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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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씨와 그림을 팔아 자급자족하는 한 떠돌이 선비가 있었다. 그는 북경에서 첩을 맞아들였는데, 그녀를 몹시 사랑했다. 어쩌다가 잔치 집에라도 가면 반드시 음식을 소매에 넣어 가지고 와서 그녀에게 주었고, 그녀도 그를 매우 마음에 들어 했다. 그러나 얼마 지나지 않아 선비는 병세가 위독해지자 첩에게 말했다.

“내가 집이 없으니 자네가 갈 곳이 없고, 내게 친척이 없으니 자네가 의지할 사람도 없네 그려. 내가 필묵으로 생계를 꾸려왔는데, 내가 죽으면 자네는 안 먹을 수 없으니 재가하는 것이 정황상 도리에 맞네. 내가 자네에게 남긴 빚도 없고 자녀 역시 방해할 부모형제가 없으니, 자네의 뜻대로 해도 되네. 자네는 개가할 때 남자에게 조금의 예물도 받지 말고 그저 세시 때 자네가 내 묘에 와서 제사만 올릴 수 있게 해달라고 하게나. 그렇게만 해 주면 나는 죽어도 여한이 없네.”

첩은 울면서 가르침대로 했고, 그녀를 맞아들인 사람도 약속대로 해주면서 또한 그녀를 매우 사랑했다. 그러나 첩은 지난날의 은혜에 대한 기억으로 늘 마음이 울적했다. 밤이면 꿈에서 옛 남편과 동침하고 자면서도 응응하면서 끊임없이 이야기를 나누었다. 남편이 그 사실을 알고 몰래 술사(術士)를 불러들여 부록(符籙)으로 누르자 잠꼬대는 멈췄지만, 병이 점점 도지고 위독해졌다. 임종 때가 되자 그녀는 베개에 머리를 묻고 말했다.

“전 남편과의 정이 깊은 나머지 제가 그를 잊을 수가 없다는 것을 당신이 잘 알고 있기에 저도 숨기지 않겠어요. 어제 밤 꿈에 나타나 이렇게 말하더군요.

‘오랫동안 바쁘게 쫓아다니다 보니 오늘에야 겨우 자네를 보러 오게 되었네. 자네의 병이 이와 같으니 어찌 함께 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래서 가겠다고 이미 허락했어요. 그러니 당신께서 특별히 은혜를 베풀어 저를 그와 합장해주신다면 내세에 태어나 풀을 잡아 묶고 옥을 물고 와서은혜를 갚겠습니다. 도리에 어긋나는 청인지는 알지만 당신만이 해 주실 수 있습니다.”

말을 다하고는 숨을 거두었다. 이 새 남편 역시 호방한 사람이라 이렇게 개탄했다.

“자네의 혼이 이미 전남편을 따라간 이상 시신을 여기에 두어서 무엇 하겠는가! 양월공(楊越公)도 악창(樂昌)공주와 서덕언(徐德言)의 깨진 인연을 다시 맺어 주었는데, 내가 저승에 있는 두 사람을 못 맺어주겠는가?”

그는 결국 그녀의 청대로 해주었다.

이 이야기는 옹정 12년에서 13년 사이에 일어난 일인데, 내 나이 그때 열한 두 살이었기에 그 이야기를 듣고도 그 이름을 까먹었다. 나는 재혼은 옛 남편에 대한 배신이고, 재혼한 뒤에 딴 생각을 하는 것은 새 남편에 대한 배신이라 생각했는데, 이 부인은 이 경우도 저 경우도 아니다.

하자산(何子山)선생도 말했다.

“옛 남편을 그리워하다 죽을 거면 어째서 따라 죽지 않았는가?”

하려암(何勵庵) 선생은 도리어 이렇게 말했다.

“《춘추》에서는 늘 현자에게 엄격함을 요구했을 뿐 일찍이 사대부의 뜻으로 아녀자를 재단하지 않았습니다. 이 여인이 만난 상황을 애달피 여기고 이 여인의 뜻을 불쌍히 여기면 그뿐인 것을.”

有游士以書畫自給, 在京師納一妾, 甚愛之. 或遇讌會, 必袖果餌以貽, 妾亦甚相得. 無何病革, 語妾曰: “吾無家, 汝無歸, 吾無親屬汝無依. 吾以筆墨爲活, 吾死, 汝無食, 琵琶別抱, 勢也, 亦理也. 吾無遺債累汝, 汝亦無父母兄弟掣肘, 得行己志. 可勿受錙銖聘金, 但與約, 歲時許汝祭我墓, 則吾無恨矣.” 妾泣受敎. 納之者亦如約, 又甚愛之. 然妾恆鬱鬱憶舊恩, 夜必夢故夫同枕席, 睡中或妮妮囈語. 夫覺之, 密延術士鎭以符籙, 夢語止, 而病漸作, 馴至綿惙. 臨歿, 以額叩枕曰: “故人情重, 實不能忘, 君所深知, 妾亦不諱. 昨夜又見夢曰: ‘久被驅遣, 今得再來. 汝病如是, 何不同歸?’ 已諾之矣. 能邀格外之惠, 還妾屍於彼墓, 當生生世世, 結草銜環. 不情之請, 惟君圖之.” 語訖奄然. 夫亦豪士, 慨然曰: “魂已往矣, 留此遺蛻何爲. 楊越公能合樂昌之鏡, 吾不能合之泉下乎?” 竟如所請.

