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7회 구환석장으로 위세를 펼치니
사방의 요괴와 정령들이 모두 없어지다
九環錫杖施威能 四路妖精皆掃盡
巖下飄然一老僧 바위 아래 표연히 나타난 노승
曾求佛法禮南能 불법을 구하려고 혜능(惠能)을 모셨네.
論持自許窺三昧 강론할 때에는 삼매(三昧)를 엿본다고 자처했으나
入聖無梯出小乘 성현이 되는 길 없어 소승(小乘)으로 나왔다네.
高閣松風傳夜磬 높은 누각엔 솔숲의 바람에 밤중의 풍경소리 전해지고
石牀花雨落寒燈 돌 침상에 꽃비 내려 차가운 등불 위로 떨어지네.
全憑錫仗連環響 오로지 석장의 고리만 울려서
掃蕩妖氛誦法楞 요괴를 소탕하고 불경을 암송했네.
그러니까 그 요괴가 얼마나 사납냐는 벽봉장로의 질문에 토지신이 이렇게 대답했다.
“그놈만 사나울 뿐 아니라, 온 집안의 형제들이 전부 무사들입니다.”
“그 형제라는 놈들은 어떤 놈들이냐?”
“그놈 집안에는 네 개의 지파(支派)가 있는데 모두 요괴들입니다. 그런데 제일 큰집이 제법 위세가 있어서, 늙은 놈 밑에 서른두 명의 아들이 있습니다. 그놈들도 모두 신통력이 광대하고 무궁한 변신술을 익히고 있습지요. 나머지 세 집은 모두 자식이 하나뿐입니다.”
“성이 무엇이더냐?”
“그건 저도 모릅니다.”
“이름은 있겠지?”
“그것도 모릅니다.”
“성도 이름도 없다면 그놈을 뭐라고 부르느냐?”
“큰집은 인원이 많아서 천강정(天罡精)이라 하고, 둘째 집은 압단정(鴨蛋精), 셋째 집은 호로정(葫蘆精), 넷째 집은 사선정(蛇船精)이라고 합니다.”
“이 산에 있는 놈들은 어느 지파이냐?”
“넷째인 사선정인데, 아홉 굽이 계곡 상류에 살고 있습니다.”
“나머지 세 지파는 모두 어디에 있느냐?”
“셋째는 나부산(羅浮山)에, 둘째는 아미산(峨眉山)에, 첫째는 오대산(五臺山)에 살고 있습니다.”
벽봉장로는 그 요괴의 근본에 대해 알아본 후 여러 신들을 본래 자리로 돌려보냈다.
그리고 벽봉장로와 두 사제(師弟)는 새벽에 길을 떠나 저녁이면 노숙을 하면서 봉우리와 동굴, 절과 사당을 거치면서 승려를 만나면 불경에 대해 강론하고, 중생을 만나면 몇 마디 게송(偈頌)을 읊어주고, 포악한 이를 만나면 불문으로 인도하고, 자비로운 이를 만나면 극락에 오르게 해 주고, 용을 만나면 길들여 순하게 만들고, 호랑이를 만나면 어질게 인도하고, 학을 만나면 마음껏 춤추게 하고, 새들을 만나면 마음껏 물을 마시고 모이를 쪼게 해 주었다. 그러는 사이에 어느덧 시간이 흘렀다. 하루는 제운곡(齊雲谷)의 제운정(齊雲亭)에 앉아 있는데, 정자 바깥에 칠언절구(七言絶句)가 새겨진 비석이 하나 서 있었다.
“저 비석의 시는 누가 지은 것이냐?”
비환이 가서 보고 대답했다.
“주문공(朱文公)이 쓴 것입니다.”
“그 시를 소리 내서 읽어봐라.”
비환이 황급히 비석 앞으로 다가가 읽었다.
九曲將窮眼豁然 아홉 굽이 계곡 끝나니 눈앞이 훤해지고
桑麻雨露見平川 비와 이슬에 젖은 뽕밭 삼밭 너머로 평천(平川)이 보이네.
漁郞更覓桃源路 어부가 다시 도화원(桃花源) 가는 길 찾는다면
除是人間別有天 이 인간 세계 밖에 별천지가 있다는 말인가?
그런데 비환이 마지막 ‘천(天)’ 자를 읽었을 때 갑자기 허공에 불빛이 번쩍이더니 “쌩!”하는 소리가 울렸다.
모습은 보이지 않고
소리만 들리는구나.
아! 대지가 노했는가?
온갖 구멍 울부짖는 소리 들리네.
구멍은 의도(宜都)에 있는데
순식간에 만 리 천하에 세찬 신통력 부리네.
짐승이 감옥을 맡아
무고하게 삼문(三門)에 가둬버렸네.
쿵쾅 펑펑
사납기 그지없이
하늘 관문을 흔들고
지축을 뒤흔들어
신선들도 시름겹게 하고
울긋불긋
희뜩번뜩
대해를 뒤집고
장강을 뒤흔들어
사해용왕들도 함께 목을 움츠리게 하네.
우르릉 쾅쾅
번쩍번쩍
모래가 날리고
돌이 굴러
결국 눈에 가득 먼지 덮여 봄에도 일찍 일어나고
어둑한 구름 덮이고
안개가 뭉게뭉게 피어나
높은 숲을 꺾고
오래된 나무 부러뜨리니
앞마을 등불에 밤에 늦잠을 자는 일 어디 있으랴?
