십리 누대가 푸른 산에 기대 있고鷓鴣天/송宋 안기도晏幾道
十里樓臺倚翠微 십리 누대가 푸른 산에 기대 있고
百花深處杜鵑啼 백화 핀 곳에 두견새가 울어 대네
殷勤自與行人語 간절히 타향객과 말을 하는 듯 하니
不似流鶯取次飛 마음대로 나는 꾀꼬리와는 다르네
驚夢覺 꿈에서 깨니
弄晴時 햇살에 울음
聲聲只道不如歸 소리마다 돌아가느니만 못하다 하네
天涯豈是無歸意 하늘 끝에서 귀향의 마음 왜 없으랴만
爭奈歸期未可期 돌아갈 날 기약하지 못하니 어쩌리
이 작품은 안기도(晏幾道, 1038~1110)가 <자고천(鷓鴣天)>이라는 사패(詞牌)로 지은 사(詞)이다. <자고천>이라는 사패는 오대 시대에 이미 나타나며 송대에 유행하였는데 고려 시대에 이제현(李齊賢)도 이 곡조로 지은 사가 《익제난고(益齊亂稿)》에 전한다. 이 사는 7언 율시와 같은 자리인 짝수구와 제1구에 운자가 있는 것 외에도 중간에 3글자로 2구를 만든 ‘시(時)’ 자에도 운자가 있다는 차이가 있다. 중간의 3글자 앞에서 상하 양편(兩片)으로 나누어진다. 제목에 첫 구를 그대로 인용한 것은 다른 <자고천>과 구별하기 위해서이다. 실제로 안기도가 지은 《소산사(小山詞)》에는 <자고천>이 무려 18수, 《어정역대시여(御定歷代詩餘)》에도 16수가 실려 있다. 이 사를 읽을 때는 운자에 호흡을 맞추어 읽어야 한다.
이 시는 두견새, 즉 소쩍새가 우는 소리를 듣고 고향에 가지 못하는 심정을 소쩍새에 이입하고 있다.
‘은근(慇懃)’이라는 말은 오늘날은 ‘드러내지 않고 가만히’라는 뜻으로 뜻이 변하였다. 여기 나오는 말은 ‘간절히’, ‘정성껏’ 이란 의미를 지닌다. ‘행인(行人)’ 역시 ‘길 가는 사람’이 아니라 고향을 떠나 객지에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 ‘자(自)’는 두견새가 우는 소리를 들으면, 절로 타향에 사는 사람의 마음을 알아 줄 것 같은 생각이 든다는 차원에서 쓴 말이다. ‘취차(取次)’는 여러 가지 뜻이 있는데 여기서는 ‘임의대로’ ‘마음대로’라는 의미이다.
‘천리앵제녹영홍(千里鶯啼綠映紅)’이라. 51회 <강남춘(江南春)>의 풍경이 다시 펼쳐졌다. 십리에 걸친 누대는 푸른 산에 의지해 늘어서 있고 그 사이 사이에는 온갖 꽃이 피어 있다. 그리고 소쩍새가 운다. 다시 소쩍새가 운다. 또 다시 소쩍새가 운다. 그 소리는 고향을 떠나 타향에 있는 나에게 무언가 간절히 말을 거는 것만 같다. 풀쩍 뛰어 내렸다가 다시 풀쩍 올라가는 꾀꼬리가 자기 세상을 만난 듯이 마음대로 날아다니는 것과는 무언가 다르다.그 소리에 잠을 깨보니 눈부시게 맑은 날 참으로 애절히도 운다. 오직 ‘불여귀… 불여귀……’ ‘돌아가는 게 낫겠네. 돌아가는 게 낫겠네.…….’ 하는 소리뿐이다. 나는 고향을 떠나 천애 멀리 이곳에 왜 있는가? 그러나 아직 할 일이 있어 돌아갈 기약조차 없으니 어이할 것인가.
마치 영화의 한 장면 묘사처럼 구성되어 있다. 큰 배경 묘사가 나오고 잠에서 깨어난 사람이 클로즈업되고 다시 들려오는 소쩍새 소리……
안기도는 생몰년에 이견이 많은데 임천(臨川), 즉 오늘날의 남창(南昌) 출신으로 부친 안수(晏殊)와 함께 애정사로 유명하다. 문장의 풍격을 방담(放膽)과 소심(小心)으로 구분하듯이 사의 풍격을 호방(豪放)과 완약(婉弱)으로 나눌 때, 안기도는 완약한 사풍의 대가로 인정되고 있다.
봄날 소쩍새 울음과 고향 생각은 예전 사람들이 봄을 대한 또 다른 세계를 전해준다.
365일 한시 9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