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8회 명나라의 태평을 이룬 천자에게
해외의 사신들 멀리서 찾아오다
大明國太平天子 薄海外遐邇率賓
縹渺祥雲擁紫宸 상서로운 구름 아득하게 궁궐을 감싸고
齊明箕斗瑞星辰 명민(明敏)한 기수(箕宿)와 두수(斗宿) 별자리도 상서롭네.
三千虎拜趨丹陛 삼천의 대신들 황제 앞에 달려가 배알하는데
九五飛龍兆聖人 구오(九五)에 용이 나니 성인이 강림하실 징조일세.
白玉階前紅日曉 백옥 계단 앞에 붉은 해 밝아오고
黃金殿下碧桃春 화음 궁전 아래에는 벽도(碧桃)가 꽃을 피우네.
草萊臣庶無他慶 초야의 신하들과 백성들 별다른 경사 없어
億萬斯年頌舜仁 길이길이 순 임금 같은 어진 성군 칭송하네.
그러니까 벽봉장로는 그 요괴들에게 몸 안의 변신술을 보여 달라고 했다. 원래 그 요괴들은 자기들의 재주가 뛰어나고 솜씨가 교묘하다는 것을 보여주려고 안달이었기 때문에 벽봉장로가 그 말을 하기만을 고대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벽봉장로가 몸 안의 변신술을 보여 달라고 하자 요괴들이 일제히 큰 소리로 대답했다.
“보여주지!”
그 말을 끝내기가 무섭게 그들은 다시 일자로 늘어섰다.
“무슨 변신술을 보여줄까?”
“먼저 늘어나는 것을 보여주고 나서, 줄이는 걸 해 봐라.”
“잘 봐라!”
요괴들이 한 무리로 모였는데, 과연 늘어나 있었다. 그걸 어떻게 아느냐고? 원래 요괴는 셋뿐이었고, 새로 합세한 요괴도 서른세 마리뿐이었다. 그런데 순식간에 요괴 하나가 열 마리로 늘어나고, 열 마리가 백 마리로, 백 마리가 천 마리로, 천 마리가 만 마리로 늘어났던 것이다. 하나의 산봉우리에 이렇게 많은 요괴들이 들어차니 눈에 보이는 거라곤 온통 요괴들뿐이었다. 비환이 깜짝 놀라 말했다.
“사부님, 대체 어디서 또 이런 요괴 떼가 온 걸까요?”
비환보다 학문이 조금 모자란 운곡은 그보다 더 놀랐다.
“저기서 요괴 소굴을 파낸 모양이군요!”
하지만 벽봉장로는 만 마리 요괴가 늘어난 걸 보고도 놀라지 않았다.
“몸에서 더 늘어나게 해 봐라.”
요괴들이 중얼중얼 주문을 외자 손 하나가 열 개로 늘어나고, 열 개가 백 개로, 백 개가 천 개로 늘어났다. 요괴 한 마리에 손이 천 개이니, 만 마리면 대체 그게 몇 개인가! 이야말로 ‘삼십 년 수절한 과부처럼 능숙하기 그지없는[三十年的寡婦, 好守]’ 경우가 아닌가! 그러자 벽봉장로가 말했다.
“또 해 봐라.”
이에 요괴들이 치키차카 주문을 외자 두 개의 눈이 네 개로, 네 개가 다시 여덟 개로 변했다.
“눈을 더 늘어나게 해 봐라.”
“눈이 삐었어? 얼굴 크기가 이것밖에 안 되는데, 어디다가 눈을 더 만들라는 거야?”
“그럼 다른 걸로 늘려봐라!”
요괴들이 도롱도롱 주문을 외자 한 치쯤 되던 코가 한 자로, 한 자에서 한 길로, 한 길에서 열 길로 늘어났다. 요괴 하나가 열 길 길이의 코를 달고 있으니 그야말로 꼴불견이었다.
“그만하면 됐다. 도무지 코 같지가 않아!”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이렇게 길어질 수 있겠어?”
“그럼, 다른 걸 더 늘어나게 해 봐라.”
그러자 요괴들이 지지배배 주문을 외더니 잠시 후 입이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셋에서 넷으로, 넷에서 다섯으로, 다섯에서 여섯으로, 여섯에서 일곱으로, 일곱에서 여덟으로, 여덟에서 아홉으로, 아홉에서 열로 늘어났다.
“무슨 입을 더한 거냐?”
“전부 장의(張儀)와 소진(蘇秦)의 입을 더했지.”
“왜 그 사람들의 입을 더한 거지?”
“그 사람들의 입이 아니라면 이렇게 많을 수 있겠어?”
“다른 걸 더해 봐라.”