휭휭 쌩쌩 앞뒤에서 소리 지르고
좌충우돌하니
구중궁궐의 용봉각에
수많은 기와 일제히 날아올라
도읍 안에 온통 이리저리 부딪치며
어지러이 구르고 비스듬히 끌리니
천 길 호랑이 굴처럼
터럭 하나 건드리지 못한단 말인가?
하루 종일 불지는 않지만
큰 날개 펼치니
대숭(戴嵩)은 소를 잃어 울부짖고
한간(韓干)은 말에서 떨어져 비명을 지르네.
호랑이 포효 소리 들리고
다시 솔개 울음소리 들리니
시름겨운 닭과 돼지들 우리로 들어가고
놀란 새들은 둥지를 옮기네.
종생(宗生)처럼 큰 뜻을 갖고 있다 하더라도
감히 그걸 타고 천 겹 파도를 깨칠 생각을 못하고
열자(列子)처럼 경묘(輕妙)하다 해도
그걸 타고 보름 만에 돌아오지 못하리라!
視之無影, 聽之有聲.
噫! 大塊之怒號, 傳萬竅之跳叫.
穴在宜都, 頃刻間弄威靈於萬里, 獸行法獄, 平白地見鞠陵於三門.
一任他乓乓乒乒, 栗栗烈烈, 撼天關, 搖地軸, 九仙天子也愁眉.
那管他靑靑紅紅, 皂皂白白, 翻大海, 攪長江, 四海龍王同縮頸.
雷轟轟, 電閃閃, 飛的是沙, 走的是石.
直恁的滿眼塵埋春起早, 雲慘慘, 霧騰騰, 折也喬林, 摧也古木.
說甚麽前村燈火夜眠遲, 忽喇喇前呼後叫, 左奔右突, 就是九重龍鳳閣, 也敎他萬瓦齊飛, 吉都都橫衝直撞.
亂卷斜拖, 卽如千丈虎狼穴, 難道是一毛不拔, 雖不終朝, 却負大翼.
吆的戴嵩之失牛, 喝的韓干之墮馬, 才聞虎嘯, 復訝鳶鳴, 愁的鷄豚之罔栅, 怕的鳥雀之移巢.
縱宗生之大志, 不敢謂其乘之而浪破千層, 雖列子之泠然, 吾未見其御之而旬有五日.
이처럼 못된 신통력을 부리는 놈이 유우씨(有虞氏)의 ‘노여움을 풀어주는 노래’나 세상의 먼지를 날려 보내는 세찬 바람에 대한 황제(黃帝)의 꿈을 어찌 들으려 했겠는가? 다른 선한 보살이라야 한나라 고조(高祖)처럼 풍패(豊沛)의 즐거움을 즐기고 후한(後漢) 광무제(光武帝)가 분양(汾陽)에서 시를 쓴 것 같은 일을 할 수 있을 것이다.
그야말로 이런 격이었다.
萬里塵沙陰晦暝 만 리에 퍼진 모래먼지에 사방이 어둑한데
幾家門戶響敲推 몇몇 집에 대문 두드리는 소리 들리네.
多情折盡章臺柳 정 많은 그 사람은 장대(章臺)의 버들가지 다 꺾었거늘
底事掀開杜屋茅 어이해 두보의 초가집 흔쾌히 열었나?
정말 대단하면서도 괴이한 바람이었다. 그걸 보자 비환은 그저 목만 움츠렸고, 운곡은 그저 혀를 내둘렀지만, 제운정에 앉은 벽봉장로는 그저 귓가를 스치는 산들바람 정도로 여기고 있었다. 이윽고 바람이 그치자 온 땅에 사발을 뒤집어 덮듯이 컴컴한 어둠이 내려왔다.
무성한 구름 일어나더니
주룩주룩 비가 내리네.
큰 산비탈에 들어가도 길 잃지 않고
우리 공전(公田)에서 사전(私田)까지 미치네.
오정(五政)은 틀림이 없어
열흘을 단위로 비가 내리니
농지(農地)를 무너뜨리지는 못하고
겨우 가지만 적실 정도라네.
가늘기는 풀숲에 내린 이슬 같고
빽빽하기는 공중에 흩어진 거미줄 같네.
술을 마시려다 비로소 어숙(御叔)의 눈에 띄었고
우산 빌리는 일 어찌 공자의 귀에 들어갔겠는가?
달이 필수(畢宿) 곁을 지나면
구름이 산에서 피어나기 시작하지.
관단(灌壇)을 둘러 간 여신의 행차
고당(高唐)에 나타났던 아리따운 자태
촉촉한 비는 아침이 지나기 전에 내리겠지만
폭우가 종일토록 이어지긴 어려우리라.
병예(屛翳)을 수레에 매고
현명(玄冥)을 치달리니
방 안의 그리움에 젖은 아낙을 한숨짓게 하고
물가의 초명(焦明)이 모여들게 하네.
촉(蜀)으로 가는 길엔 주룩주룩 비가 내렸고
주(周)나라 교외에서 무기를 씻었네.
진(秦)나라 궁전에서 호위를 그만두게 하고
유성(劉城)에서는 풍악을 연주했네.
중국에 성인이 있음을 점치기도 했고
무도(無道)한 형(邢)나라를 치게 하기도 했지.
마당에서 배를 타고
당상(堂上)의 옷에 물이 나오지.
