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풍의 노래 北風行/ 명明 유기劉基
城外蕭蕭北風起 성 밖에서 휘익 휙 북풍이 일어나니
城上健兒吹落耳 성 위의 용사들 귀가 떨어지는 듯
將軍玉帳貂鼠衣 장군은 막사 안에서 모피 옷 입고
手持酒杯看雪飛 술잔을 잡고 내리는 눈을 바라보네
유기(劉基, 1311~1375)는 절강성 남전(南田) 사람으로 자가 백온(伯溫)인데 흔히 유백온으로 잘 알려져 있다. 주원장을 도와 명을 건국한 인물로 지략이 매우 뛰어나고 문장에도 능했다. 예전에 <주원장>이라는 중국 드라마를 보니 유기가 맹활약하는 모습이 보이던데 궁벽한 고사 등에도 박식한 인물로 그려진 것이 기억에 남는다.
이 시의 제목이 행(行)으로 된 것에 주의해야 한다. 얼핏 보면 7언 절구 같지만 이 시는 당나라 이래의 근체시의 운자나 평측 규범을 따르지 않았다. 행(行)이나 가(歌)는 일종의 악부라고 하는 노래에서 기인한 것인데 실제 나중에는 노래로 부르지는 않지만 대체로 평측에 얽매이지 않고 운자도 중간 중간 바꿀 수가 있어서 최소한의 규칙만 지키면 자신의 감정을 자유롭게 발산하여 시를 쓸 수 있다. 비파행, 장한가처럼 행이나 가라는 제목을 단 시가 호쾌하고 가슴을 후벼 파는 감정 묘사가 가능한 것은 그런 내막이 있다.
이보다 더 자유스러운 것은 고풍이나 고체시라고 해서 운자만 지키면 되고 시구의 길이는 자유롭게 조절하는 시도 있다. 그런데 고시 중에는 7언으로 계속 나가다가 중간에 한 두 구만 긴 구절이 나오는 시가 있는데 고시에 대해 평소 본 것이 적으면 큰 낭패를 본다. 실제로 구두를 잘못 찍거나 무리하게 교감을 한 사례를 더러 본 적이 있다.
한편 형식이 복잡하면 시의 표현이 틀에 박히기 쉽지만 두보를 보면 그 까다로운 형식을 지키느라 오히려 더 특별한 시구가 나오기도 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전에 사람들이 시회를 하고 시를 가지고 서로 주고받는 창수를 하는 것은 단순한 취미 활동이라기보다는 이러한 까다로운 조건 속에서 얼마만큼 경구를 지어내는가 하는 경쟁의 성격이 강하다. 즉 우열을 가려 서열을 정하는 것인데 글로 하는 전쟁이라고 할 수 있다. 예전에 백일전(白日戰)이나 시전(詩戰)이라고 하던 것은 그런 성격을 반영한 것이다.
각설하고, 이 시의 앞 2구의 운자는 상성 운자를 썼고 뒤 2구는 평성 운자이기 때문에 7언 절구가 안 됨을 알 수 있고 중간에 평측도 가장 기본인 2번째 4번째 글자의 평측은 다르고 2번째 6번째 글자는 같다는 규칙도 지키지 않고 있다. 그리고 짝이 되는 구에서 2번째와 4번째는 서로 달라야 하는데 역시 이를 따르지 않은 것을 보면 작가가 자유롭게 시를 쓰고 그 때문에 제목을 북풍행이라 단 것임을 알 수 있다.
유기기 이 시를 언제 썼는지는 모르겠으나 엄청나게 춥고 북풍이 몰아치는 성에서 장군은 그나마 막사 안에서 바람을 피하고 술을 마시며 추위를 녹이고 있는데 병사들은 성에서 파수를 서느라 귀가 떨어져 나갈 지경이라고 말하고 있다.
이 시의 의사가 명시적으로 드러나 있지는 않지만 玉帳이라 표현된 장막 안에서 털이 북실북실한 담비 가죽 옷을 입고 술을 마시며 눈을 바라보는 장군이 멋있다고 이런 시를 짓지는 않았을 것이다. 건장한 군사들도 귀가 빠질 정도로 추운 곳에서 적과 마주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과 그 군사들에 대한 연민이 이 시의 동기가 아닐까. 추위를 감당하는 병사들의 시림이 전해오는 듯한 표현에 작가의 의사가 담겨 있는 것이다.
吹落耳는 ‘바람이 불어와 귀가 떨어지는 것 같다’는 말이다. 요즘 많은 사람들은 실내에서 일하고 이동할 때는 따뜻한 외투가 있지만 실외에서 일하는 사람이 많고 의복이 부실하던 지난 시절에는 이 시구에 공감하는 사람이 많을 듯하다. 아니, 그건 약과라며, 말도 마라며 눈을 부라리거나 손사래를 치면서 자신의 체험을 말해 줄 사람이 지금도 역시 어딘가에는 많을 것이다.
365일 한시 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