요괴들이 츳츳찟찟 주문을 외니 잠시 후 귀가 하나에서 둘로, 둘에서 셋으로, 셋에서 넷으로, 넷에서 다섯으로, 다섯에서 여섯으로, 여섯에서 일곱으로, 일곱에서 여덟으로, 여덟에서 아홉으로, 아홉에서 열로 늘어났다.
“더 붙일 수 있느냐?”
“줄이라고 해도 시키는 대로 하지 않을 거야!”
“붙여 늘릴 줄만 알지 줄일 줄은 모르는 모양이구나.”
“다 할 수 있어! 붙일 줄을 아는데 줄이는 걸 못할 줄 알아?”
“그럼 어디 줄여봐라.”
요괴들은 일제히 주문을 외더니 원래 모습으로 돌아왔다. 원래 있던 세 마리 요괴와 새로 더해진 서른세 마리 요괴들이었다. 요괴들은 각각 한 쌍의 손과 한 쌍의 눈, 하나의 코, 하나의 입, 한 쌍의 귀를 갖고 있었다.
“더 줄여봐라.”
요괴들이 또 주문을 외었다. 그러자 잠시 후 두 손이 없어져 버렸다.
“손이 없으니 북 두드릴 일 없겠구먼.”
잠시 후 두 눈이 없어져 버렸다.
“좋구나! 아예 보이지 않으니 깔끔하겠어.”
잠시 후 코가 없어져 버렸다.
“좋구나! 코가 없으니 더러운 냄새를 맡지 않아도 되겠구나.”
잠시 후 입이 없어져 버렸다.
“좋아! 잔소리 하지 않고 조용히 지내겠구나.”
잠시 후 두 귀가 없어져 버렸다.
“좋구나! 들리지 않으니 번민에 빠질 일도 없겠구나.”
잠시 후 머리가 없어져 버렸다.
“좋아! 열나고 머리 아플 일 없겠구나.”
잠시 후 두 다리가 없어져 버렸다.
“좋구나! 정신없이 아무데나 다닐 일이 없어졌구나.”
잠시 후 요괴들은 원래 모습으로 돌아오려 했지만 그럴 수가 없게 되었다.
“이런! 내 손이 어디 있지?”
“이런! 내 다리!”
“이런! 내 머리!”
“이런! 내 눈!”
“이런! 내 코가 어디 있지?”
“이런! 내 입!”
“이런! 내 귀”
이렇게 이놈 저놈, 동서남북, 좌우에서 떠들어 대고 있을 때, 벽봉장로는 아무 설명도 하지 않고 손가락을 비비며 주문을 외었다. 알고 보니 그의 말은 모두 요괴들을 유인하여 머리를 없애고 손발을 잃게 만드는 것이었다. 요괴들은 평상시 마음대로 오갈 수 있었지만, 뜻밖에도 벽봉장로가 금제의 주문을 외자 영원히 본래 모습으로 돌아오지 못하게 되어 버린 것이었다.
요괴들이 머리가 없어져서 사람 꼴이 아닌 것은 그렇다 치고, 손이 없으니 뭘 두드릴 수도 없고, 발이 없으니 서 있을 수도 없어서 바람에 날리는 버들 솜처럼 이리저리 굴러다닐 수밖에 없었다. 벽봉장로가 주문을 더 세게 읊조리면 요괴들은 더욱 크게 비명을 질렀고, 손을 더 세게 비비면 요괴들은 더욱 심하게 굴렀다. 갈수록 비명소리도 커지고 심하게 구르는 그들의 모습을 보자 벽봉장로는 이제 마무리를 지어야 되겠다고 생각했다. 그가 구환석장을 들어 요괴들의 머리를 툭툭 치자 요괴들은 모두 본래 모습으로 돌아와 그에게 복종했다. 그러자 벽봉장로가 소리쳤다.
“비환아!”
“예!”
“운곡아!”
“예!”
“둘이 가서 보고 오너라. 저 요괴들이 본래 무슨 물건이었더냐?”
비환과 운곡이 다가가 살펴보자 벽봉장로가 물었다.
“그래 본래 모습을 보았느냐?”
“예!”
“숫자도 제대로 세어보았느냐?”
“예!”
“그래 무슨 물건이더냐?”
비환이 말했다.
“하나는 승려의 신[禪鞋] 한 짝이었습니다.”
운곡이 말했다.
“하나는 야자였습니다.”
비환이 또 말했다.
“하나는 푸른 유리였습니다.”
운곡이 말했다.
“나머지는 모두 반짝반짝 빛나는 진주였습니다.”
“이리 가져와 봐라.”
비환이 승려의 신을 가져와서 물었다.
“이게 바로 사선정일까요?”
“맞다.”
