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유방대도子猷訪戴圖/ [明] 진련陳璉
흥에 겨워 찾아갔다
흥이 식어 돌아옴에
어찌 꼭 얼굴 봐야
기쁘다 하겠는가
섬계에 달 떨어진
겨울 삼경 깊은 밤에
찬 내에는 바람 가득
산에는 눈이 가득
乘興來尋興盡還, 何須相見始爲歡. 剡溪月落三更夜, 風滿寒流雪滿山.
중국 남조 송(宋) 유의경(劉義慶)의 『세설신어(世說新語)』에 눈 내리는 밤 선비들의 겨울 정취를 잘 보여주는 일화가 실려 있다. 동진(東晉) 산음(山陰: 지금의 浙江省 紹興市) 땅에 왕자유(王子猷)라는 사람이 살았다. 그는 바로 서성(書聖)으로 불리는 왕희지의 아들 왕휘지(王徽之)로 자유(子猷)는 그의 자(字)다. 어느 날 밤 큰 눈이 내리자 그는 흥에 겨워 술을 마시다가 이웃 마을 섬계(剡溪)에 사는 은사(隱士) 대안도(戴安道: 본명은 戴逵, 字가 安道)가 생각났다. 왕자유는 눈 내린 겨울 밤의 흥겨운 기분을 대안도와 함께 즐기기 위해 작은 배를 타고 갔다가 대안도의 집 문앞에 이르러 다시 돌아왔다. 사람들이 까닭을 묻자 “나 자신이 본래 흥에 겨워 갔다가 흥이 식어 돌아왔는데 어찌 꼭 대안도를 만날 필요가 있겠소?”라고 대답했다.
눈 내린 겨울 밤, 자연이 선물한 설경에 한껏 취한 시골 선비의 흥취를 요란하지 않게 묘사했다. 이후 이 이야기는 수많은 문인들이 시로 읊었고, 또 수묵화의 화제(畫題)로도 널리 채택되었다. 원(元) 황공도(黃公道)의 「섬계방대도(剡溪訪戴圖)」, 명(明) 주문정(周文靖)과 하규(夏葵) 등의 「설야방대도(雪夜訪戴圖)」가 그것이다. 심지어 이 소재는 「왕자유설야방대(王子猷雪夜訪戴)」라는 고금곡(古琴曲)으로도 작곡되어 연주되었다.
고독하지만 자유롭게 살아간 남조 명사들의 삶은 평범한 듯 비범하고, 비범한 듯 평범하다. 다수의 현대인은 주위의 이목과 평판에만 온 신경을 집중하며 살아가고 있지 않나? 나 또한 예외가 아니다.(그림: 夏葵의 「雪夜訪戴圖」)
한시, 계절의 노래 25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