기쁘게도 먹구름은 이미 감천(甘泉)으로 날아오니
저 곡식들은 이를 우러르네.
또한 동굴 속 바위에 채찍질을 하기도 하고
안장 위에 구름이 날기도 했지.
하백(河伯)의 사자(使者)를 수고롭게 하고
무위군(無爲君)의 힘을 빌리기도 했지.
양보(諒輔)는 마른 풀을 모았고
대봉(戴封)은 땔나무를 쌓았지.
고붕(高鳳)은 보리를 떠내려 보내 유명했고
주매신(朱買臣)은 조를 떠내려 보내 유명하다네.
백리숭(百里嵩)의 수레를 따라다니고
곽태(郭泰)의 각건(角巾)을 접게 했지.
또한 위문후(魏文侯)는 사냥꾼과의 약속을 지켰고
사안(謝安)이 밖에 나갔다가 진노하게 만들었지.
근심하고 마음아파 하며 구하기도 했고
오랜 장맛비가 계속되어 괴로워하기도 했지.
나부산의 신령한 거북을 화나게 하거나
무창(武昌)의 돌 북이 울렸는가?
또 상양(商羊)이 나타나 날개를 펴고 뛰었고
돌제비가 날고
옥녀(玉女)가 옷을 입고
우레의 신이 채비를 하고 나서니
은하수에 멧돼지가 목욕하는지 알아보고
묘일(卯日)에 양떼구름 있는지 살펴보네.
만물을 이롭게 하니 신(神)으로 여겼고
비구름에는 향기가 서렸지.
쏟아지는 모습은 공자가 노나라의 재상일 때를 비유하고
오래도록 내림은 부열(傅說)이 상(商)나라 재상이 되었기 때문이지.
또 난파(欒巴)가 술을 내뿜었고
번영(樊英)은 물을 내뱉었지.
붉은 자라가 파도 위에 뜨고
검은 뱀[黑蜧]이 강바닥에서 뛰네.
음양의 기운 합쳐지면 바람이 세지고
해와 달이 가려지면 구름이 작아지지.
객사(客死)한 이들의 해골을 수습해주자 내리기도 하고
억울한 일 보살펴주어서 내리기도 했지.
《주역》을 살펴보면
서쪽 교외에 비가 오지 않아 슬퍼한 적이 있고
저 《춘추(春秋)》를 뒤져보면
북쪽 언덕을 보며 비바람을 피한 일 있지.
渰然凄凄, 霈焉祁祁, 納於大麓而弗迷, 自我公田而及私.
五政無差, 十日爲期, 未能破塊, 纔堪濯枝.
微若草間委露, 密似空中散絲.
飮酒方觀於御叔, 假蓋寧聞於仲尼.
若夫月方離畢, 雲初觸石.
紆灌壇之神馭, 儼高唐之麗質.
雖潤不崇朝, 而暴難終日.
爾其驂屛翳, 駕玄冥, 歎室中之思婦, 集水上之焦明.
蜀道淋鈴, 周郊洗兵, 罷陛楯於秦殿, 奏簫鼓於劉城.
或以占中國之聖, 或以伐無道之邢.
及夫舟運庭中, 衣生堂上.
喜甘泉之已飛, 伊百穀而是仰.
亦有洞中鞭石, 鞍上飛雲.
煩河伯之使, 藉無爲之君.
則有諒輔聚艾, 戴封積薪.
漂麥已稱於高鳳, 流粟仍傳於買臣.
隨景山之行車, 折林宗之角巾.
亦聞文侯期獵而守信, 謝傅出行而致怒.
或勤閔而求, 或霖淫爲苦.
忤羅浮之神龜, 鳴武昌之石鼓.
復見商羊奮躍, 石燕飛翔, 玉女披衣, 雷君出裝, 認天河之浴豨, 觀卯日之群羊.
利物爲神, 零雲有香.
霈則喩宣尼之相魯, 霖則爲傅說之輔商.
又云欒巴噀酒, 樊英嗽水.
浮朱鼈於波上, 躍黑蜧於水底.
陰陽脗合而風多, 日月蔽虧而雲細.
或因掩骼而降, 或爲省寃而致.
考於犧易, 悵西郊之未零, 翫彼麟經, 睠北陵而可避.
그야말로 이런 격이었다.
茅屋人家烟火冷 초가집엔 밥 짓는 연기도 싸늘하고
梨花庭院夢魂驚 배꽃 핀 뜰에서 꿈속의 혼 놀라 깨네.
渠添濁水通魚入 도랑에 흙탕물 불어 물고기가 들어오고
地秀蒼苔滯鶴行 땅바닥의 고운 이끼는 길 떠나는 학을 붙드네.
어쨌거나 대단한 폭우였다. 비환이 손을 내밀어 손가락을 짚으며 헤아리자, 운곡이 말했다.
“무슨 계산을 하는 겁니까?”
“헤아려 보니 오늘이 막 칠칠 사십구 일이 되는 날이로구나.”
“이 못된 놈이 정말 비바람을 부를 줄 아는군요.”
“말 좀 조심해라.”
그때 벽봉장로는 정자에서 눈을 감고 정신을 차분히 가라앉힌 채 그 비를 보지 못한 것처럼 앉아 있었다. 잠시 후 비가 그치고 구름이 흩어지며 환한 해가 나타났다. 그리고 “척!”하는 소리와 함께 고양이 같은 머리에 멧돼지 같은 주둥이를 가진 사납게 생긴 사내 하나가 벽봉장로 앞에 서서 이를 갈고 있었다.