“이건 무슨 신이기에 이렇게 넓고 큰 신통력을 갖게 된 겁니까?”
“그건 보통 신이 아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허, 잊어 버렸나보구나. 보타산에서 북해용왕이 준 게 무엇이더냐?”
“아하! 알고 보니 무등등선리(無等等禪履)였군요!”
“맞다.”
운곡이 야자를 들고 와서 물었다.
“이게 바로 호로정입니까?”
“맞다.”
“이건 무슨 야자이기에 이렇게 넓고 큰 신통력을 갖게 된 겁니까?”
“그건 보통 야자가 아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허, 잊어 버렸나 보구나. 보타산에서 남해용왕이 준 게 무엇이더냐?”
“아하! 알고 보니 바라허유가(波羅許由迦)였군요!”
“맞다.”
비호나이 또 그 푸른 유리를 들고 와서 물었다.
“이게 바로 압단정입니까?”
“맞다.”
“이건 무슨 유리이기에 이렇게 넓고 큰 신통력을 갖게 된 겁니까?”
“그건 보통 유리가 아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허, 잊어 버렸나보구나. 보타산에서 서해용왕이 준 게 무엇이더냐?”
“아하! 알고 보니 금시폐유리(金翅吠琉璃)였군요!”
“맞다.”
운곡이 또 그 진주들을 갖고 와서 물었다.
“이것들이 바로 천강정입니까?”
“맞다.”
“이건 무슨 진주이기에 이렇게 넓고 큰 신통력을 갖게 된 겁니까?”
“그건 보통 진주가 아니다.”
“무슨 말씀이신지요?”
“허허, 잊어 버렸나보구나. 보타산에서 동해용왕이 준 게 무엇이더냐?”
“아하! 알고 보니 서른세 개 동정옥(東井玉)을 꿰어서 만든 팔찌였군요!”
“맞다.”
결국 네 곳에 살던 요괴들은 모두 사해의 용왕들이 바친 네 가지 보물이었던 것이다. 원래 벽봉장로가 그들에게 남선부주에서 명을 기다리라고 해 놓았기 때문에 오늘 만나서 각자 본래 모습으로 돌아간 것이었다. 나중에 무등등선혜는 한 켤레로 삼아 신었고, 야자는 쪼개서 바리때를 만들었으니 벽봉장로의 자금 바리때가 바로 그것이다. 푸른 유리는 몸에 지니고 다니는 재물이 되었고, 서른세 개의 진주는 하나로 꿰어서 손목에 찼다.
한편 오대산 부근의 백성들은 이런 사정을 모른 채, 머리는 깎고 수염은 기른 벽봉장로의 모습이 조금 이상해서 모두들 마귀를 굴복시키는 훌륭한 스님이 이렇게 이상하게 생겼다며 쑤군거렸다. 그 소문은 한 사람에게서 열 명에게, 열 명에게서 백 명에게로, 백 명에게서 천 명에게로, 천 명에게서 만 명으로 퍼졌고, 이웃에서 온 마을로, 마을에서 더 큰 고을로, 거기서 다시 온 나라로, 나아가 온 천하에 퍼졌다. 그러자 동서남북 사방팔방에서 수많은 이들이 제자가 되기 위해 강설을 듣기 위해 찾아왔다. 벽봉장로는 사계절을 가리지 않고 아침 일찍 일어나 저녁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한시도 쉬지 않고 설법하고 불경을 강설했다. 이때는 마침 영락제(永樂帝)가 등극하여 천하를 다스리던 때라, 성인이 나타나니 만물이 우러르는 시절이었다. 〈성인이 나오셨네[聖人出]〉라는 노래가 이를 증명한다.
聖人出 성인이 나오셔서
格玄穹 하늘을 감동시켰네.
祥雲護 상서로운 구림이 보호하고
甘露濃 짙은 감로가 내렸다네.
海無波 바다에는 파도가 일지 않고
山不重 산도 무겁지 않았다네.
人文茂 인문이 무성히 피어나고
年穀豊 곡식도 풍년이 들었네.
聲敎洽 가르침의 말씀 널리 퍼져
車書同 문물과 제도가 통일되었지.
雙雙日月照重瞳 해와 달이 쌍쌍이 겹눈[重瞳]을 비추네.
但見聖人無爲 성인이 무위의 다스림을 펼치며
時乘六龍 때맞춰 육룡을 타고 다니며
唐虞盛際比屋封 요순의 태평성대처럼 백성들이 등용하니
臣願從君兮佐下風 이 몸은 군왕을 따라 아래에서 보좌하고 싶나이다!
