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시, 계절의 노래-[宋] 양공원楊公遠 빙매氷梅

빙매氷梅/ [宋] 양공원楊公遠

영롱한 눈에 덮인
꽃송이 어여뻐라

밀랍 꽃받침 붉은 색만
남아 있는 듯 하구나

한 밤 내 맑은 추위에
바람이 얼음 얼려

분명히 그 몸이
수정궁에 있도다
絕憐花帶雪璘瓏, 彷佛惟存蠟蒂紅. 一夜淸寒風結凍, 分明身在水晶宮.

빙설에 덮인 매화. 애처럽고도 어여쁘다. 공교롭게도 낮에는 눈이 내리고 밤에는 찬바람이 불었다. 매화 꽃 위에 쌓인 눈이 꽁꽁 얼어붙어 영롱한 빛을 낸다. 빙설이 덮인 천지사방이 모두 수정궁일 뿐 아니라 얼음을 둘러쓴 각각의 매화 송이도 모두 작은 수정궁이다. 홍매의 꽃받침 부분 붉은색만 겨우 드러나 있지만 꽃송이에 덮인 하얀 빙설에 붉은색이 투과되며 은은하고 아련한 빛을 낸다. 세한삼우(歲寒三友)의 기상과 사군자(四君子)의 절조(節操)가 이보다 더 뚜렷하게 드러나는 그림은 찾아보기 힘들다.

벌써 매화가 피었다는 꽃소식이 드문드문 전해온다. 하지만 아직 꽃샘추위가 남아 있으므로 일찍 핀 매화가 늦은 한파와 꽃샘추위를 이겨낼 수 있을지 걱정이다. 지난해 화엄사 흑매가 막 꽃을 피우던 때 심한 눈보라를 만나 꽃송이가 만발하지 못하고 시름시름 시들고 말았다. 빙설에 덮인 어여쁜 매화는 사람들의 경탄을 자아내지만 그 빙설을 견디는 매화는 말할 수 없는 인고의 나날을 보내야 한다. 세한삼우니 사군자니 하는 수사는 빙설 속 매화가 견디는 고통에 비해 너무나 경박하다. 역사 속 열사(烈士)와 절사(節士) 들의 순절을 뭇 사람들은 경배하지만 그들의 신산(辛酸)한 삶과 부탕도화(赴湯蹈火)한 고난은 피부로 체감하지 못한다.

심지어 모든 올바른 행동과 성실한 삶이 조소와 희화의 대상이 되고 있는 지금 빙설에 덮인 매화는 우리에게 더욱더 서러운 느낌을 전해준다. 빙설을 무릅쓰고도 지키려하는 것이 무엇일까? 하지만 저 가련하고 애달픈 매화는 말이 없다.(사진출처: 圖行天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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