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여름에 재미 삼아初夏戲題/당唐 서인徐寅
長養薰風拂曉吹 만물 기르는 남풍이 새벽에 불어오니
漸開荷芰落薔薇 연꽃 마름꽃 피어나고 장미 떨어지네
青蟲也學莊周夢 파란 애벌레 장자의 호접몽을 배웠나
化作南園蛺蝶飛 남쪽 밭의 나비로 변하여 날아다니네
어느덧 늦봄과 초여름이 교차하는 시기를 맞았다. 훈풍(薰風)은 바로 이때에 동남에서 부는 바람을 말한다. 김동환 시인이 ‘산 너머 남촌에는 누가 살길래 해마다 봄바람이 남으로 오네’라고 시작하여 ‘남에서 남풍불제 나는 좋데나.’라고 반복할 때의 남풍이 바로 이것이다. 그 시에 진달래, 밀, 보리 등이, 이 바람으로 피고 익어 향기도 나고 내음새도 난다고 했는데, 이처럼 만물을 생장시키고 양육하는 것이 바로 ‘장양(長養)’이다.
초여름에 다른 봄꽃들은 이미 다 지고 마지막을 화려하게 장식한 장미꽃이 질 무렵 연꽃, 마름꽃은 제 철을 만난다. 이 때 나비들이 본격적으로 부화하여 날아다닌다고 이 시인은 말하고 있다.
장자가 살던 곳은 지난 122회에 살짝 언급한 지금 하남성 이천(伊川)인데 그 곳에 장자동이 있다. 장자묘도 있고 장자가 살던 동굴도 있다. 그 동굴이 3개로 되어 있는데 나비의 형상이며 그 뒷산이 바로 호접산(蝴蝶山)이다. 이런 배경에서 장자가 어느 날 나비 꿈을 꾸고 깨어나 멍한 상태에서, 내가 금방 나비가 된 꿈을 꾼 것인지 나비가 지금 장자 꿈을 꾸고 있는 것인지 모르겠다고 말하였는데 이를 흔히 장주몽(莊周夢), 호접몽(蝴蝶夢)이라 한다. 《장자》 <제물론(齊物論)> 마지막에 나오는 우화이다.
그럼 이 시에서 호접몽을 인용한 이유는 무엇일까?호접몽(蝴蝶夢) 우화의 마지막에 장자 스스로 ‘이것을 물화(物化)’라 한다고 하였기 때문이다. 이 시인은 물화의 대표적인 사례로 애벌레가 나비로 변하는 것을 거론하여, 1,2 구에서 말한 계절의 변화와 연결한 것이다. 시인은 굳이 호접몽에서 말한 철학적 의미를 진지하게 말하려고 하는 것은 아니며 남쪽 채마밭에 지금 날아다니고 있는 나비에 이런 제격의 우화를 연결하여 나비의 비행에 생기와 재미를 붙인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렇게 재미있고 가볍게 접근하는 것이 오히려 또 장자가 말한 물화의 본질에 다가설 수도 있으니 시인의 의장(意匠)이 예사롭지 않은 것을 알게 된다.
이 시의 제목이 ‘희제(戲題)’로 되어 있는 것에 주의해야 한다. ‘희(戱)’는 진지하지 않고 장난삼아 하는 것을 말한다. 이 말은 말 그대로 장남삼아 하는 것일 수도 있지만 겸손이나 가볍게 접근하고 싶을 때나 혹은 무엇인가를 숨기고자 할 때도 이런 말을 쓴다. 그런데 이보다 더 눈여겨보아야 할 것은 바로 ‘제(題)’ 자이다. 그냥 장난삼아 쓴 것이면 ‘희작(戲作)’이라 했을 것이다. 제 자를 쓴 것은 어떤 대상을 염두에 두고 있기 때문이다. 즉 사람이나 사물, 그림, 특정 날짜 등, 여하간 대상이 있어야 한다.
《산당사고(山堂肆考)》에는 이 시의 제목이 애벌레에서 나비로 변한다는 의미의 <충화(蟲化)>로 되어 있다. 이 시의 제목을 이렇게 붙인 것은 이 시가 시령(時令 계절) 편에 속해 있으며 바로 충화의 시기에 해당되기 때문이다. 다시 말해 작가가 은연중 지시한 제목을 허물 밖으로 끄집어 낸 것이라 볼 수 있다.
서인(徐寅)은 지금의 복건성 보전(莆田) 사람으로 당 말에서 오대시기에 활동한 저명한 문학가이다. 특히 부(賦)를 잘 지었다. 오대 때에 복건성에 민(閩) 왕국이 있었는데 서인이 매우 박학하여 비서성(秘書省) 정자(正字)를 지내었기에 서장자(徐正字)로 불리며, 문집 《서정자시부(徐正字詩賦)》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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