이 황제는 등극하고 나자 현명한 이들을 두루 찾아 등용하고 백성들을 자식처럼 아끼면서, 아침 일찍 조정에 나아가 저녁 늦게 잠자리에 들면서 정치에 힘썼다. 매일 새벽닭이 울면 대전에 오르니, 수많은 문무백관들이 공손하게 각자의 자리에서 대기했다. 〈아침 조회[早朝]〉라는 시가 이를 증명한다.
鷄鳴閶闔曉雲開 경사 닭이 우니 새벽 구름 걷히고
遙聽宮中響若雷 멀리 궁중에도 우렛소리처럼 울리네.
玉鼎浮香和霧散 옥 향로엔 향기 피어나고 따스한 안개 흩어지니
翠華飛杖自天來 황제의 수레 장식 하늘에서 내려오지.
仰叨薄祿知何補 미천한 벼슬이나마 받았으니 어찌 보좌할까?
欲答賡歌愧不才 화시(和詩)로 답하고 싶어도 못난 재주 부끄럽기만 하네.
却憶行宮春合處 돌이켜보니 봄날 행궁에서
蓬山仙子許追陪 봉래산 신선이 자리 함께 하도록 허락해 주셨지.
영락제가 구중궁궐 대전에 앉아 있을 때 정편(淨鞭)이 세 번 울리면서 문무백관들이 양쪽으로 나뉘어 가지런히 섰다.
왼쪽에 서 있는 이들은 모두 문연각(文淵閣)과 동각(東閣), 중극전(中極殿), 건극전(建極殿), 문화전(文華殿), 무영전(武英殿) 등의 내각(內閣)에 소속된 소사(少師)와 소보(少保), 소부(少傅) 등의 재상들과 첨사부(詹事府), 한림원(翰林院) 등의 춘방(春坊)과 유덕(諭德), 세마(洗馬), 시강(侍講), 시독(侍讀) 등의 학사(學士)들이었다. 또 이부(吏部)와 호부(戶部), 예부(禮部), 병부(兵部), 형부(刑部), 공부(工部)까지 육부의 상서(尙書)들이 각 부에 소속된 부서의 담당자들을 이끌고 서 있었고, 도찰원(都察院)과 통정사(通政司), 대리시(大理寺)의 지위 높은 대구경(大九卿)들이 있었다. 그리고 태상시(太常寺), 광록시(光祿寺), 국자감(國子監), 응천부(應天府), 태복시(太僕寺), 홍려시(鴻臚寺), 행인사(行人司), 흠천감(欽天監), 태의원(太醫院)의 소구경(小九卿)들과 십삼도(十三道)의 어사(御史)들, 육과(六科)의 급사중(給事中), 그리고 상강양현(上江兩縣)의 잡다한 업무를 관할하는 관청의 책임자들이 있었다. 이렇게 고상하고 대단한 재능과 품위를 가진 모든 신하들이 무척 기꺼운 모습으로 서 있었으니, 내각의 원로대신[閣老] 이(李) 아무개의 시가 이를 증명한다.
手扶日轂志經綸 천자의 수레 보필하며 천하 경륜의 뜻을 품으니
天下安危繫此身 천하의 안위가 이 몸에게 달렸음이라.
再見伊周新事業 이윤(伊尹)과 주공(周公)이 다시 나타나 새로운 사업 펼치니
却卑管晏舊君臣 관중(管仲)과 안영(晏嬰) 시대의 옛 군주와 신하들 오히려 우습다네.
巍巍黃閣群公表 장엄한 황각(黃閣)의 여러 대신들 상소를 올리고
皞皞蒼生萬戶春 드넓은 천하 백성들 집집마다 생기 넘치네,
自是皇風底淸穆 이로부터 황제의 교화가 미쳐 천하가 맑고 따스해지니
免令憂國鬢如銀 나라 걱정으로 귀밑머리 은처럼 하얗게 셀 일 없다네.
오른쪽 반열에는 모두 공후(公候)와 부마(駙馬), 백(伯), 오군대도독(五軍大都督), 경영융정(京營戎政), 금병홍회(禁兵紅盔)와 지휘(指揮), 천호(千戶)와 백호(百戶) 등이 서 있었다. 이들은 모두 위풍당당하고 살벌한 기세를 풍겼으니, 향시(鄕試)의 일등인 회원(會元)으로 급제하여 추밀사(樞密使)를 지낸 당(唐) 아무개의 시가 이를 증명한다.
職任西樞着武功 서추(西樞)에 직책을 맡아 무공을 세우니
龍韜豹略熟胸中 용과 표범의 책략 마음속에 환히 알았네.
身趨九陛忠心壯 황궁에 나아갈 땐 충심이 굳세었고
威肅三軍號令雄 위엄으로 삼군을 다스릴 땐 호령 소리 웅장했지.
