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65일 한시-백거이白居易 대림사 복사꽃大林寺桃花

대림사복사꽃大林寺桃花 /당唐 백거이白居易

人間四月芳菲盡 세상에는 4월이라 온갖 꽃 다 졌는데
山寺桃花始盛開 산사에는 복사꽃이 이제야 한창 피네
長恨春歸無覓處 봄이 가서 찾을 곳 없다 늘 한탄 했네
不知轉入此中來 이곳에 돌아와 피어 있는 줄 모르고서

일이 있어 출근했다가 오후 늦게 북한산 입구로 나와 이른 저녁을 먹고 진관사에 들렀다. 산사는 예전에 비해 더 깨끗해지고 더 새로워졌다. 절 입구에 늘어선 키 큰 소나무들이 절간의 탈속미를 더해준다. 드문드문 보이는 연두색 버드나무가 절로 시선을 끌고 산수유도 한 귀퉁이에 피어 있다. 산 여기저기에 핀 진달래는 가장 봄을 실감하게 해 주는 국화라 할 만하다.

산사 앞 소나무 숲에 앉아 수첩을 꺼내 이 시를 읽어본다. “人間四月芳菲盡한데 山寺桃花始盛開를. 長恨春歸無覓處하니, 不知轉入此中來를.” 다시 2 구절 씩 허공을 응시하며 낮은 소리로 낭송한다. 몇 번 그렇게 하다가 어느 순간 전구를 낭송한다. 이런 과정을 계속 반복하면서 시상을 생각해 본다. 어떤 글자에 집중했다가 다시 운자에 집중했다가. 아! 이 시는 우의(寓意)가 있구나!

이 시는 백거이가 46세 때 강주 사마로 좌천되어 있던 817년 4월 9일에 대림사에 가서 하룻밤 자고 지은 시이다. 대림사(大林寺)는 강주(江洲), 즉 지금의 구강(九江)에서 멀리 않은 여산(廬山)에 있던 사찰이다. 지금은 폐사 된 것으로 보인다.

백거이가 지은 <유대림사서(遊大林寺序)>에 보면 백거이는 당시 명사들과 승려들 합쳐 도합 17명이 동림사(東林寺)와 서림사(西林寺)를 보고 향로봉(香爐峯)에 올라 대림사에서 잤다. 이 3사찰이 여산의 대표사찰이었다. 대림사는 매우 멀고 인적이 드문데 산이 높고 깊어서 다른 곳 보다 계절이 늦어 당시 초여름인데도 이곳은 정월이나 2월 같았다고 한다. 그 때 한창 산 복숭아꽃이 피어 별세계를 이루어 이 시를 썼다고 한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이 사찰에는 모두 해동인, 즉 한국 사람이 승려로 있었다는 대목도 나와 눈길을 끈다.

나도 예전에 이백의 <망여산폭포>에 가보고 장개석 별장에서 하룻밤 잔 뒤에 다시 백록동 서원을 둘러보고 소식의 <이군산방기>의 유지를 찾기 위해 하루 종일 비가 부슬부슬 오는 산 속을 헤맨 경험이 있어 여산이 어느 정도 큰 산인 것을 대강 안다.

시의 일차적인 의미는 인간(人間), 일반 평지 마을에는 4월이라 봄꽃이 모두 져서 이제 봄꽃을 어디에서도 찾을 곳이 없다고 늘 아쉬워하였는데 이 곳 대림사에 와 보니 복사꽃이 한창이라는 내용이다. 백거이가 명시적으로 말하지는 않았지만 이 시는 그의 처지와 관련하여 자연스럽게 좀 더 깊이 우의적으로 읽힌다.

자신이 이전에 몸담고 있던 세계에서 일이 잘 안 풀려 좌절감에 빠져 있는데 이곳에 와서 그동안 미처 모르던 새로운 자신의 세계를 발견했다는 말로도 들린다.

우리는 자신이 정열을 쏟아 애쓰던 곳에서 성공하지 못하면 좌절한다. 그러나 어느 순간 자신의 새로운 길을 발견하면, 왜 내가 예전에 그렇게 아등바등했는지 한탄스러우며, 왜 이런 좋은 세계를 이제야 알게 되었는지 안타까워한다. 세상에 진정으로 자신에게 맞는 길을 걸어가는 사람은 얼마나 될까?

이 봄, 나는 나의 복사꽃과 함께 피어 있는가? 아니면 자신의 도원(桃園)은 알지 못한 채 어느 엉뚱한 세상에서 인연 없는 사람들과 시비총중(是非叢中)에 빠져 무명(無明)의 아귀다툼을 벌이고 있는 것인가? 
하늘은 푸르고 꽃은 피었는데 내가 건너갈 나루는 어드메뇨?
해가 저물어 가는 진관사에서 무슨 떠돌이 화상처럼 이런 생각을 하며 걸어 나왔다.

九江 大林寺 사진 출처 眾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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