꽃인 듯 꽃 아니네花非花/ [唐] 백거이
꽃인 듯 꽃 아니고
안개인 듯 안개 아니네
한밤에 왔다가
낡 밝자 떠나네
봄꿈처럼 왔다가
몇 시진 머물렀나
아침구름처럼 떠나서
찾을 곳 없구나
花非花, 霧非霧, 夜半來, 天明去. 來如春夢幾時多, 去似朝雲無覓處.
—우선 시 형식이 독특하다. 앞의 네 구절은 각각 삼언이고, 뒤의 두 구절은 모두 칠언이다. 모든 구절이 오언이나 칠언으로 구성된 한시에 익숙한 독자들께서는 무슨 형식이 이러냐고 고개를 갸웃하시리라. 하지만 중국 민요에서는 이런 형식이 더 보편적이다. 앞의 네 구절 중 전반부 두 구가 하나의 단위를 이루고, 그 다음 두 구가 또 하나의 단위를 이룬다. 다시 말해 이 시는 “화비화·무비무”가 하나의 낭독 단위와 의미 단위를 이루고, 그 뒤의 “야반래·천명거”가 또 하나의 낭독 단위와 의미 단위를 이루는 구조다. 처음에는 어색하지만 몇 번 반복해서 낭독해보면 오언이나 칠언보다 더 리드미컬한 운율미를 느낄 수 있다.
더욱 독특한 것은 이 시가 매개어(vehicle)만 있고 취의(tenor)가 모호하다는 점이다. 비유어인 보조관념만으로 비유대상인 원관념을 파악하기 힘들다. 현대에는 은유나 상징만으로 시를 쓰면서 의도적으로 원관념을 숨기기도 하지만, 고대 한시는 비유만으로 시를 쓰더라도 원관념을 드러내지 않는 경우는 드물다. 하물며 백거이임에랴! 그는 시 한 편을 쓴 후 저자거리 노파에게 읽어준 후 그 노파가 이해하지 못하면 그 시를 폐기처분했다고 한다. 그러나 이 시는 백거이의 시답지 않게 모호하다.
꽃인 듯 꽃이 아니고, 안개인 듯 안개 아닌 대상이 무엇일까? 한밤중에 왔다가 날이 밝으면 떠나간다. 그것은 일장춘몽처럼 다가왔다가 얼마 머물지도 않고 아침 구름처럼 순식간에 사라진다. 연인일까? 지음(知音)일까? 그리움일까? 반짝이는 시상(詩想)일까? 파악하기 힘들다.
하지만 실망할 필요는 없다. 이런 모호함을 둘러싼 봄꿈 같은 아련함이 이 시의 본령이기 때문이다. 이 시의 매개어(vehicle)에는 위의 다양한 취의(tenor)가 모두 실려 있다. 억지로 취의(tenor)를 하나로 확정하는 순간 이 시의 아우라는 모두 사라진다. 아련함을 아련함으로 남겨두는 것이야말로 시를 읽는 근본적인 자세다.(사진출처: 一梦芳菲)
한시, 계절의 노래 3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