刁斗夜鳴關塞月 밤중에 조두(刁斗) 울릴 때 변방의 달은 차가웠고
牙旗秋拂海天風 가을바람에 깃발 나부낄 때 바다에는 바람이 몰아쳤지.
聖朝眷顧恩非小 성스러운 왕조에서 보살펴주신 은혜 작지 않으니
千古山河誓始終 천고 강산과 더불어 평생을 함께 하길 맹세하노라!
황제가 명을 전해 물었다.
“문무 관원들이 모두 모였는가?”
그러자 문무 반원을 인솔하는 압반관(押班官)이 나아가 아뢰었다.
“문관도 빠진 사람이 없고 무장들도 마찬가지인데, 이미 서열에 따라 정렬해 있사옵니다.”
“상주할 일이 있으면 상주하고, 아무 일 없으면 그대로 퇴정하라.”
그 말이 끝나기도 전에 오문(午門) 안쪽에 무릎을 꿇고 있는 노인들의 모습이 보였다. 위아래가 이어진 장삼인 심의(深衣)를 입고 머리에 폭건(幅巾)을 두른 그들은 긴 눈썹에 허연 머리를 하고 자죽(紫竹) 지팡이를 든 채 황니혜(黃泥鞋)를 신고 있었다. 홍려시경이 큰 소리로 아뢰었다.
“외성(外省)과 외부(外府), 외현(外縣)의 원로들이 알현하러 왔사옵니다.”
“무슨 일인가? 상소문을 올릴 일이 있는가?”
그러자 원로들이 대답했다.
“각자 상소문을 준비했사옵니다.”
“무슨 내용인가?”
“모두 상서로운 일에 대해 보고하는 상소문이옵니다.”
“무슨 상서로운 일인가?”
“황상께서 등극하실 때 때맞춰 비가 내렸고 오곡이 풍작을 이루어 백성들이 편안했기 때문에 감로(甘露)가 내리고 예천(醴泉)이 나왔으며 자줏빛 지초(芝草)가 피고 가화(嘉禾)의 이삭이 나타났사옵니다. 소인들이 바치는 것은 바로 감로와 예천, 자줏빛 지초, 가화의 상서로운 징조에 대한 것들이옵니다.”
“어떤 것이 감로에 대한 상소문인가?”
그러자 무리 가운데 한 원로가 말했다.
“소인은 노주부(潞州府)의 원로인데, 감로에 대한 상소문을 올렸사옵니다.”
“올리도록 하라.
노주의 원로는 두 손으로 상소문을 올리고 나서 감로를 바쳤다. 명을 전하는 이가 황제에게 전하자 문무백관들이 만세삼창을 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경하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良霄靈液降天衢 아름다운 밤 신령한 물 하늘에서 내려오니
和氣融融溢二儀 온화한 기운 넘실넘실 천지간에 가득 차네.
瑞應昌期濃似酒 번창한 세월 상서롭게 응하니 술처럼 진하고
香涵仁澤美如飴 향기 속에 어진 은택 담고 엿처럼 달콤하다네.
霧滾寒透金莖柱 이슬 속에 굴러 차가운 기운 구리 기둥에 스미나니
錯落光疑玉樹枝 반짝이는 빛은 옥수의 가지인가 의심스럽네.
朝野儒臣多贊詠 조야의 신하들 저마다 칭송하며
萬年書賀拜丹墀 영원토록 축하의 글 적어 황제께 바치지.
“예천에 관한 상소문은 어떤 것인가?”
그러자 무리 가운데 한 원로가 말했다.
“소인은 예천현(醴泉縣)의 원로인데, 예천에 대한 상소문을 올렸사옵니다.”
“올리도록 하라.
노주의 원로는 두 손으로 상소문을 올리고 나서 예천의 샘물을 바쳤다. 명을 전하는 이가 황제에게 전하자 문무백관들이 만세삼창을 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경하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太平嘉瑞溢坤元 태평성대의 상서로움 대지에 넘치나니
甘醴流來豈偶然 달콤한 예천의 물 나온 것이 어찌 우연이랴?
麯櫱香浮金井水 술 향기는 금정(金井)의 물에 떠 있고
葡萄色映玉壺天 포도 같은 색깔 신선세계를 비추지.
瓢嘗解駐顔齡遠 표주박으로 떠서 먹으면 늙지 않게 해 주고
杯飮能敎痼疾痊 잔에 따라 마시면 고질병도 고쳐준다네.
枯朽從今盡榮茂 시든 것들도 이제부턴 모두 무성해지리니
皇圖帝業萬斯年 황제의 기업 영원히 태평성대를 누리리라!
“자줏빛 지초에 관한 상소문은 어떤 것인가?”
