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물어가는 봄날 이런 저런 생각들 6春晩雜興 六/송宋 육유陸游
青梅薦煮酒 매실은 자주로 만들어 올리고
綠樹變鳴禽 초록 숲엔 새 소리 변하였네
處世已如客 지나는 객처럼 세상 살아가니
傷春無復心 봄날 상심 더는 마음에 없네
焚香惟默坐 향 피우고 묵묵히 앉아있거나
曳杖亦幽尋 지팡이 짚고 조용한 곳 찾을 뿐
一日悠然過 하루를 그저 한가롭게 보내니
深慚惜寸陰 촌음 아낀 성인께 참 부끄럽네
전중련(錢仲聯)의 《검남시고교주(劍南詩稿校註)》에 의하면 이 시는 1195년 육유(陸游, 1125~1210)가 71세 때 산음(山陰)에서 지은 것이라 한다. 같은 제목으로 함께 지은 시가 모두 6 수인데 이 시는 그 6번째 시이다.
6수 모두 농사일, 차, 병 등을 소재로 한가롭게 전원에서 보내는 일상을 읊고 있는데 요즘 노인들에게 시 내용을 설명해 주면 어떤 반응이 나올까 궁금하다. 이런 시를 보면 노년의 정서가 문학 작품에 충분히 다루어지지 않는다는 생각이 문든 든다. 노인이 쓴 시라도 그 내용은 더 젊은 것이 많으며 노인의 생활 자체를 노래한 것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아무리 천재라 하더라도 살아 보지 않고서 어떻게 이런 정서를 이해하겠는가?
우리나라에서는 매실을 술에 담가 매실주를 만들어 먹는데, 중국에서는 매실을 넣어 자주(煮酒), 즉 중탕을 만들어 먹는 풍습이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소동파 시 <증영상매(贈嶺上梅)>에도 이 자주(煮酒)가 나온다. 진나라 도연명의 증조가 되는 도간(陶侃)이 우임금 같은 성인도 촌음을 아꼈는데 일반 사람들은 분음(分陰)을 아껴야 한다고 말한 적이 있다.
촌음에 대해서 보통 짧은 시간이라고만 얘기하니 실감이 잘 안 온다. 예전에 하루를 12간지(十二干支)에 배당하여 12시간으로 나누고 1시간은 8각으로 나누며 8각은 다시 10촌으로 나누었다. 그렇다면 촌음(寸陰), 즉 촌각(寸刻)은 1시간을 8각(刻)으로 나눈 것의 10분의 1에 해당하므로 오늘날 시간으로 계산하면 1분 30초이고 분각은 다시 그 10분의 1이므로 9초에 해당한다. 이런 시간이 실감 나는 것은 치열한 정치 토론이나 학술회의에서 논쟁이 붙었을 때인데 1분 30초의 촌각은 매우 의미 있는 시간이고 9초의 분각 역시 아쉬울 때가 있다.
매실로 술을 달여 먹으려면 초여름이 되어야 하지만 이 시인이 ‘춘만(春晩)’이라고 제목에 쓴 것은 봄이 지나가는 것에 대한 감회를 다루고 있기 때문이다. 이 세상을 잠깐 왔다가 다시 떠나는 나그네처럼 처신하고 있기 때문에 봄이 와도 젊은 사람과 달리 별다른 감정이 일어나지는 않는다. 그저 평소처럼 향을 피우고 정좌해 있다가 마음이 동하면 지팡이를 짚고 조용한 곳에 산책을 나갔다 올 뿐이다. 다만 하루를 특별한 일 없이 그저 보낸다고 생각하니 시간을 아낀 옛 성현들께 매우 부끄러운 생각이 난다는 것이다.
요즘 일부 노인들의 행태를 보면 무슨 해로운 일을 하지 않는 것만도 애국이고 조용히 지내는 것도 세상을 돕는 것이라는 생각도 든다. 부처님 오신 날을 맞아 슬픔도 기쁨도 없이 세상을 관조하며 일상의 충일을 노래하는 노 시인의 시를 감상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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