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唐] 한유韓愈 봄눈春雪

봄눈春雪/[唐] 한유韓愈

새 봄 와도 도무지
고운 꽃 안 피더니

이월 초에 놀랍게도
풀 새싹 보이네

흰 눈은 오히려
봄빛 늦다 타박하며

펄펄 나는 꽃 만들어
뜰 나무에 입혀주네
新年都未有芳華, 二月初驚見草芽. 白雪却嫌春色晚, 故穿庭樹作飛花.

성당 두보 시의 특징은 중당에 이르러 두 갈래로 갈라진다. “시어가 사람을 놀라게 하지 않으면 죽어도 그만두지 않겠다(語不驚人死不休)”는 경향, 즉 시를 철저하게 깎고 다듬는 특징은 한유로 이어지고, 삼리(三吏)·삼별(三別)과 같은 현실에 대한 치열한 관심은 백거이로 이어진다. 역대로 한유 시의 풍격을 흔히 기험괴벽(奇險怪僻)하다고 규정한 것도 앞의 첫 번째 경향에 근거한 평가다. 쉽게 말하면 한유가 쉽고 평범한 시어나 운자를 쓰지 않고 벽자나 험운(險韻)을 즐겨 썼다는 뜻이다.

시사(詩史)의 흐름으로 볼 때 이는 불가피한 측면이 있다. 성당시의 찬란하고 다양한 표현을 넘어서기 위해서는 일반적인 시어와 운자의 범위에만 머물 수 없었기 때문이다. 송시(宋詩)가 직면했던 고통이 이미 중당 시인에게서 나타나고 있음은 의미심장한 일이다. 시의 일상화라는 측면에서는 한유와 백거이 시에서 모두 송시의 단초를 엿볼 수 있다.

하지만 이 시는 기험괴벽하다는 한유 시의 일반적 경향에서 살짝 벗어나 있다. 신선하고 낙관적이다. 이 한 수의 시만으로도 한유는 자신이 중당을 대표하는 시인임을 증명했다. 그는 이 시에서 새봄을 시샘하여 내리는 봄눈을 봄꽃으로 비유하고 있다. 마지막 구절에 쓴 ‘천(穿)’자가 매우 기발하다. 본래는 봄눈이 정원의 나뭇가지를 꿰뚫고 내린다는 뜻이다. 그렇게 봐도 이 시를 이해하는데 별 무리가 없다.

그러나 중국어에서는 ‘옷을 입다’라고 할 때 “촨이푸(穿衣服, chuan yifu)”라고 한다. 눈꽃이 봄옷처럼 마른 나무 가지를 감싸는 것으로 이해해야 이 시의 의도가 제대로 드러난다. 메마른 나무가 눈꽃을 입는 것이다. 그것이 겨울치장일까? 전혀 아니다. ‘세모시 옥색치마’는 아닐지라도 백옥 같은 눈꽃으로 만든 봄옷이다. 이렇게 보면 봄은 사람의 마음속에 먼저 온다고 해야 한다.

오늘 내린 눈도 늦겨울의 앙탈이 아니라 새봄을 맞이하는 기쁨의 봄치장이다.(사진출처: 杜员外的博客)

한시, 계절의 노래 27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