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가하게 지내며 초여름 날 낮잠을 자고 일어나서閑居初夏午睡起/송宋 양만리楊萬里
梅子留酸軟齒牙 매실은 신맛 남아 치아가 시리고
芭蕉分綠與窓紗 파초는 녹색 빛을 창문에 비추네
日長睡起無情思 긴 날 낮잠에서 깨어 멍한 상태로
閑看兒童捉柳花 버들개지 잡는 애들 한가히 보네
낮잠만큼 한가함을 느끼게 하는 행위가 또 있을까. 그러기에 제갈공명도 인재에 목마른 유비의 앞에 낮잠을 자고 일어나 기지개를 켜며 시를 읊는 모습을 보였고 신선들도 걸핏하면 그림 속에서 꾸벅꾸벅 졸고 있는 것일 게다.
시인은 점심 후에 매실을 먹은 듯하다. 그 시린 맛이 오래 남는다. 이제 파초는 많이 자라 오후의 햇살을 받아 녹색의 빛을 창문으로 보내온다. 언제 잠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한숨 자고 일어나니 아무 생각이나 감정의 동요도 없는데, 아이들만 하늘에 눈처럼 내리는 흰 버들개지를 잡느라 야단이다. 시인은 그 광경을 물끄러미 바라본다.
이 시의 앞 2구가 《성재집(性齋集)》 등에는 ‘梅子流酸濺齒牙, 芭蕉分綠上牕紗.’로 되어 있다. 1구의 ‘연(軟)’이 ‘신맛이 남아 이가 시리다’는 의미로, 2구의 ‘여(與)’가 창문에 ‘비치다’는 의미로 해석되어야 함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나라 박윤묵(朴允黙, 1771~ 1849) 같은 문인은 <상추[萵苣]>라는 시에서 “입안이 상쾌하고 잘 씹히니 평소 내가 좋아하였지[爽口而軟齒, 生平吾所嗜.]”라고 한 대목을 보면 ‘연하게 씹힌다’는 의미로 사용한 것을 알 수 있다. 상추에 신맛이 있어 이가 시리다고 하는 경우는 없지 않은가?
이 시는 기본적으로 제목에서 보듯이 한적하게 소요하는 일상을 소재로 하고 있다. 그런데 ‘아무런 감정이나 생각이 없다[無情思]’는 말을 보면 거꾸로 세상일이 안 풀려 자신의 시름을 이런 식으로 녹여내는 것 같은 느낌도 든다. 은거나 한가함, 이런 것을 정치적 맥락에서 보면 또 다른 의미가 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첫 구에 매실의 신 맛이 이 사이로 스며들어 이가 시리다는 말이나 마지막 구에 아이들이 버들개지를 붙잡는다는 표현이 매우 사실적이다. 시인들이 ‘양만리는 기이한 표현을 좋아하여 바른 기운을 상하게 한다.’고 하며, 이 시를 예로 들고는 ‘생각을 극도로 들였다.(極有思致)’라고 말하니, 양만리는 ‘붙잡다[捉]’ 한 글자에 자신의 공부가 들어 있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송나라 주밀(周密,1232~1298)의 《호연재아담(浩然齋雅談)》에 나오는 얘기다.
이런 말을 듣고 보면, 시경(詩境)은 한가할지 몰라도 시작(詩作)은 매우 치밀한 것을 알 수 있으며, 확실히 착(捉) 자에 묘미가 있어 보인다. 이 시가 낮잠 자고 일어나 붓 가는 대로 끄적거린 시가 아니라는 말이다. 어떻게 한가한 것인지, 그 게으르고 한가한 모습을 공들여 하나의 시적 아름다움으로 포착하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365일 한시 1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