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구絶句/ [宋] 승지남僧志南
고목 그늘 속에
작은 뜸배 매어두고
지팡이에 몸 기대고
다리 동쪽으로 건너가네
살구꽃비에 내 옷이
촉촉하게 젖어드는데
얼굴 스치는 버들 바람도
차갑지 않구나
古木陰中系短篷, 杖藜扶我過橋東. 沾衣欲濕杏花雨, 吹面不寒楊柳風.
—절기가 청명에 이르면서 꽃샘추위도 한 풀 꺾였다. 얼굴에 스쳐오는 바람에 훈기(薰氣)가 느껴진다. 완연한 봄바람이다. 그 봄바람에 ‘행화우(杏花雨)’ 즉 ‘살구꽃비’가 쏟아진다. 가랑비나 보슬비에만 옷이 젖는 것이 아니다. 살구꽃비에도 봄옷이 촉촉하게 젖는다. 옷을 적시는 물질은 습기가 아니라 향기다. 그러므로 향기로 옷을 적시는 비는 세우(細雨)나 미우(微雨)가 아니라 향우(香雨)다. ‘살구꽃비(杏花雨)’는 ‘향기 나는 비(香雨)’다.
게다가 향기로운 비를 뿌리는 바람은 버드나무(楊柳)를 스쳐왔다. 그 바람의 색깔은 버드나무 새순에서 묻어온 옥빛이다. 옥빛 바람이 분홍빛 살구꽃 비를 흩날리고 그 꽃비는 내 옷을 촉촉하게 꽃향기로 적신다. 무지개 같은 봄날이다. 노약한 몸을 이끌고 다리 건너 동풍이 불어오는 곳으로 나간 사람도 바로 회춘의 기운에 심신이 소생하는 희열을 느꼈으리라. 그곳은 다른 곳이 아닌 꽃비가 쏟아지는 고목 아래다.
뿐만 아니다. 그 고목 아래엔 봄나들이를 위한 작은 뜸배가 매어 있다. 뜸배는 지붕이 있는 작은 배다. 중국 강남에 흔하다. 그 뜸배의 지붕과 선창도 꽃비에 젖었다. 이 봄나들이는 향기에 젖은 배를 타고 향기를 맡으러 가는 향기 가득한 일정이리라. 이제 바야흐로 꽃비에 젖어드는 시절이다. 화사한 꽃구름이 분분히 꽃비로 쏟아질 터이다.(2018.04.04)
한시, 계절의 노래 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