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숭(惠崇)의 그림 <춘강만경(春江晩景)>를 보고惠崇春江晩景/송宋 소식蘇軾
竹外桃花三兩枝 대숲 너머 복사 꽃 두어 가지
春江水暖鴨先知 따뜻해진 봄 강물 오리가 먼저 아네
蔞蒿滿地蘆芽短 물쑥은 지천이고 갈대 싹 뾰족뾰족
正是河豚欲上時 지금은 바로 복어가 올라올 무렵
혜숭(惠崇)의 그림을 보고 소동파가 쓴 제화시(題畵詩)이다. <춘강만경>, 즉 ‘봄날 강의 저녁 풍경’을 그린 이 그림은 지금 전하지 않는다. 다만 소식의 이 시가 남아 혜숭의 존재를 알리고 있다. 이렇게 그림에 직접 쓰지 않고 그림을 보고 쓴 제화시도 매우 많다. 소식(蘇軾, 1036~1101)은 1085년 개봉에서 이 그림을 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소식이 50살 때이다.
혜숭은 복건성 건양(建陽) 사람으로 송나라 초기의 화승이다. 곽약허(郭若虛)의 《도화견문지(圖畵見聞志)》에 혜숭은 소경화(小景畵), 즉 화첩이나 선면에 그리는 그림을 잘 그렸다고 하는데 특히 겨울철 물가의 쓸쓸하고 황량한 풍경은 다른 사람이 도달하기 어려운 경지였다 한다. 고궁박물원에 <추포쌍원(秋浦雙鴛)>이란 그림이 있다.
강변에 대나무가 자라고 그 한 쪽에 복사꽃이 이제 갓 피기 시작한다. 강변 언덕에는 물쑥이 시퍼렇게 돋아 나 있고 갈대 싹은 이제 뾰족뾰족하다. 그 사이의 물에는 오리 몇 마리가 헤엄치며 다니고 있다.
소식의 시를 통해 혜숭의 그림을 이렇게 상상해 본다. 혜숭은 아마도 이런 봄의 경물을 통해 천기의 생동하는 기운을 그림에 담으려 했을 것이다. 하돈은 복어의 다른 이름인데 봄에 가장 맛있다고 한다. 소식은 혜숭의 그림에는 없는 복어를 언급하여 사람들의 미각을 자극하여 그림에 생동감을 더하고 있다.
이 그림을 보고 바로 복어를 떠올린 것을 보면 소동파가 상당한 미식가로 보인다. <후적벽부>에서도 만추 10월 보름, 뱃놀이하기에 앞서 거구세린(巨口細鱗)의 농어와 술을 챙긴 사람이며 중국에 가서 독한 중국술과 먹기에 좋은 고기가 동파육(東坡肉)이기도 한 것을 보면 더욱 그렇다. 그러나 소동파보다고 30년 더 앞서 살았던 매요신(梅堯臣, 1002~1060)의 <하돈> 시에 “봄 물가에 갈대 싹 나오고, 봄 언덕에 버들개지 날리네. 하돈이 이 무렵이 되면 귀해서 생선 새우는 꼽지도 않네.[春洲生荻芽, 春岸飛楊花. 河豚當此時, 貴不數魚鰕.]”라고 한 것을 연역한 것이다. 그리고 이 그림의 실제 경치는 2월에 해당하지만 이때는 이미 복어가 강물에 많아 올라와 있는 시기라고 하며 후대의 평자들은 소동파의 이 구절이 타당하지 않다고 지적하기도 한다.
노아(蘆芽)나 적아(荻芽)라고 한 것은 갈대의 어린 순을 말하는데 중국 남방 사람들은 이것을 탕으로 끓여 먹는 것을 최고의 맛으로 친다는 한다. 그러니 이 그림의 갈대 싹을 보면 많은 사람이 탕을 생각하고 또 제철 음식인 복어를 연상할 것이다. 이 시가 유명해진 것은 이런 문화적이 배경을 바탕으로 하고 있다.
혜숭이 그린 그림은 동일제목의 2폭이라 소식도 2편을 썼는데 특히 앞 시가 유명하다. 나머지 한 편을 더 본다.
兩兩歸鴻欲破羣 쌍쌍이 돌아가는 기러기 행렬 무너질 듯
依依還似北歸人 북으로 귀향하는 사람이 아쉬워하는 모양
遙知朔漠多風雪 북쪽 사막엔 아직 눈보라가 많이 칠 텐데
更待江南半月春 강남에서 봄 반달 정도 더 기다렸다 가길
기러기는 안진(雁陣)이라는 말이 있듯이 전투 대형처럼 질서정연하게 편대를 이루어 난다. 아마도 혜숭이 그린 그림에는 기러기 편대가 정연하지 않고 무언가 허술해 보였던 듯하다. 소식은 그런 기러기 대형을 보고 북쪽에 고향을 둔 사람이 돌아가면서 남쪽에서 살던 것을 못 잊어 떠날 때 주저하는 것이라 해석한다. 그러면서 아직 북쪽의 사막은 춥고 눈도 많이 올 것으로 생각되니 강남에서 달포 정도 좀 더 머물다 가면 어떠냐고 유머를 던진다. 자연의 경치에 인간의 감정을 부여하여 그림을 더욱 서정적으로 만들고 있다.
첫 구의 욕(欲)은 기러기들의 의지가 아니다. ‘~하려고 한다.’가 아니라 ‘~인 듯하다.’란 뜻이다. 기러기의 의지와는 무관하게 행렬 중에 몇 마리가 낙오할 것처럼 보인다는 말이다. 두목(杜牧)의 <청명(淸明)>시에, 명절인데 고향도 못가고 게다가 비까지 추적추적 내려 ‘너무도 마음이 서글프다’는 말을 ‘욕단혼(欲斷魂)’이라고 한 ‘욕(欲)’과 같은 용법이다.
365일 한시 6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