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로정勞勞亭/당唐 이백李白
天下傷心處 천하에 가장 슬픈 이 곳
勞勞送客亭 손님과 작별하는 노로정
春風知別苦 봄바람도 이별의 고통을 아는지
不遣柳條青 버들가지 푸르게 만들지 않았네
노로정(勞勞亭)은 삼국시대 오나라 때 창건한 정자로 남경시 서남쪽에 유지가 남아 있다. 고래로 송별 장소로 유명한 정자이다. 이 시가 언제 지어졌는지 분명치 않은데 연구자들은 749년 이백이 금릉, 즉 남경에 갔을 때 지은 시로 보고 있다. ‘노로(勞勞)’라는 말은 이별을 아쉬워 슬퍼하고 근심하는 모양을 뜻한다. 《옥대신영》에 수록된 고시 중에 무명인의 “최중경의 아내를 위해 짓다<爲焦仲卿妻作>”에 “손들어 이별하며 오래도록 슬픔에 젖으니, 두 사람 다 안타까워하네. [舉手長勞勞, 二情同依依]”라는 표현이 있는데, 이 정자의 작명과 매우 연관성이 있어 보인다.
이백은 많은 사람들과 사귀고 술을 많이 마셨기 때문에 송별시와 유연시(遊宴詩)가 많다. 그런데 삼민서국 《이백시전집》 에서는 이 시를 제영시(題詠詩)에 분류하고 있다. 이 시의 성격이 누군가를 송별하는 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송별의 장소로 애용되던 정자 자체에 있다고 본 것이다.
예전 사람들은 이 시를 읽을 때 지금처럼 ‘노로정’이라 하지 않고 ‘로로정’이라 했을 것이다. 최소한 1933년 한글 맞춤법이 나오기 전까지는 말이다. 두음법칙을 표기에 적용하는 발상은 처음 이숭녕이 하였고 이어 이희승과 최현배가 동조하여 정착된 것이라 하는데 나는 매우 잘못된 것이라 생각한다. 실제로 ㄴ, ㄹ을 첫소리에 발음하기 어려운 사람도 있지만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도 많다. 그러므로 이를 자음동화처럼 하나의 발음현상으로 허용하는 것으로도 충분하였는데 표기에까지 적용한 것은 문제가 있다. 만약 이것이 정말 법칙이라면 왜 외래어에는 적용을 하지 않나? 그것은 한국인이 발음상으로 문제가 없다는 것을 반증한다.
두음법칙 때문에 ‘로로정’을 ‘노로정’으로 표현하면 마치 ‘노’와 ‘로’가 다른 글자인 것처럼 보이고 읽을 때도 두 글자를 반복해서 읽는 의미가 사라져 버린다. 한문 번역과 관련된 일을 하다 보면 정말 불편하고 거추장스럽고 착각이 많이 발생하는 것이 바로 이 두음법칙이다. 지금 새삼스럽게 대단한 주장을 하자는 것은 아니지만 이런 구체적 사례를 만날 때마다 두음법칙을 만든 사람을 절로 원망하게 된다.
두 번 째 구에 ‘勞勞送客亭’이라 한 것처럼 어떤 사물명 사이에 갈 ‘지(之)’라든가 이처럼 송객(送客) 등의 수식 어구를 넣은 표현이 한문에는 많다. 이는 한문 특유의 조어법으로 풍부한 표현을 가능하게 한다. 마지막 ‘견(遣)’은 ‘사(使)’의 의미로 쓴 말이다.
고인들이 이별을 할 때 아쉬운 마음을 전하는 뜻으로 버들을 꺾어 길 가는 사람에게 주었는데 이는 버들 ‘류(柳)’가 머물 ‘류(留)’와 발음이 같은 데서 착안한 것이다. 요즘 우리나라 사람이 ‘사과’의 의미로 ‘사과’를 주는 것과 비슷하다. 이백이 이 정자에 갔을 때가 마침 이른 봄이었던 모양이다. 아직 버들이 누구에게 꺾어 줄만큼 푸르지 않은 것을 보고 아이디어를 얻은 것 같다. 버들이 이별을 아쉬워하는 사람 마음을 알아 일부러 싹이 안 트게 하였다는 정감어린 말을 한 것이다.
봄은 만물이 약동하고 이제 모든 것이 시작되는 시기라 이별과 안 어울릴 것 같은데 묘하게 봄이 이별과 잘 어울리는 것은 참 알지 못할 인간의 감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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