‘이제야 그 못된 짐승이 온 모양이로군.’
벽봉장로가 눈을 뜨고 나직이 물었다.
“그대는 누구인가?”
“나를 알아보지 못하다니! 내가 바로 이 동네에서 유명한 사선대왕이니라.”
“여긴 뭐 하러 왔는가?”
“네가 무단히 내 산봉우리를 점거하고 있으니, 너와 겨루려고 왔다.”
“가소로운 녀석! 키도 조그마한 네까짓 게 무얼 갖고 겨룬다는 게냐?”
그 사내는 키가 작다는 말을 듣자 즉시 허리를 웅크리며 손을 내밀어 마치 구층 불탑처럼 키가 몇 십 길이나 늘어났다. 그러자 벽봉장로가 말했다.
“키만 이렇게 멀대 같이 크니 당최 쓸모가 없구먼.”
그 사내는 말랐다는 소리를 듣자 다시 몸을 몇 번 흔들며 손을 내저었다. 그러자 즉시 세 칸짜리 상점처럼 몸 둘레가 열 길이 넘게 변했다. 벽봉장로가 키 좀 커지라고 하자 그는 아래쪽이 보이지 않을 만큼 커졌고, 살 좀 찌라고 하자 허리조차 마음대로 굽히고 펴기 어렵게 되었다.
‘이러면 계책으로 제압하기 좋게 되었구나.’
벽봉장로는 두 손으로 구환석장을 단단히 잡고 그놈의 허리와 엉덩이 사이에 튀어나온 뼈를 냅다 후려갈겼다. 그러자 그놈은 눈앞에 별이 빙빙 돌고 혼비백산하여, 이를 악물고 아픔을 참으며 남쪽 오솔길로 도망쳤다. 벽봉장로는 구환석장을 끌고 제자와 사손을 거느린 채 금빛 광채를 일으키며 순식간에 그놈을 따라잡았다. 다급해진 그놈이 셋째 형의 거처로 도망치니, 벽봉장로 일행도 바짝 쫓아갔다.
그놈은 어느 높은 산에 이르자 재빨리 산봉우리로 달아나 순식간에 사라져 버렸다. 벽봉장로가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이 산은 높이가 오륙천 길쯤 되고 넓이가 삼사백 리쯤 되어 보이는데, 신령한 광채가 피어나는 열다섯 개의 고개와 상서로운 기운이 자욱한 서른두 개의 봉우리가 있었다. 그런데 다시 살펴보니 원래 이것은 두 개의 산이 하나로 합쳐진 것이었다. 벽봉장로가 사정을 환히 알게 되어 고개를 몇 번 주억거리자, 비환이 물었다.
“사부님, 여긴 무슨 산입니까?”
“도가의 책에서 말하는 십대동천(十大洞天) 가운데 하나이지.”
운곡이 물었다.
“아까 그 토지신이 얘기했던 나부산인 모양이지요?”
비환이 덧붙였다.
“나부산이라면 그놈의 셋째 형이 사는 곳이 아닌가요?”
벽봉장로가 말했다.
“셋째든 넷째든 간에 그냥 이렇게 뭉개버리면 되지!”
그 말을 끝내기 무섭게 벽봉장로는 금빛을 번쩍이더니 어느새 산봉우리에 올라 사방을 둘러보았다. 하지만 아무런 낌새가 없었다.
“비환아, 저 봉우리 위아래를 샅샅이 살펴보고 오너라.”
운곡이 말했다.
“저도 찾아보겠습니다.”
“그렇게 해라. 한 사람은 동쪽으로 내려갔다가 서쪽에서 올라오고, 한 사람은 서쪽으로 내려갔다가 동쪽으로 올라오도록 해라.”
그들 스승과 제자는 명을 받들고 동시에 산 아래로 내려가 찾기 시작했다. 그들은 서로 먼저 요괴를 붙잡아 사형에게 상을 받고, 마귀를 처단하여 사부 앞에서 공을 자랑할 생각이었다. 하지만 동쪽으로 내려갔다가 서쪽으로 올라온 비환도 빈손이었고, 서쪽으로 내려갔다가 동쪽으로 올라온 운곡도 허탕이었다. 두 스승과 제자는 모두 벽봉장로 앞에 나아가 “못 찾았습니다.” “없던데요?”하고 보고했다. 이에 벽봉장로가 지혜의 눈을 뜨고 살펴보니, 봉우리 움푹한 곳에 약간의 요사한 기운이 보였다.
“너희 둘이 함께 가서 저기 움푹한 곳을 살펴보고, 뭔가 발견되거든 속히 돌아와서 얘기하도록 해라.”
하지만 그들 스승과 제자가 그곳으로 내려가 살펴보아도 아무 것도 발견할 수 없어서 돌아갈 수밖에 없었다. 그런데 걸음이 조금 빠른 비환이 무언가에 발이 걸려 땅바닥에 꽈당 넘어져 버렸다. 운곡이 다가가 살펴보니 아주 커다란 호로의 덩굴에 발이 걸린 것이었다. 비환이 약간 미심쩍어하고 있을 때, 운곡도 속으로 뭔가를 생각하고 있었다. 둘은 아무 말도 없이 곧장 그 덩굴을 따라 달려갔다. 그렇게 사오백 걸음쯤 달려갔을 때, 어느 바위 안쪽에 커다란 터럭에 덮인 호로가 보였다. 비환이 말했다.
