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대숙륜戴叔倫 소계정蘇溪亭

소계정蘇溪亭/당唐 대숙륜戴叔倫

蘇溪亭上草漫漫 소계정 주변에 풀들은 끝없는데
誰倚東風十二闌 동풍에 열두 난간 누가 서 있나
燕子不歸春事晚 제비는 안 오고 봄날은 가는데 
一汀煙雨杏花寒 모래톱 안개비에 살구꽃 차갑네

대숙륜(戴叔倫, 732~789)은 당 말의 시인으로 지금의 강소성 상주(常州) 사람이다. 자사 등 관직 생활도 하였는데 만년에는 관직을 그만두고 도사(道士)가 되었다. 은일과 한적을 노래하거나 농촌 풍경을 노래한 시를 많이 지었다.

소계정은 절강성 의오(義烏), 지금의 소계진(蘇溪鎭)에 있던 정자이다. 의오는 지금 항주 남쪽에 있다. ‘십이난(十二闌)’는 굴곡이 많은 난간을 말한다. ‘난(闌)’은 ‘난(欄)’의 의미이다. ‘춘사(春事)’는 ‘춘경(春景)’을 말한다.

이 시는 겉으로는 늦봄의 경관을 노래하고 있지만 그 안에 이별의 서정을 녹여 넣고 있다. 즉 경 속에 정을 담아 정과 경이 시어 속에 함께 숨 쉬는 듯하다.

우리나라 현대 시인들의 많은 작품을 보면 자연의 사물을 노래하지만 그 안에 많은 감정이 스며있어 하나의 독특하고 다양한 은유적 시세계를 이루듯이 이 시 역시 그렇다. 시 중에서는 격정적인 감정을 노출하는 선이 굵고 강렬한 시가 있는가 하면, 안개비처럼 적시는 시도 있고, 이 시처럼 있는 듯 없는 듯,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고 산의 남기처럼 아른거리는 시도 있다.

정자 주변에 풀이 드넓고 무성하게 깔려 있다는 것을 말하여 외롭고 고독한 분위기를 마련한 다음, 봄바람 부는 정자 난간에 홀로 선 여인을 등장시킨다. 이어 제비가 안 왔다는 말로 기다림을 환기시키고 봄날이 간다는 말로 아쉬움을 슬며시 드러낸다. 정자 주변에 흐르는 강 모래톱에 안개비가 내리는데 귀엽고 고운 살구꽃이 비를 맞아 차갑다는 말에서 이 여인의 애처로운 내면 풍경을 대신 드러내 준다. 안개비를 맞아 차가워진 살구꽃이야말로 이 시의 애수(哀愁) 어린 정경(情景)을 가장 잘 보여준다.

자세히 보려고 하면 없지만 멀리서 보면 무언가 어른거리는 기운, 아지랑이 같고 청람(晴嵐) 같은, 이런 시 세계를 대숙륜은 우리 앞에 선보이고 있다.

보충 : 이 시를 소개한 뒤에 중문학자 서성 선생으로부터 <<대숙륜집(戴叔倫集)>>의 편찬 경위에 문제가 있으며 장인(蔣寅)의 <<대숙륜시집교주(戴叔倫詩集校註)>> 등에서 이 시를 명나라 왕광양(汪廣洋)의 시로 고증하였다는 지적을 받았다.

지금 살펴보니, <<어정전당시(御定全唐詩)>>, <<어정정당시록(御定全唐詩錄)>>, <<패문재영물시선(佩文齋詠物詩選)>> 등에는 대숙륜의 작품으로 되어 있고, 왕광양의 시집인 <<봉지음고(鳳池吟稿)>>와 <<어정송금원명사조시(御定宋金元明四朝詩)>>, <<명시종(明詩綜)>> 등에는 왕광양으로 되어 있다.

현재 바이두에는 <소계정(蘇溪亭)> 시에서는 대숙륜의 작품으로 소개하고 있고 대숙륜(戴叔倫) 인명을 검색하면 작품변위(作品辨僞) 항목을 두어 왕광양의 작품으로 확인되었다고 서술하고 있다. 

보통 후인의 작품이 더 앞선 시대의 출판물에 수록되어 있으면 앞선 작가의 작품으로 확정하기가 용이하지만 이처럼 전 시대의 작품이 후인의 시집이나 관련 출판물에 들어 있을 경우 곧바로 후인의 작품으로 단정하기 어렵다.

지금 현재 필자의 식견과 처지로는 이 작품의 작가를 왕광양으로 단정하기가 어려우므로 우선 이런 견해를 소개한 뒤에 후일 차분하게 관련 자료를 검토해 보고 다시 정리할 것을 기약한다. (2019.04.11.)

사진 출처 你以为我可以爱你多久 sina.com.c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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