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봄 두 수初春二首 중 둘째/ [宋] 항안세項安世
춥지도 덥지도 않게
풍경이 좋아짐에
취한 듯 졸린 듯
봄 마음 깊어지네
연초록과 진홍색이
한 점도 없지만
버들 정과 꽃 생각이
절로 옷깃에 가득 하네
不寒不暖風色好, 似醉似眠春意深. 嫩綠深紅無一點, 柳情花思自盈襟.
봄은 어디서 오는가? “저 건너 저 불탄 오솔길”에서 오고, “푸른 바다 건너서” 오고, “파란 들 남쪽에서” 바람에 실려 온다. 당나라 두보는 “봄은 다시 모래톱 가에서 돌아온다(更復春從沙際歸)”(「낭수가閬水歌」)라 했고, 송나라 구양수는 “바람이 봄을 하늘에서 데려온다(風送春從天上來)”(「춘첩자사春帖子詞」)라 했으며, 송나라 진조(陳造)는 “봄은 땅속 깊은 곳에서 온다(春從九地回)”(「재차운再次韻」)라 했다. 봄은 그렇게 모르는 사이에 천지사방에서 빈틈없이 잠입한다.
춥지도 덥지도 않은 날씨에 춘곤증이 밀려오고, 비몽사몽간에 춘정은 더욱 짙어만 간다. 춘의(春意)는 자연이 봄을 만들어가는 뜻이기도 하고 내 마음 속에서 문득 고개를 드는 그리움(春情)이기도 하다. 하지만 아직 초록빛은 짙어지지 않았고 붉은 꽃도 흐드러지지 않았다. ‘눈(嫩)’이라는 한자가 참 신비하다. ‘여리고 어여쁘다’는 뜻이다. 거의 ‘눈록(嫩綠)’이라는 어휘로 쓰인다. 가냘프지만 생생한 초록색을 의미한다. 나는 ‘눈(嫩)’이야말로 ‘인(仁)’의 색깔이라고 믿는다. 모든 생명은 ‘눈(嫩)’에서, 그리고 ‘인(仁)’에서 시작한다. 당연히 봄도 그렇다. 한 번 발음해보시라. ‘눈(嫩)!’ ‘눈록(嫩綠)!’
아직은 ‘눈록’도 ‘심홍’도 없는 새봄이지만 버들과 꽃을 생각하는 마음은 벌써 옷깃에 가득 넘친다. ‘유정화사(柳情花思)’는 ‘유정화의(柳情花意)’로도 쓰는데 버들 푸르고 꽃 만발한 봄날의 그리움을 뜻한다. 그 그리움이란 물론 남녀 간의 춘정이다. ‘유(柳)’가 ‘유(留)’와 발음이 통하여 유정(柳情)은 ‘유정(留情)’이 된다. 서로 정을 주며 사랑을 시작하는 것이다. 옛날에는 남성의 입장에서 여성을 대상화했으므로 ‘유정화의(柳情花意)’가 여성의 어여쁜 모습을 의미하기도 했다.
봄은 어디서 오는가? 물론 천지사방 가운데 봄의 연원이 아닌 곳은 없다. 그러나 아직 초록색 잎도 붉은색도 꽃도 전혀 없는 초봄에 ‘버들 정과 꽃 생각’을 옷깃에 가득 담고 있으므로 봄은 기실 사람의 마음속에서 온다. 겨울이 시작될 무렵에 벌써 “겨울이 오면 봄이 멀지 않으리”라고 예감하지 않았던가? 봄은 벌써 우리의 마음속에 가득 넘치고 있다.(사진출처: 圖行天下)
한시, 계절의 노래 28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