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梅花/ [宋] 노매파盧梅坡
매화와 눈이 봄 다투며
서로 지지 않으려니
시인은 붓을 놓고
관전평에 힘을 쏟네
매화는 눈보다
세 푼이 덜 희지만
눈은 외려 매화보다
향이 일단 모자라네
梅雪爭春未肯降, 騷人閣筆費平章. 梅須遜雪三分白, 雪却輸梅一段香.
『맹자(孟子)』에 “차일시, 피일시(此一時, 彼一時)”라는 말이 나온다. “이 때도 한 때이고, 저 때도 한 때다”라는 뜻이다. 계절도 끊임없이 흐르고, 세상도 끊임없이 변한다. 겨울의 정령은 설화(雪花)이지만 봄의 정령은 매화(梅花)다. 두 정령이 계절이 바뀌는 지점에서 만났다. 미(美)를 다투지 않을 수 없다. 눈 속에 핀 매화가 더욱 아름다운 이유는 두 계절을 대표하는 미인이 아름다움을 겨루기 때문이다. 막상막하다.
두 미인의 별칭만 봐도 그렇다. 눈은 옥설(玉屑: 옥가루), 경화(瓊花: 옥꽃), 은속(銀粟 : 은 조), 은사(銀沙: 은모래), 옥사(玉沙: 옥모래), 옥진(玉塵: 옥먼지), 옥접(玉蝶: 옥나비), 옥예(玉蕊: 옥꽃술), 옥서(玉絮: 옥솜) 등으로 불린다. 매화의 별칭은 옥골(玉骨), 빙혼(氷魂: 얼음혼), 청객(淸客: 맑은손님), 한객(寒客: 추운손님), 한영(寒英: 추운꽃), 냉예(冷蕊: 찬꽃), 냉향(冷香: 찬향기), 향설(香雪: 향기눈), 설우(雪友: 눈친구), 옥접(玉蝶: 옥나비), 옥비(玉妃: 옥왕비), 옥면(玉面: 옥얼굴), 옥노(玉奴) 등이다. 늦겨울과 초봄이라는 한 마당에서 만났으니 둘 다 공통적인 아우라를 지니게 마련이다. 특히 옥, 추위, 꽃, 아름다움이 두 미인의 공통분모다.
시인은 이제 시인이 아니라 미인대회 심사위원으로 모습을 바꾼다. 설화와 매화의 아름다움을 판단하는 기준은 두 가지로 충분하다. 가슴, 허리, 엉덩이 둘레를 재는 현대의 미녀 표준과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설화와 매화에게 모두 불만이 없는 심사 표준은 바로 ‘백(白)’과 ‘향(香)’이다. ‘백(白)’은 겨울 대표 설화에게 유리한 표준이고, ‘향(香)’은 봄 대표 매화에게 유리한 표준이다. 두 가지 ‘미(美)’의 표준에 비춰볼 때 설화와 매화 모두 승자인 동시에 패자다. 하얀 매화가 아무리 희다 해도 눈부신 눈꽃에 미칠 수 없다. 하지만 눈이 부실 정도로 하얀 매화에겐 매화가 발산하는 은은한 향기가 없다. ‘백(白)’의 표준으로는 눈꽃이 승자이고, ‘향(香)’의 표준으로는 매화가 승자다. 빙설에 덮인 매화가 아름다운 까닭은 추위를 견디는 절개 때문이 아니라, ‘백(白)’과 ‘향(香)’이라는 두 가지 ‘미(美)’의 표준을 모두 충족하기 때문이다. 도저히 외면할 수 없는 고혹적인 아름다움이다.(사진출처: 撮影部落 汉川清风明月)
한시, 계절의 노래 25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