그러자 무리 가운데 한 원로가 말했다.
“소인은 향산현(香山縣)의 원로인데, 자줏빛 지초에 대한 상소문을 올렸사옵니다.”
“올리도록 하라.
노주의 원로는 두 손으로 상소문을 올리고 나서 자줏빛 지초를 바쳤다. 명을 전하는 이가 황제에게 전하자 문무백관들이 만세삼창을 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경하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氣禀中和世道亨 타고난 기품 온화하고 세상살이 형통하니
人間一旦紫芝生 인간 세상에 어느 날 아침 자줏빛 지초 피어났네.
謝庭昔見呈三秀 사안(謝安)의 집에 빼어난 모습 드러낸 적 있고
漢殿曾聞串九莖 한나라 궁전에도 아홉 줄기가 피어났다지.
翠羽層層從地産 푸른 깃털처럼 층층이 땅에서 피어나고
朱柯燁燁自天成 자줏빛 줄기 아름답게 하늘에서 생겨나지.
療饑却憶龐眉叟 배고픔 달래니 눈썹 희끄무레한 늙은이 떠오르나니
深隱商山避姓名 상산(商山) 깊숙이 은거하여 이름조차 알려지지 않았다네.
“가화 이삭에 관한 상소문은 어떤 것인가?”
그러자 무리 가운데 한 원로가 말했다.
“소인은 가화현(嘉禾縣)의 원로인데, 가화 이삭에 대한 상소문을 올렸사옵니다.”
“올리도록 하라.
노주의 원로는 두 손으로 상소문을 올리고 나서 가화의 이삭를 바쳤다. 명을 전하는 이가 황제에게 전하자 문무백관들이 만세삼창을 하며 머리를 조아리고 경하했다. 내각의 원로대신 구(丘) 아무개의 시가 이를 증명한다.
靈稼生來豈偶然 신령한 벼이삭 피어남이 어찌 우연이랴?
嘉禾有驗吐芳妍 아름다운 벼이삭 영험하여 고운 자태 뿜어내네.
仁風毓秀靑連野 어진 교화로 길러내니 들판에 푸름 가득하고
甘露涵香綠滿田 향기 머금은 감로 온 논을 초록으로 물들였네.
九穗連莖鐘瑞氣 아홉 이삭 줄기마다 이어져 상서로운 기운 모이고
三苗合穎兆豊年 세 싹에 이삭 함께 나니 풍년의 징조일세.
文人墨客形歌詠 시인과 글쟁이들 노래로 형용하고
寫入堯天擊壤篇 요순시대 〈격양가(擊攘歌)〉 시집에 적어 넣네.
이 네 가지 상서로운 물건이 차례로 바쳐지자 황제는 무척 기뻐하며 즉시 명을 내려 원로들에게 상을 내리고 고향으로 돌아갈 여비를 주게 했다.
그때 또 오문 안쪽에 특이한 모습을 한 이들이 무릎을 꿇고 있었다. 그들은 누구인가? 알고 보니 그들은 고상한 중국 사람들이 아니라 대충 사람의 형상을 한 이들일 뿐이었다. 그들은 하얀 털모자를 쓰고, 옷깃을 왼쪽으로 여민 옷을 입고, 들소가죽으로 만든 장화를 신은 채 뭔가 알아들을 수 없는 이상한 말을 지껄이고 있었다. 홍려시경이 보고했다.
“외국에서 서양인들이 조공을 바치러 왔사옵니다.”
“그들도 바칠 문서를 갖고 왔는가?”
그러자 각 나라의 통역사들이 말했다.
“각자 문서를 준비했사옵니다.”
“왜 조공을 바치러 왔는가?”
“하늘이 세우신 이 왕조의 황제께서 등극하실 때 하늘엔 거센 바람과 비가 그치고 바다엔 파도가 일지 않자, 여러 작은 나라들이 중국 땅에 성인이 나타나 다스리고 계시다는 것을 알았다고 하옵니다. 그래서 각기 토산물을 가져와 삼가 경하하며 바치고자 한다 하옵니다.”
“무슨 물건을 가져왔는가?”
“푸른 사자와 하얀 코끼리, 훌륭한 말, 산양[羱羊], 앵무새, 공작을 가져왔는데, 모두 대전 계단 앞에 놓아두었사옵니다.”
“한 나라씩 순서대로 바치도록 하라.”
그러자 맨 첫 번째에 있던 서남쪽 하시무스[哈失謨斯] 왕국에서 파견된 관리가 문서를 올리고, 한 쌍의 푸른 사자를 바쳤다. 그 푸른 사자의 모습은 이러했다.