“이게 바로 그건가?”
운곡이 말했다.
“별 거 아니네요.”
둘은 곧 봉우리로 돌아가서 벽봉장로에게 보고했다. 벽봉장로는 즉시 금빛을 번쩍이며 그 바위 앞으로 갔다. 그러더니 구환석장을 들어 그 호로를 “쾅!” 내리치자, 호로가 바위 위쪽으로 주르륵 미끄러지듯 도망쳤다. 알고 보니 그것은 호로가 아니라 머리부터 얼굴까지 털이 덥수룩한 늙은 요괴였는데, 그 고양이 머리에 돼지주둥이를 한 놈을 손으로 끌고 가고 있었다. 벽봉장로가 다시 석장을 내리치자 두 요괴는 도저히 견뎌낼 수 없었다. 그놈들이 옥아봉(玉鵝峰)으로 도망치자 벽봉장로가 석장을 휘두르며 쫓아갔고 이어서 마고봉(麻姑峰), 선녀봉(仙女峰), 회진봉(會眞峰), 회선봉(會仙峰), 금수봉(錦繡峰), 대모봉(玳瑁峰), 금사동(金沙洞), 석구동(石臼洞), 주명동(朱明洞), 황룡동(黃龍洞), 주릉동(朱陵洞), 황원동(黃猿洞), 수렴동(水簾洞), 호접동(蝴蝶洞), 대석루(大石樓), 소석루(小石樓), 철교(鐵橋), 철주(鐵柱)를 거치며 쫓고 쫓기는 활극이 펼쳐졌다. 두 요괴는 더욱 당황해서 도어석(跳魚石)으로 도망쳤다. 하지만 벽봉장로가 쫓아오자 다시 복호석(伏虎石)으로 도망쳤지만 이번에도 따라잡히고 말았다. 두 요괴는 어쩔 수 없이 나란히 아욕지(阿耨池) 안으로 뛰어들었지만, 벽봉장로가 거기까지 쫓아가자 다시 야악지(夜樂池)를 거쳐서 탁석천(卓錫泉)으로 뛰어들었다. 벽봉장로는 구환석장을 들어 땅을 슬쩍 두드렸다. 그러자 그 두 요괴와 샘물이 동시에 위로 치솟았다. 그 틈에 꾀를 짜낸 두 요괴는 재빨리 어화원(御花園) 안의 감나무 위로 올라가 몸을 흔들어 감으로 변해서 그 틈에 숨었다. 하지만 이미 간파한 벽봉장로가 멀찍이서 석장을 휘둘러오자 두 요괴는 다시 몸을 흔들어 어화원 안 대밭으로 숨어들었다. 하지만 다시 벽봉장로가 석장을 휘둘러오니 그곳에도 숨어 있을 수 없었다. 그때 마침 산 위에 오색 참새들이 떼지어 날고 있는 것이 보였다. 두 요괴는 다시 몸을 흔들어 오색 참새로 변해 그 틈에 섞여 들어가 함께 날며 춤을 추었다. 하지만 벽봉장로가 구환석장을 들어 참새들을 가리키자 진짜 참새들은 일제히 아래로 떨어져내리고, 둘만 남은 가짜 참새들은 이 틈에 재빨리 날아 도망쳤다.
벽봉장로는 구환석장을 끌며 제자와 사손을 이끌고 바짝 뒤쫓았다. 두 요괴가 서북쪽으로 날아 도망치자 벽봉장로도 그쪽으로 쫓아갔다. 한참 쫓아가고 있는 도중에 비환이 물었다.
“두 요괴가 서북쪽으로 도망치는 걸 보니 혹시 구원병을 청하러 아미산으로 가고 있는 건 아닐까요?”
“나도 알고 있다.”
운곡이 말했다.
“사조님께 이 석장이 있는데, 백만 마리 요괴가 있다 한들 무서울 게 뭐가 있겠습니까!”
그렇게 한담을 나누는 사이에 어느새 아미산에 도착했다. 두 요괴는 비록 변신술은 제법 뛰어났지만 날아갈 때에는 구름과 안개를 탈 수밖에 없었다. 벽봉장로는 연등고불이 인간의 몸을 빌려 태어났기 때문에 구름이나 안개를 타지 않고도 금빛이 번쩍하는 순간 나는 것보다 빨리 움직일 수 있었다. 그러니 두 요정이 도저히 벗어날 길이 없었다. 이에 두 요괴는 아미산 위에 도착하자마자 소리를 질렀다.
“둘째형님!”
그러자 어디선가 둘째 요괴가 나타나서 셋이 한 패가 되었다. 운곡이 말했다.
“저 요괴도 머리며 얼굴이 온통 퍼렇군요.”
비환이 말했다.
“저놈이 바로 토지신이 말한 압단정이로군요.”
