋 가현옹家鉉翁

詩人美萱草 시인이 원추리를 찬미하니
蓋謂憂可忘 근심을 잊을 수 있다 하네
人子惜此花 자식은 이 꽃을 중히 여겨
植之盈北堂 어머니 처소에 가득 심었네
庶以悅親意 부모님 기쁘게 하려는 뜻이지
豈特憐芬芳 단지 꽃이 좋아서만은 아니네
使君有慈母 당신에게 어머니가 계시니 
星髮壽且康 백발로 오래 살고 강녕하시네 
晨昏謹色養 마음에서 우러나 문안을 하고 
彩服戲其傍 색동옷 입고 재롱도 부리네
燕喜酌春酒 잔치 열어 봄 술 따라 올리니 
歡然釂金觴 기쁘게 금 술잔 받아 드시네
物理似有助 사물의 이치도 돕는 듯 해
叢萱忽非常 원추리 무더기가 홀연 돋보이네
競吐栗玉豔 단단한 고운 옥 다투어 토하고
欲奪金芝光 금빛 지초의 빛 그대로 옮긴 듯
秀本自稠疊 수려한 뿌리는 절로 다닥다닥
駢枝亦熒煌 붙은 줄기 역시 찬란히 빛나네 
乃知風人意 마침내 시인의 뜻을 알겠으니
比興宜成章 비유와 연상이 시에 어울리네
東野情思苦 동야 맹교는 괴롭게 마음 써서 
少憂多悲傷 적은 근심으로 슬퍼하곤 하였지 
謂此兒女花 그는 이 꽃은 여자들 꽃이라 
莫能解剛腸 남자 근심은 해소하지 못한다고 
斯言雖有激 이 말이 격정적이긴 하지만 
疑其未通方 도리에 통하지는 않는 듯하네
憂心無時已 그러면 근심이 그칠 날 없어
徒枉憔悴鄉 헛되이 괴로운 세계에 살리라
寓物儻適意 사물에 붙인 뜻 마음에 맞으면 
何須動悲涼 어찌 굳이 슬퍼할 필요 있으리
況復循吏政 더욱이 선량한 관리의 정사로
和聲入封疆 화평한 노래 변경에 퍼지는데 
撫俗時用乂 풍속 교화하여 시절 안정되고
事親日尤長 부모님 섬길 날 더욱 늘어나네
萱草歲歲盛 원추리 해마다 번성하리니
此樂安可量 이 즐거움 어찌 다 헤아리리

원추리는 봄에 나물로도 먹고 여름엔 아름다운 꽃이 피어 주변을 밝게 하는 꽃이다. 원추리는 망우초(忘憂草), 북당(北堂), 훤당(萱堂) 등의 말과 함께 시문과 회화의 소재로 널리 표현되어 왔다. 원추리를 그린 그림이나 시에 단편적으로 언급된 것은 많이 보았지만 이렇게 긴 장시로 원추리를 노래한 것은 처음 보는 듯하다. 이 시는 본래 달력에는 “성발수차강(星髮壽且康)”까지만 실려 있지만 전체 내용을 감상하는 게 좋을 듯하고 이 시의 번역은 최초인 듯하여 전체를 번역 소개한다.

《시경》 <위풍(衛風) 백혜(伯兮)> 에는 원추리를 어머니의 처소인 북당(北堂)에 심어 근심을 잊고 싶다는 내용이 있다. 원추리는 본래 달여서 먹으면 근심을 잊게 하는 약성이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어 이런 시가 나온 것인데, 이 때문에 원추리를 흔히 망우초(忘憂草)라고 한다. 또 북당은 어머니의 처소가 되어 효도의 의미도 담겨 있다. 이 시에 나오는 시인, 풍인(風人)은 모두 시경의 <백혜> 시를 지은 사람을 가리킨다.

원추리 꽃을 ‘금빛 지초’라고 한 것으로 미루어 이 시인이 본 원추리 꽃은 노란 빛이었던 모양이다. 또 원추리 싹이 나오는 것을 ‘병지(駢枝)’라고 묘사하였다. 이는 변무(騈拇)와 지지(枝指)를 말하는 것으로, 각각 엄지와 검지 발가락이 붙은 것과 엄지손가락 옆에 작은 손가락 하나가 더 붙은 일종의 기형을 말한다. 원추리 잎이 포개어지듯이 나오는 것을 그렇게 재미있게 묘사한 것이다.

연재 56회에 맹교(孟郊)의 유자음(遊子吟)을 소개하였다. 맹교는 <백우(百憂)>라는 고시에서 “원추리는 여자들의 꽃이라 장사의 금심을 풀 수 없네. [萱草女兒花, 不解壯士憂.]”라고 노래한 적이 있다. 물론 이 시의 의도는 그 뒤의 내용을 보면 칼과 같은 장사들의 마음은 나라를 위해 간신을 제거하고 외적을 막느라 한 시도 마음을 놓을 수 없다는 내용이다.

가현옹(家鉉翁)은 근심을 풀어준다는 원추리의 본래 의미로 돌아와 다시 맹교의 말을 비판하면서 원추리에게 붙인 《시경》의 의미를 계승하여 시의를 전개하고 있다. 어머니의 장수와 강녕을 원추리에 담아 훈훈한 어조로 노래한 것이 이 시의 특징이다. 맹교와 가현옹은 똑 같은 사물 원추리를 대하고 있지만 바라보는 시선이나 담고 싶은 내용이 서로 정반대가 된다.

가현옹(家鉉翁, 대략1213~1297)은 호가 측당(則堂)으로 소동파의 고향인 사천성 미주(眉州) 사람이다. 남송 말에 대신을 지내고 원나라 때는 은거하였다. 문집 《측당집(則堂集)》이 있다.

예전에는 사람들이 슬픔이나 고통을 잘 잊지 못해 이 원추리를 심고 먹었는지 몰라도 요즈음은 사람들이 중요한 문제를 너무 잘 잊어서 문제이다. 이 시를 읽으며 예전 사람들이 근심을 잘 잊지 못해 고통스러워 한 것이나 이 풀을 심고 보면서 부모님에게 효도한 것을 거울로 삼아 볼 만한다. 시 자체가 길어 해설은 이 정도로 줄인다.

원추리, 사진 출처 Duitan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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