金毛玉爪日懸星 금빛 터럭 옥 같은 발톱 해와 별처럼 빛나니
群獸聞知盡駭驚 뭇 짐승들 소문 듣고 모두 놀라네.
怒向熊羆威凛凛 큰 곰 향해 노호하면 위세도 오싹하고
雄驅虎豹氣英英 호랑이 표범 쫓는 기상도 빼어나구나.
已知西國常馴養 서역에서 길들여 기른다는 건 알고 있었지만
今獻中華賀太平 이제 중국에 바치며 태평성대 축하하네.
却羡文殊能爾服 문수보살께서 너를 굴복시켜
穩騎駕馭下天京 의젓하게 타고 하늘나라에서 내려왔다지.
그 다음은 남쪽의 캄보디아[眞臘, Cambodia] 왕국에서 파견된 관리가 나아가 문서를 올리고, 네 마리의 하얀 코끼리를 바쳤다. 그 코끼리의 모습은 이러했다.
慣從調習性還馴 익숙하게 조련되어 성품도 온순하지만
長鼻高形出獸倫 긴 코에 커다란 키는 짐승들 가운데 으뜸이라네.
交趾獻來爲異物 교지국(交趾國)에서 바쳐서 신기한 동물로 여겨졌고
歷山耕破總爲春 역산(歷山)의 밭을 다 갈고도 늘 힘이 넘쳤지.
踏靑出野蹄如鐵 풀밭 밟고 들로 나서니 발굽은 무쇠 같고
脫白埋沙齒似銀 죽어서 모래에 묻히면 상아가 은처럼 하얗지.
怒目祿山終不拜 성난 눈으로 안녹산 노려보며 끝내 절하지 않았으니
誰知守義似仁人 뉘라서 알랴, 인의를 지킴이 어진 사람 같음을!
세 번째로 서북쪽 사마르칸트(撒馬兒罕, Samarqand) 왕국에서 파견된 관리가 나아가 문서를 올리고, 열네 필의 자류마(紫騮馬)를 바쳤다. 그 자류마의 모습은 이러했다.
俠客重周遊 협객은 떠돌아다니기 좋아해서
金鞭控紫騮 황금 채찍으로 자류마를 모네.
蛇弓白羽箭 뱀처럼 굽은 활과 하얀 깃털 달린 화살
鶴轡赤茸鞦 하얀 고삐에 붉은 안장
發蹟來南海 뜻을 이루고 출세하여 남해로 와서
長鳴向北州 북쪽 땅 향해 길게 울어 대네.
匈奴今未滅 흉노가 지금 아직 없어지지 않았으니
畵地取封侯 공 세워 제후로 봉해질 날 손꼽아 기다리네.
네 번째로 북방의 타타르[韃靼, Tatar] 왕국에서 파견된 관리가 나아가 문서를 올리고, 스무 마리의 산양을 바쳤다. 그 산양은 생김새가 남방의 물소[吳牛] 같았는데, 뿔이 여섯 자 다섯 치나 되었고 입 주위에 수염이 덥수룩했다. 그야말로 이런 모습이었다.
長髯主簿有佳名 수염 긴 주부(主簿)는 명성도 높은데
羵首柔毛似雪明 괴물 같은 머리에 부드러운 꼬리는 눈처럼 환하구나.
牽引駕車如衛玠 수레를 끄는 힘은 위개(衛玠) 같은데
叱敎起石羡初平 돌을 보고 소리쳐 일어나게 하니 황초평(黃初平)이 부럽구나.
出都不失成君義 도읍을 나가서도 군주에 대한 의리 다하려는 마음 잃지 않고
跪乳能知報母情 무릎 꿇고 젖을 먹으니 어미의 정을 알았지.
千載匈奴多牧養 천년 동안 흉노족이 많이 길렀지만
堅持苦節漢蘇卿 힘겹게 절개 지킨 한나라 때의 소무(蘇武)도 있었다네!
다섯 번째로 동남쪽 유구[琉球, Ryukyu] 왕국에서 파견된 관리가 나아가 문서를 올리고 하얀 앵무새 한 쌍을 바쳤다. 그 앵무새의 모습은 이러했다.
對對含幽思 쌍쌍이 그리움 품은 채
聰明憶別離 총명하게도 이별을 기억하는구나.
素衿渾短盡 하얀 옷깃 죄다 짧게 잘리고도
紅嘴漫多知 붉은 부리는 쓸데없이 아는 게 많지.
喜有開籠日 기쁘게도 조롱 열리는 날이 되면
寧慙宿舊枝 옛 가지 어찌 부끄러워하랴?
自應憐白雪 하얀 눈이야 당연히 사랑스럽지만
更復羽毛奇 어찌 하얀 깃털보다 아름다우랴!
