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가에 쓰다題書櫥/ [明] 양순길楊循吉
화났을 때
책 읽으면 즐겁고
병났을 때
책 읽으면 치유되네
여기에 기대
생명 유지하려고
이리저리 눈앞에다
가득 쌓아두네
當怒讀則喜, 當病讀則痊. 恃此用爲命, 縱橫堆滿前.
좋은 책을 읽으면 지혜가 쌓이는 듯한 기분이 들며 뭔가 상쾌한 감정까지 동반된다. 독서를 통한 정신의 카타르시스는 옛날부터 많은 사람이 언급한 바 있다. 송초 대문호 구양수(歐陽修)는 독서하는 즐거움을 “지극하도다, 천하의 즐거움이여! 종일토록 책상 앞에 앉아 있네(至哉天下樂, 終日在書案)”라고 찬탄했고, 명나라 은사(隱士) 진계유(陳繼儒)는 “인간 세상에서 누리는 맑은 복 가운데(享人間淸福)”, “독서보다 더 나은 것은 없다(未有過于此也)”라고 했다.
서구인들의 찬사도 동양인에 못지 않다. 아나톨 프랑스는 “독서란 영혼의 장쾌한 여행이다”라고 했고, 보카치오는 책 더미 속에서 “어떤 군주도 누릴 수 없고 무엇에도 비할 수 없는 쾌락”을 느낄 수 있다고 했다.
독서를 통한 이런 정신의 정화 작용은 마침내 독서가 인간 심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다는 인식으로 확대되었다. 한나라 유향(劉向)은 “책은 약과 같아서 책을 잘 읽는 사람은 어리석음을 치료할 수 있다(書猶藥也 , 善讀者可以醫愚)”라고 했고, 『진서(陳書)』 「서릉전(徐陵傳 )」에는 서릉이 병을 심하게 앓자 효성이 지극한 그의 아들 서빈(徐份)이 꿇어앉아 향을 피우며 사흘 밤낮 동안 『효경(孝經)』을 낭독하여 기적처럼 아버지의 병을 낫게 했다는 기록이 있다. 심지어 청나라 장조(張潮)는 유명한 의학서 『본초강목(本草綱目)』을 본받아 독서로 병을 치료한다며 『서본초(書本草)』라는 책을 짓기도 했다.
과연 독서로 심신의 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는 여전히 의문이지만, 마음이 병 들면 육체도 병이 든다는 우리 일상의 경험을 돌이켜볼 때, 독서로 유발되는 질병 치유 효과를 완전히 부정할 수도 없을 듯하다. 실제로 독서를 통한 정서 순화, 고통 위로, 트라우마 극복 등의 효과는 의학적으로도 증명되어 현재 ‘비블리오테라피(bibliotherapy: 독시치료)’라는 전문 의료 분야가 점차 활성화되고 있는 상황이다. 흥미롭다. 책 읽기가 보약이나 의료의 역할을 할 수 있다니 말이다.
이 시를 쓴 시인은 자신의 서재 서가에 다소 장난스럽게 위의 시를 써붙였겠지만, 독서치료의 효과가 현대의학에 의해 증명되고 있으니, 그가 벌써 명나라 때 ‘비블리오테라피’의 징험을 일찌감치 예감한 듯하다. 지금 출판계, 서점계에서는 책이 안 팔린다고 울상을 짓고 있다. 그러나 독자들께서 독서치료의 효능을 아신다면 자기 심신의 건강을 위해서도 부지런히 책을 읽어볼 일이다. 누가 알겠는가? 책 만 권을 읽고 나면 혹시 불로장생의 경지에까지 오를 수 있을지…(『독서인간』, 「3부」와 「4부」 참조)
한시, 계절의 노래 2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