벽봉장로는 아무 말도 없이 다짜고짜 앞으로 달려가 구환석장을 휘둘렀다. 이번에도 세 요괴는 도망칠 길이 없어서 대아미산(大峨眉山)에서 중아미산(中峨眉山), 소아미산(小峨眉山)을 거쳐 다시 대아미산으로 내쫓겼다. 또 산꼭대기에서 여든네 개 마반만(磨盤灣)을 향해 마치 은빛 병이 우물로 떨어지듯 산발치로 내쫓겼고, 다시 산발치에서 산꼭대기로 이어지는 육십 리 남짓한 어둑한 길을 천리마가 바람을 가르며 치달리듯 내쫓겼다. 백열두 개 석감(石龕)들이 달을 쫓는 유성(流星)처럼 스쳐 지나고, 백스물네 개 돌 침상들이 시위를 떠난 화살처럼 곁을 지나갔다. 마흔 개 남짓한 크고 작은 동굴들마다 윙윙 휙휙 구환석장 휘두르는 소리가 울렸고, 동굴 속에 있는 서른여섯 쌍쯤 되는 돌구멍마다 탁탁 툭툭 구환석장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이러니 광상선사(光相禪師)라 할지라도 만 칸짜리 큰 건물을 지을 수 없고, 보현보살이 있다 할지라도 서천으로 가는 길의 주인 노릇을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세 요괴들은 더 이상 부릴 꾀도 없고 힘도 다 빠져서 서로 상의했다.
“무슨 놈의 중이 이리 무시무시해! 안 되겠다. 오대산으로 가서 천강정과 합세해서 대책을 마련해 보자.”
그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벽봉장로가 뒤쫓아 왔다. 그들은 어쩔 수 없이 북쪽을 향해 죽어라 내달렸다. 벽봉장로도 구환석장을 끌며 제자와 사손을 이끌고 쫓아갔다. 거의 다 쫓아갔을 때 운곡이 말했다.
“사조님, 앞에 있는 게 무슨 산이지요?”
“오대산이다.”
“왜 그런 이름이 붙었답니까?”
“이 산은 북악인 항산의 머리이자 태행산(太行山)의 꼬리에 해당하는데, 길이가 장장 오륙백 리나 되고 동서남북의 방위에 따라 금, 목, 수, 화, 토 오행의 기운이 서린 다섯 개의 산맥이 솟아 있지. 그 봉우리들은 숫자가 다섯이고 꼭대기가 평탄해서 마치 대(臺)처럼 생겼기 때문에 오대산이라고 부르게 된 것이지.”
그러자 비환이 끼어들었다.
“사부님, 그 세 요괴가 이미 봉우리에 도착했으니 얼른 석장을 준비하셔요.”
“이번엔 석장을 휘두를 필요 없겠다.”
그 세 요괴는 허둥지둥 알아들을 수 없는 소리를 떠들어 대며 여기저기 산봉우리들을 뛰어다녔다. 벽봉장로는 석장을 치켜들지도 않고 그들을 쫓아가지도 않은 채 중간 봉우리에 앉아 몇 마디 진언과 주문을 외더니, 석장을 끌며 제자와 사손을 이끈 채 선하기 그지없는 불법의 세계로 빠져들었다.
한편 그 세 요괴들은 천강정을 소리쳐 부르며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그렇게 이삼일 동안 부르며 뛰어다녔는데, 부르는 곳마다 천강정이 뛰어나왔다. 보라. 그 세 요정은 서른세 개의 천강정을 얻게 되자 마치 호랑이에 날개를 단 것처럼 매일 이 봉우리들 위에서 뛰고, 소리치고, 날고, 달리고, 울부짖고, 혀를 내밀고, 욕을 퍼붓고, 긴 수염과 머리카락을 휘날리며 난리를 피웠다. 또 매일 선정(禪定)에 든 벽봉장로 앞을 찾아와 비바람을 부르고, 안개와 구름을 삼키고 뱉으며, 이리저리 산을 옮기고 무너뜨리고, 강과 바다를 휘저어 뒤집고, 창을 던지고, 봉을 휘두르며, 기와며 벽돌을 갖다 던지고, 연기와 불길을 피워내며 소란을 피웠다. 이 시끄러운 소리에 운곡이 밖으로 나가 보니 고양이 머리에 돼지주둥이를 한 사선정과 머리카락이며 수염이 덥수룩한 호로정, 머리며 얼굴이 시퍼런 압단정까지 세 마리 요괴와 죄다 대머리에 얼굴이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희멀겋게 분을 처바른 제비족 같은 서른세 마리 천강정들이 모여 있었다. 운곡도 조금 겁이 나서 소리를 질렀다.
“사부님, 여기 좀 보셔요!”
비환도 그 소리를 듣고 나가 보니 요괴들의 신통력이 대단하고 여러 가지 변신술을 펼치는지라 속으로 조금 겁이 났다. 그들 두 스승과 제자가 겁에 질려 그 모습을 살피며 속으로 이런저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 갑자기 안쪽에서 벽봉장로의 호통 소리가 들려왔다. 두 사제는 깜짝 놀라 몸을 비틀거리더니 황급히 안으로 들어가 보고했다.
“사부님, 무슨 일로 부르셨는지요?”
“내가 선정에 든 지 며칠이나 되었느냐?”
“벌써 칠칠 사십구 일이 되었습니다.”
“밖에 있는 요괴들은 어떠하더냐?”
운곡이 대답했다.
“굉장히 흉험합니다!”
“너희들이 직접 보았느냐?”
“조금 전에 사부님과 함께 직접 보았습니다.”
“어디, 내가 좀 봐야겠구나.”
벽봉장로는 조용히 선정에서 나와서 깨끗한 물로 씻고 밥을 먹은 다음, 한 손으로는 수염을 쓰다듬고 다른 한 손으로는 구환석장을 끌며 제자와 사손을 거느린 채 성큼성큼 대문 밖으로 나갔다.