여섯 번째로 북쪽 노아한도사(奴兒罕都司)에서 파견된 관리가 나아가 문서를 올리고 한 쌍의 공작을 바쳤다. 그 공작의 모습은 이러했다.
翠羽紅冠錦作衣 푸른 깃털 붉은 볏에 비단옷 입고
托身玄圃與瑤池 현포(玄圃)와 요지(瑤池)에 몸을 맡겼지.
越南産出毰毸美 월남 땅에서는 아름답게 펼친 날개 지니고 태어나
隴右飛來黼黻奇 농우(隴右)로 날아오니 보불(黼黻)이 신기하네.
荳蔻圖前頻起舞 두구(荳蔻) 그림 앞에서 종종 춤을 추었고
牡丹花下久棲遲 모란꽃 아래에 오래 머물곤 했지.
金屛一箭曾穿處 황금 병풍에 깃털 꽂으면
贏得婚聯喜溢眉 혼인을 하게 되어 얼굴에 기쁨이 넘치지.
어쨌든 조공을 바친 이들은 모두 성명이 있는 번진(藩鎭)의 왕들이었고, 그 외에 성명조차 없는 무리들이 금이며 진주, 보배, 암라(庵蘿), 바라(波羅), 훈살(熏薩), 유리, 가몽교포(加蒙絞布), 독봉복록(獨蜂福祿), 긴정두라(緊鞓兜羅), 호박(琥珀), 산호, 차거(車渠), 마노, 새란(賽蘭), 비취, 들쥐[砂鼠], 귀통(龜筒), 그리고 키가 세 자밖에 되지 않는 상등의 과하마(果下馬)와 꼬리가 여덟 개 달린 팔초어(八梢魚), 여덟 개의 다리를 가진 부호어(浮胡魚), 코는 코끼리 코처럼 생겼고 네 개의 다리가 달린 건동어(建同魚), 꼬리 길이가 무려 한 길이나 되는 장미계(長尾鷄), 개미 알을 쪄서 만든 의자염(蟻子鹽), 불상 모양으로 생긴 보살석(菩薩石), 물속에서도 세차게 타는 맹화유(猛火油), 오래된 것은 수령(樹齡)이 천년이 넘는 만세조(萬歲棗), 서른세 곳 하늘까지 높이 올라가는 독누향(篤耨香), 그 빛이 칠십이 층 땅속까지 비치는 커다란 노을빛 화주(火珠), 나무에서 방울방울 떨어지는 수액이 바로 꿀인 가필타(歌畢佗) 나무, 나무에서 만들어지고 향기가 뿜어져 사람의 몸에도 그대로 스며드는 임리금안향(淋灕金顔香) 등이 있었다. 이런 진상품들에 대해서는 더 이상 언급하지 않겠다.
다만 문무백관들은 만세삼창을 하고 머리를 조아려 축하하며 모두 칭송했다.
“원근(遠近)의 나라들이 일체가 되어 모두들 우리 황제께 귀의하는구먼!”
황제는 그걸 보고 무척 기뻐하며 즉시 명을 내려 네 군데 양관(洋館)에서 서양인들을 대접하게 하고, 광록시에서 대대적으로 연회를 마련해 여러 신하들을 대접하게 했다. 그리고 연회가 끝나자 관리들의 지위에 따라 다양한 상을 내렸다. 이야말로 이런 격이었다.
宴罷蓬萊酒一卮 잔치 끝나 신선의 술 한 잔 마시는데
御爐香透侍臣衣 황궁의 향 연기 신하들의 옷에 스미네.
歸時不辨來時路 돌아갈 때는 왔던 길 찾지 못하고
一任顚東復倒西 그저 이리 엎어지고 저리 자빠질 뿐이지.
어쨌든 이튿날 황제가 일찍 일어나 궁궐 대전에 오르자 문무백관들이 황은(皇恩)에 감사했다. 감사 인사가 끝나자 황제가 관리를 통해 명을 전했다.
“문무백관들 가운데 보고할 일이 있는 이는 나와서 보고하라. 별 일 없다면 이만 조회를 파하겠노라!”
그러자 홍려시경이 크게 외쳤다.
“문무백관들은 자리에서 일어나시오. 조회를 파합니다!”
이에 문무백관들이 일제히 “만세! 만세! 만만세!”하고 외치고 물러났다. 그런데 개중에 조회복을 단정하게 차려입고 상아로 만든 홀(笏)을 든 늙은 신하가 “만세!”를 외치면서 혼자 계단 앞에 무릎을 꿇은 채 떠나려 하지 않고 있었다.
이 늙은 신하의 성명이며 관적(貫籍)은 무엇이며, 계단 앞에 꿇어 앉아 무슨 생각을 하며 무슨 말을 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