친구 범엽에게贈范曄 /남북조南北朝 육개陸凱
折花逢驛使 우체부를 만나 매화를 꺾어서
寄與隴頭人 농두에 사는 분께 보냅니다
江南無所有 강남에 달리 보낼 것이 없어
聊寄一枝春 한 가지 봄이나마 보냅니다
이 시를 주석으로 낸 것이 여러 번이었지만 이렇게 한 편의 시로 차분히 번역해 보기는 처음이다.
역사(驛使)는 공문서나 편지를 전달해 주는 사람이다. 농두(隴頭)는 이 시를 받는 수신인 범엽이 살고 있는 동네를 지칭한다. 연구자들은 대체로 장안 근처의 농현(隴縣) 북쪽에 있는 농산(隴山)을 지목한다. 그렇다면 농두는 농산의 들머리 어디쯤을 가리킬 것이다.
이 시의 기존 번역을 보면 折花逢驛使를 ‘꽃을 꺾다가 역사를 만나다’로 순차적으로 번역을 하고 있다. 이 대로 하면 떡 본 김에 제사지낸다는 말이 된다. 그런데 다른 많은 선물을 제쳐 두고 ‘一枝春’을 선물로 보내는 고매한 시인이 이런 식으로 시를 쓰지는 않았다고 본다.
이는 한시의 구법에 대한 이해의 부족에서 온다. 첫 구는 모름지기 ‘생각지 않게 장안 방면으로 가는 역리를 만나자 문득 친구 생각이 간절해 매화꽃을 꺾어 보냈다.’는 말이 되어야 한다. 5언의 구조가 2, 3으로 짜여져 있어 이렇게 쓴 것일 뿐 순서는 당연히 逢驛使折花가 되어야 한다. 중국인들의 시 해설에도 ‘꽃을 꺾고 있을 때 우연히 역사를 만났다.’고 풀이하는 경우가 많은데 나의 문리로 볼 때는 이는 문제가 있다고 생각한다.
마지막의 一枝春은 ‘매화 한 가지의 봄’을 말한다. 매화라는 글자가 이 시에는 없지만 다른 판본에는 첫 구의 花가 梅로 되어 있는 곳이 많고 시 내용으로 볼 때도 梅라야 전체적으로 어울리는 것을 알 수 있다.
편지의 형식으로 된 한 편의 시에서 친구에 대한 정과 함께 시인의 고매한 운치가 고금에 찬연히 한 가지 매화처럼 빛나고 있다.
이 시를 쓴 육개(陸凱, ?~ 대략 504)는 남조 송나라 시대의 인물이다. 관운장을 사로잡고 복수를 위해 물밀 듯 밀고 내려오는 유비의 복수군을 이릉(夷陵)에서 화공으로 대파한 육손(陸遜)의 집안 조카 되는 위진 시대의 육개(陸凱, 198~269)와는 다른 인물이다.
한 편 이 시를 받은 범엽(范曄,398~445)은 <<후한서>>를 저술한 바로 그 ‘법엽’이다. <<설부(說浮)>>, <<학재점필(學齋佔畢)>> 등을 상고하면 범엽의 자 울종(蔚宗)을 쓰서 범울종(范蔚宗)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이다. 그런데 위의 책과 <<영규율수(瀛奎律髓)>> 등에는 흥미로운 사실 하나를 기록해 놓았다. 세상 사람들이 ‘일지춘(一枝春)’ 고사의 주인을 육개로 알고 있지만 사실은 전국시대의 월나라 사신 제발(諸發)이라는 인물이 매화를 꺾어 양(梁)나라 임금을 만나러 온 일이 있다는 것이다.
양나라 신하 중에 한자(韓子)라는 인물이 있는데 이 사람이 ‘어찌 일지매(一枝梅)를 열국의 임금에게 보낸단 말인가?’라며 호통을 치자, 제발이 각국마다 풍습이 다르다며 논쟁을 한 일을 소개해 놓았다. 글의 제목까지 ‘매화를 꺾어 역사에게 보낸 것은 제발에게서 비롯한 것이지 육개에게서 비롯한 것이 아니다(折梅遣使始於諸發不始於陸凱)’라고 그 점을 부각하고 있다.
그렇다면 육개는 강남에 고대로부터 일지매를 귀한 선물로 보내는 풍습이 있다는 것을 알고 이 제발의 고사를 자신의 시에 인용한 셈인데 <<형초세시기(荊楚歲時記)>> 등에서 그 원류를 밝혀 놓지 않아 세상 사람들이 모두 육개가 처음 이런 운치 있는 일을 한 것으로 알고 인용한 셈이 된다.
오늘날 논문이나 글에 보면 이런 일이 많아 일일이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이다. 어찌 ‘일지춘(一枝春)’을 한탄하는 사람이 월나라 사신 제발(諸發)에서 그칠 뿐이겠는가. 식자들의 세심하지 못함을 길게 탄식한다.
사진 : 2013.12.19. 필자 촬영. 남경 오경재 기념관 납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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