그때 박에 망을 보고 있던 졸개 요괴가 입으로 귀신들만 알아볼 수 있는 신호 소리를 냈다. 벽봉장로가 막 산꼭대기에 자리를 잡고 앉았을 때, 전후좌우 사면팔방에 좍 깔려 있던 요괴들이 모두 그의 앞으로 달려왔다. 하지만 막상 금빛 광채를 피우고 있는 벽봉장로의 모습을 보자 적지 않은 요괴들이 다리를 멈칫했다. 벽봉장로가 말했다.
“너희들은 누구냐?”
그러자 머리와 얼굴이 온통 시퍼런 녀석이 말했다.
“감히 나 압단대왕을 몰라본단 말이냐?”
이어서 대머리에 얼굴이 기름기가 줄줄 흐르는 희멀겋게 분을 처바른 제비족 같은 녀석들이 펄쩍펄쩍 날뛰며 시끌벅적 떠들어댔다.
“우리 형제는 천강대왕인데, 네까짓 게 알아볼 리 없지!”
“여긴 뭐 하러 왔느냐?”
그러자 사선정이 나섰다.
“사람을 쫓더라도 백 걸음 이상은 쫓지 않는 법인데, 너는 왜 여기까지 쫓아왔느냐?”
호로정이 말했다.
“자기가 저지른 일은 스스로 책임을 져야지. 설령 내 동생이 잘못을 저질렀다 하더라도 왜 나까지 쫓아온단 말이냐?”
압단정도 거들었다.
“우리 가족이 모두 죄를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우리 삼형제를 싸잡아 멸시하는 거냐?”
천강정들도 일제히 한 목소리로 말했다.
“이렇게 남의 집을 찾아와 멸시해서는 안 되지요!”
이에 벽봉장로가 말했다.
“그렇게 말하는 걸 보니 너희들도 제법 재간이 있는 모양이구나?”
그러자 요괴들이 일제히 말했다.
“우습게보지 마! 우리는 신통력도 있고 변신술도 부릴 줄 알아!”
“말로만 하지 말고 직접 보여 다오.”
“그래, 뭘 보여주면 되겠느냐?”
“신통력이 있다고 했으니 그걸 보여 다오.”
“잘 봐라!”
그러면서 여러 요괴들이 일제히 “바람!”하고 외치며 술수를 부리자 과연 ‘휭휭 분노에 찬 외침이 울리며, 나무와 숲을 쓰러뜨려 새들이 둥지를 잃게 만들[飄飄一氣怒呼號, 伐木摧林鳥朱巢]’ 지경이었다. 하지만 그 바람이 거세긴 했지만 벽봉장로가 구환석장으로 한 번 가리키자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비를 보여주지!”
요괴들이 일제히 “비!”하고 외치자 과연 ‘나그네 발밑에서 우렛소리 들리더니, 대야를 엎을 듯한 빗줄기 쏟아지는[遊人脚底一聲雷, 倒鉢傾盆瀉下來]’ 장관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 대단한 비도 벽봉장로가 구환석장으로 한 번 가리키자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안개를 보여주지!”
요괴들이 일제히 “안개!”하고 외치자 과연 ‘산 빛은 온통 어둑해지고 물빛도 흐려지며, 커다란 언덕에 멋진 안개가 자욱한[山光全瞑水光浮, 佳氣氤氲滿太丘]’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 대단한 안개도 벽봉장로가 구환석장으로 한 번 가리키자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구름을 보여주지!”
요괴들이 일제히 “구름!”하고 외치자 과연 ‘봉우리인 듯 불꽃인 듯 더욱 솜뭉치인 듯한 구름이 비가 되기 전에 하늘을 온통 가려버리는[如峰如火更如綿, 雨未成時漫障天]’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 대단한 구름도 벽봉장로가 구환석장으로 한 번 가리키자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산을 보여주지!”
요괴들이 일제히 “산!”하고 외치자 과연 ‘고운 부용 깎아 만든 듯 만 길 봉우리 우뚝하니, 하늘이 만든 기둥 하나 동방의 축이 되는[秀削芙蓉萬仞雄, 天然一柱斡維東]’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 높은 산도 벽봉장로가 구환석장으로 한 번 가리키자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바다를 보여주지!”
요괴들이 일제히 “바다!”하고 외치자 과연 ‘거대한 바다 맑은 물결 저절로 평온한데, 뭇 개천 돌아가는 곳에 조수가 일어나는[巨海澄瀾勢自平, 百川歸處看潮生]’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 높은 산도 벽봉장로가 구환석장으로 한 번 가리키자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창을 보여주지!”
요괴들이 일제히 “창!”하고 외치자 과연 ‘점점이 나는 벽돌 어지러운 빗방울 같고, 조각조각 내달리는 기와 유성과 같은[點點磚飛如雨亂, 磷磷瓦走似星流]’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 긴 창도 벽봉장로가 구환석장으로 한 번 가리키자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기와하고 벽돌을 보여주지!”
요괴들이 일제히 “기와! 벽돌!”하고 외치자 과연 ‘장팔사모의 기세도 의젓하여 수많은 무리 속에서 앞을 다투는[丈八蛇矛勢儼然, 萬人叢裏獨爭先]’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 많은 벽돌들과 기와들도 벽봉장로가 구환석장으로 한 번 가리키자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그렇다면 연기와 불을 보여주지!”
