둘이 손잡고携手曲/송宋 구양수歐陽脩
落日堤上行 해질녘 방죽 위를 거닐며
獨歌携手曲 <둘이 손잡고>를 홀로 부르네
卻憶携手人 손잡고 가던 사람 생각나는데
處處春華綠 곳곳에 봄 풍경 푸르기만 하네
휴수곡(携手曲)은 악부의 악곡명이기도 하고 이를 계승하여 남북조 때 심약(沈約)과 오균(吳均)이 각각 지은 염정시(艶情詩), 즉 사랑 노래의 명칭이기도 하다. 그런데 구양수가 이 시를 짓던 날 부른 노래는 오균이 지은 작품으로 보인다. 그 노래가 이렇다.
豔裔陽之春 꽃 피고 새싹 돋는 따뜻한 봄
攜手清洛濱 그대 손잡고 거니는 맑은 낙수가
雞鳴上林苑 닭이 울면 상림원에서 노닐고
薄暮小平津 해질녘엔 소평진을 거니네
長裾藻白日 긴 치막자락엔 해가 아롱지고
廣袖帶芳塵 넓은 소매에는 꽃잎이 붙었네
故交一如此 옛날 사귀던 사람 이와 같건만
新知詎憶人 새 사람 사귀니 어찌 날 그리리
소평진은 하남 맹진에 있는 황하 가의 지명이다. 이 시를 보면 다시 심약의 <휴수곡>과 연관되어 있는 것을 알게 된다. 그 시는 한무제의 사랑을 받은 위자부(衛子夫)라는 여인을 주제로 한 노래인데 이 여인은 숙종 대의 장희빈과 아주 흡사한 인물로 가기(歌妓)에서 황후까지 되었다가 폐출되어 자결한 아주 드라마틱한 인생을 산 인물이다. 위청이라는 장군이 이 여인의 오빠이다. 장희빈은 아들 경종이 왕위에 올랐지만 일찍 죽는 바람에 자신이 국모로 다시 추앙을 받지 못하고 악녀라는 오명을 뒤집어썼지만 위자부는 자신의 증손자가 황제가 되어 자신이 다시 황후로 추존되었다. 그 증손자가 바로 한 선제(宣帝)이다.
구양수(歐陽脩, 1007~1072)는 이 악곡의 제목을 그대로 따서 그가 26세 되던 해인 1007년에 지은 시이다. 이와 유사한 애정시 7수를 짓고는 제목으로 <옥대체를 모방하여 짓다. 7수[擬玉臺體七首]>라고 해 놓고 또 명도 원년(明道元年)이라 해 놓았기 때문이다. 지금으로부터 꼭 1,002년 전에 지어진 시인데 오늘날 걸 그룹 가사와 본질적인 차이가 없다.
옥대체는 <<옥대신영(玉臺新詠)>>의 문체라는 말이다. 남조 양(梁)나라 문인 서릉(徐陵)이라는 사람이 이 책을 지었는데 주로 궁중이나 기방의 사랑 시를 모아 놓았으며 여성 작가들의 작품도 다수 들어 있는 책이다. 그러니까 구양수는 젊은 시절 어느 날 저녁 방죽을 따라 거닐며 사랑 노래를 흥얼거리다가 절로 마음이 움직여 자신도 모방해서 한 곡 지어 본 것이다. <휴수곡>은 송 이후에도 원, 명, 청을 내려가며 지어졌다.
이 시는 이상은의 <등낙유원(登樂遊原)>이나 우리나라 시인 김광균의 <언덕>같은 작품을 연상하게 하는 젊은 날의 그리움과 외로운 정서를 환기한다. 3번째 구의 각(却)은 글의 흐름을 바꾸거나 예상과 다른 내용을 말할 때 쓰는 글자이다. 자신의 외로움과 그리움을 달래기 위해 봄 방죽 길을 걸었는데 도리어 옛 애인이 생각난 것을 짐작하게 한다. 처음과 끝 구는 마지막 글자에, 가운데 두 구는 각각 두 번째에 서술어를 놓았다. 마지막 ‘춘화록(春華綠)’ 3 글자는 구양수의 개성적인 표현인데, 춘화를 새싹이 움터 나오는 아름다운 봄 풍경으로 이해하였다. 서거정의 시에 ‘나의 인생 만년이 되었는데/ 경치는 아름다운 봄이 돌아왔네(吾生當晩節, 景物已春華)라는 시구가 있다. 박식한 분의 가르침을 기대한다.
<취옹정기>나 <추성부> 같은 걸 보면 구양수가 상당히 감성적이면서도 낭만적이란 걸 짐작하게 되는데 이 시를 보니 인간 구양수의 체취가 더 직접적으로 다가온다.
사진 : 이날 5시 무렵. 버들을 멀리서 보면 노란 빛이 어려 있다.
365일 한시 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