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 어느 날에初夏卽事/송宋 왕안석王安石
石梁茅屋有彎碕 굽이진 물가 언덕에 돌다리 옆 띳집
流水濺濺度兩陂 좔좔 흐르는 물 두 못으로 들어가네
晴日暖風生麥氣 맑은 날 온화한 바람에 보리 내음새
綠陰幽草勝花時 녹음과 그윽한 풀 꽃 시절보다 낫네
우묵한 강변에 오막살이 한 채가 있다. 오막살이 옆에는 산간에서 흘러나오는 계곡이 있고 그 계곡 위에는 돌다리가 놓여 있다. 그 계곡물은 바위에 부딪치며 쏟아져 나와 호수처럼 너른 강으로 흘러든다. 그 물은 오막살이 동과 서로 부채 살처럼 나뉜다.
이런 모습의 산수화를 많이 보았을 것이다. 이 시는 바로 초여름에 접어든 아름다운 강변 풍경을 그리고 있다. 이 시에서 가장 빛나는 시어는 역시 ‘맥기(麥氣)’ 이다. 김동환이 말한 ‘밀 익는 오월이면 보리 내음새’라고 한 바로 그 ‘보리 익어가는 냄새’이다. 보리가 통통하게 알이 배어서 바람에 일렁이는 것도 참 싱그럽지만 익어갈 때의 구수한 냄새는 초여름의 독특한 정취를 더한다. 보리가 바람에 물결치는 것은 맥랑(麥浪), 보리가 익어가는 것은 맥기(麥氣), 맥향(麥香)이라 하고, 보리를 수확하는 계절 4월을 맥추(麥秋), 보리로 빚은 술을 맥주(麥酒)라 부른다.
봄에는 봄이 가장 아름다울 것 같지만 이 시인처럼 초여름의 정취에 빠져들면 절로 녹음과 그윽한 풀들이 봄에 꽃이 필 때보다 낮다는 찬탄을 하게 되는 모양이다. 사람이 다른 사람에 대해서는 물론이고 자연의 진면목을 아는 것 역시 많은 관심이 필요한 것을 알게 해주는 시이다.
이 시는 《매월당시집》에도 들어있다. 이 작품은 김시습이 지은 작품이 아니므로 김시습의 문집에 편입된 것은 분명 잘못된 것이다. 다만 이로써 김시습이 이 시를 좋아해 베껴 둔 것을 추측할 수 있다. 권호문도 이 시를 인용해 <한거록(閑居錄)>을 쓰고 있어 은자에게 사랑받은 것을 알 수 있다. 또 세종의 손자 부림군(富林君) 이식(李湜)은 끝 구절에서 유(幽) 자를 방(芳)자로 고쳤다고 이수광이 《지봉유설》에서 그 내력을 말해 놓았다. 그러나 사실은 벌써 100년 전에 목은 이색이 먼저 그렇게 쓴 건데 지봉이 몰랐을 뿐이다.
이 구절 ‘녹음방초승화시(綠陰芳草勝花時)’는 다시 《춘향전》에서 이도령이 광한루 구경가는 장면에도 나오니 이 시의 마지막 구절이 특히 많은 사람의 공감을 얻은 것을 짐작해 볼 수 있다.
365일 한시 1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