요괴들이 일제히 “연기! 불!”하고 외치자 과연 ‘검은 불꽃 뭉게뭉게 하늘 궁전을 위협하고, 커다란 짚더미의 불길 연기 뒤에서 타오르는[黑焰蒙蒙逼紫霄, 一團茅火隔烟燒]’ 장면이 연출되었다. 하지만 그 연기와 불도 벽봉장로가 구환석장으로 한 번 가리키자 금방 사라져 버리고 말았다.
왼쪽에 서 있던 비환이 요괴들의 이런 수작을 보고 말했다.
“사부님, 이놈들이 전혀 쓸모가 없다고 하시더니 그래도 제법 눈 가리고 아웅 하는 속임수를 쓸 줄 아는군요.”
그러자 오른쪽에 서 있던 운곡이 말했다.
“‘멍청이는 오지 않고, 온 사람은 멍청이가 아니다.’라는 말도 못 들어보셨어요?”
벽봉장로가 말했다.
“쓸 데 없는 소리 그만하고, 내가 이놈들을 처리하는 거나 구경해라.”
그리고 요괴들에게 말했다.
“너희들의 신통력은 구경 잘했다. 그런데 변신술도 부릴 줄 안다고 했으니, 그것도 좀 보여 다오.”
“몸 안에서 변신하는 것 말이냐, 아니면 밖에서 변신하는 것 말이냐?”
“먼저 몸 밖에서 변신하는 것부터 보자.”
알고 보니 그 요괴들도 본래 제법 통달한 놈들이었다. 그놈들은 일자로 늘어서 저마다 입 속으로 중얼중얼 주문을 외더니 금방 한 그루 소나무로 변신했다. 벽봉장로가 그걸 보고 말했다.
“그래도 그건 세밑 추위를 견디는 고고함이 있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떨기 대나무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건 군자(君子)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떨기 매화 가지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건 봄꽃 가운데 최고라고 할 수 있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복숭아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건 홍해아(紅孩兒)가 좋아하겠구나.”
또 잠시 후 요괴들이 쟁반에 담긴 은행으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건 단 맛과 쓴 맛이 적당히 어울려 있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버들가지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건 청명절의 상징이라고 할 수 있지.”
그때 갑자기 한 요괴가 소리쳤다.
“첫 번째 변신술을 다 끝났으니까, 두 번째 변신술을 보여주마!”
“그래, 해 봐라. 좀 보자.”
그러자 요괴들이 저마다 주절주절 주문을 외더니 한 마리 용으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놈은 머리에 뿔까지 갖췄구나.”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쌍의 봉황으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놈들은 제법 오색의 무늬를 갖췄구나.”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쌍의 기린으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놈은 성인의 뜻에 호응하는 상서로운 동물이라 할 수 있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하얀 팔찌[鐲]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건 티 없이 고운 옥이로구나.”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쌍의 사자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놈들은 문수보살(文殊菩薩)을 알아보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마리 하얀 코끼리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놈은 안녹산(安祿山)에게 절을 하지 않았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마리 호랑이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놈은 산속의 제왕으로 명성이 높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마리 표범으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놈은 남산의 안개 속에 숨어 있기도 하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마리 금사견(金絲犬)으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놈은 털에서 금빛이 나는 것 같구나.”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마리 대모 고양이[玳瑁猫]로 변신했다.
“그래도 그놈은 모피가 제법 훌륭하지.”
그때 또 요괴 한 놈이 소리쳤다.
“두 번째 변신술이 끝났으니 세 번째 변신술을 보여주마!”
“그래, 해 봐라. 좀 보자.”
그러자 요괴들이 저마다 치키치키 주문을 외더니 한 덩이 마제금(馬蹄金)으로 변신했다.
“그건 그냥 노랗기만 하구나.”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덩이 둥근 은으로 변신했다.
“그건 그냥 허옇기만 하구나.”
또 잠시 후 요괴들이 경양종(景陽鐘)으로 변신했다.
“그건 그냥 구리하고 쇠를 섞어 주조한 종이로구나.”
또 잠시 후 요괴들이 어양고(漁陽鼓)로 변신했다.
“그건 그냥 잡다한 가죽으로 대충 만든 북이로구나.”
또 잠시 후 요괴들이 요사등(料絲燈)으로 변신했다.
“그건 그냥 남들이 길 가는 데에 비추는 것일 뿐이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풀로 엮은 방석으로 변신했다.
“그건 그냥 남들이 앉는 데에나 쓰일 뿐이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낡은 구리거울로 변신했다.
“그건 그냥 혼자 마음속을 비춰보는 것일 뿐이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금물로 장식된 부채로 변신했다.
“그건 그냥 저 혼자 시원하라고 부치는 것일 뿐이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주전자의 차로 변신했다.
“그건 원래 노동(盧仝)의 물건이지.”
또 잠시 후 요괴들이 한 병의 술로 변신했다.
“그건 원래 두강(杜康)이 만든 것이지.”
그때 갑자기 요괴 하나가 또 소리쳤다.
“차와 술까지 다 보여주었으니 또 다른 변신술을 보여줄 필요는 없겠지!”
“이건 다 몸 바깥의 변신술이 아니었더냐? 이제 몸 안의 변신술을 보여 다오.”
벽봉장로가 말하는 몸 안의 변신술이란 것에 어떤 수많은 변화가 담겨 있는지, 또 그 요괴들의 변신술에 또 어떤 신묘한 재간이 있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