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씨티은행’(Citi Bank)은 중국어로 ‘花旗銀行’(화기은행)!
1902년 중국에 진출한 씨티은행(Citi Bank)의 중국어 이름은 ‘花旗银行’(화기은행)이다. ‘花旗银行’을 한자 뜻 그대로 풀이하면 ‘꽃(花) 깃발(旗) 은행’이 된다. ‘씨티(Citi)라는 이름이 왜 중국으로 건너오면서 ‘花旗(꽃 깃발)’라는 이름이 되었을까?
‘花旗’라는 이름은 씨티은행 간판 이외에도 중국의 약방이나 백화점의 건강보조식품 코너에서도 쉽게 발견할 수 있다. 아래 그림과 같이 중국에서 판매되고 있는 인삼제품 중에 ‘花旗参’이라는 것이 있다. ‘花旗参’을 한자 그대로 해석하면 ‘꽃 깃발 인삼’이다. ‘꽃 깃발 인삼’은 도대체 어떤 인삼을 말할까?
결론부터 이야기하면 ‘花旗参’은 미국산 인삼을 말한다. ‘高麗参’은 우리나라 인삼이고, ‘花旗参’은 미국 인삼을 뜻한다.
그리고 주윤발(周潤發)과 오천련(吳倩蓮)이 주인공으로 등장한 1994년 영화 ‘화기소림(花旗少林)’에도 ‘花旗’라는 말이 나온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활동 중인 중국계 CIA 요원(周潤發)이 국보를 훔치러 중국 소림사에 잠입했다가 초능력을 지닌 중국인 처녀(吳倩蓮)와 사랑에 빠지면서 벌어지는 코믹 액션물이다. 이 영화가 ‘미국’과 관련이 있다는 것은 내용에서도 알수 있지만 영화제목 속의 ‘花旗’를 통해서 쉽게 알 수 있다. ‘花旗’는 미국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花旗’는 왜 ‘미국’을 의미하는가?
우리의 시각은 ‘선택적 인식’을 한다. 하나의 사물이라도 바라보는 시각에 따라서 전혀 다른 두 개의 모습으로 보여 지는 경우가 있다. 쉽게 이야기해서 우리의 눈은 착시현상을 일으킬 수 있다.
사람들은 왜 사물을 서로 다르게, 혹은 사실과 다르게 보는 것일까?
사람은 자신의 현재 욕구를 기초로 지각한다. 백지에 그려진 동그라미가, 배고픈 이에겐 빵이 되고, 놀고 싶은 아이에겐 공이 되고, 또 어떤 이에게는 돈으로 지각된다. 이처럼 사람들은 세상을 각자의 눈으로 보고 자신의 경험을 토대로 주관적으로 해석하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조금 어렵게 표현하자면 자신의 현재 욕구를 바탕으로 게슈탈트(gestalt)를 형성하여 지각한다.
‘별’(星)이라고 하는 밤하늘에 있는 일반적인 사물도 고정관념과 사유방식 그리고 문화적 배경에 따라서 동서양에서 서로 다르게 인식된다. 고대 동양에서는 ‘별’(星)의 모양을 동그라미(○)로 인식을 했지만, 서양에서는 요즘 우리가 많이 보는 별 모양(☆)으로 인식을 한다. 현재 우리가 표현하고 있는 별 모양은 우리 동양인의 시각에서 바라 본 것이 아닌 서양의 시각에서 본 별의 모양을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동양의 문화코드와 서양의 문화코드가 다르다. 동양에서는 예로부터 ‘별’을 동그라미로 인식하고 있었다. 아래 그림은 평양지역 강서중묘 천정 고구려벽화에 그려진 해와 달, 그리고 별이다.
고구려 벽화에서도 알 수 있듯이 해와 달과 별을 모두 원(圆)으로 그리고 있다. 우리나라 뿐 아니라 옛 중국의 문헌에서도 별은 동그라미로 그려져 있다. 중국 전설 속의 복희(伏羲)와 여와(女娲)의 모습이 그려져 있는 그림 ‘伏羲女娲交尾图’를 보면 해와 달 그리고 별들이 모두 동그라미로 그려져 있다.
그러나 미국을 비롯한 서양에서의 별은 동그라미가 아닌 다섯 개의 뿔을 가진 모양이다. 이처럼 별이라는 하나의 사물을 표현하는데 있어서도 동양과 서양이 차이를 보이고 있다.
서양의 문물이 중국으로 들어오면서 중국인들은 항구로 들어오는 미국 상선의 ‘성조기’를 볼 수 있었다. 이때 중국인들 눈에 비친 성조기의 ‘별’은 ‘별’로 인식되지 않고 ‘꽃’으로 인식되었다. 동양인들의 마음속에 담긴 별의 형상은 동그라미였기 때문에 뾰족한 다섯 개의 뿔을 가진 서양의 ‘별모양’은 ‘꽃모양’으로 밖에 인식할 수 없었던 것이다.
중국인들은 자신들이 보아왔던 경험을 토대로 미국의 국기를 보고 주관적으로 해석했던 것이다. 이때부터 중국에서는 성조기를 ‘花旗’라고 불렀고, 지금도 미국을 ‘花旗国’이라고 부른다.
‘씨티은행’의 중국어 이름 ‘花旗银行’은 ‘미국은행’이라는 뜻이다. 씨티은행은 1902년 처음으로 중국에 진출하면서 미국은행이라는 뜻으로 ‘花旗银行’이라 불리게 되었다.
<참고> 송지현(2007) 중국 문화 속의 시각언어(Visual Language) 연구
by 송지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