此雍正甲寅․乙卯間事. 余時年十一二, 聞人述之, 而忘其姓名. 余謂再嫁, 負故夫也, 嫁而有貳心, 負後夫也. 此婦進退無據焉. 何子山先生亦曰: “憶而死, 何如殉而死乎?” 何勵庵先生則曰: “《春秋》責備賢者, 未可以士大夫之義律兒女子. 哀其遇可也, 憫其志可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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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정 허방(許方)이 한번은 술 두 동이를 메고 밤길을 가다가 피곤해서 큰 나무아래서 쉬었다. 달빛은 대낮처럼 밝고 멀리서 우우 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 때] 귀신이 풀숲에서 나왔는데, 그 모습이 너무 무서워 허방은 곧 바로 나무 뒤에 숨고 멜대로 자신을 보호했다. 귀신은 술동이 앞에서 너무 기쁜 나머지 껑충 껑충 뛰고는 급히 술동이를 열어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귀신은 한 동이를 다 마시고 나서 다음 술동이를 열 태세였는데, 뚜껑을 반 쯤 열었을 때 이미 취해 나자빠졌다. [이를 보고] 몹시 화가 난 허방은 귀신이 별다른 재주가 없는 것을 보고 갑자기 멜대를 들어 귀신을 때렸는데, 마치 허공에다 대고 휘두르는 것 같았다. 허방이 계속해서 호되게 때리자 귀신은 점점 풀어져서 땅에 앉더니 , 결국 짙은 연기 뭉치로 변했다. 허방은 귀신이 조화를 부릴까 두려워 다시 멜대로 100대 넘게 귀신을 때렸다. 그러자 연기는 땅으로 가라앉더니 점점 흩어지기 시작했는데, 마치 묵 흔적 같기도 하고 얇은 비단 같기도 했다. 연기는 점차 흩어지면서 엷어지기 시작하더니 결국에는 보이지 않았는데, 이미 소멸된 것 같았다.

나는 귀신이란 바로 사람의 남은 기운이라 생각한다. 기(氣)가 조금씩 사라지기 때문에 《좌전(左傳)》에서도 새로운 귀신은 크고 오래된 귀신은 작다고 했다. 세상에 귀신을 본 사람은 많지만, 상고시대의 태호(太昊)나 황제(黃帝) 이전 시대의 귀신을 본 사람이 있다는 소리는 들어본 적이 없는데, 그것은 [그들의 기운이] 이미 다 사라지고 없기 때문이다. 술이란 기(氣)를 흩어지게 하는 것이다. 그런 까닭에 의원들이 혈을 돌게 해서 땀을 내거나, 울적함을 달래거나 한기를 몰아낼 때 그 약에 모두 술을 넣어 치료했다. 이 귀신은 조금 남은 기를 술 한 동이로 흩어지게 했는데, 넘치는 양기가 요동을 쳐서 미약한 음기를 증발시켰으니 그 기가 다 사라지는 것도 당연하다. 이것은 바로 술로 소멸된 것이지 허방의 매 때문에 소멸된 것이 아니다.

이 이야기를 들으면 술을 경계하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귀신은 조화를 잘 부리는데, 결국에는 술 때문에 쓰러져 매를 맞았구나. 귀신이란 본래 사람들이 두려워하는 존재이거늘, 술 때문에 도리어 사람에게 곤욕을 치렀으니, 술독에 빠져 사는 사람은 유념할 지어다!”

그러나 술에 빠져 사는 사람은 이렇게 말했다.

“귀신은 비록 형체는 없지만 지각이 있기에 희로애락의 감정에서 벗어날 수 없네. 지금 멍하니 술에 취해 기절하고 소멸하여 무로 돌아갔지만, 오히려 진실하네! 이 보다 깊은 술맛은 없을 것이야. 불가에서는 열반을 극락의 세계라고 하지만, 이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어찌 이런 경지를 알겠는가!”

《장자(莊子)》가 말한 각자 각자의 시비표준이 있다는 것이 바로 이러한 상황을 가리키는 것이 아닌가!

屠者許方, 嘗擔酒二罌夜行, 倦息大樹下. 月明如晝, 遠聞嗚嗚聲. 一鬼自叢薄中出, 形狀可怖, 乃避入樹後, 持擔以自衛. 鬼至罌前, 躍舞大喜, 遽開飮. 盡一罌, 尙欲開其第二罌, 緘甫半啓, 已頹然倒矣. 許恨甚, 且視之似無他技, 突擧擔擊之, 如中虛空. 因連與痛擊, 漸縱弛委地, 化濃煙一聚. 恐其變幻, 更捶百餘. 其煙平鋪地面, 漸散漸開, 痕如淡墨, 如輕縠. 漸愈散愈薄, 以至於無, 蓋已澌滅矣.

余謂鬼, 人之餘氣也. 氣以漸而消, 故《左傳》稱新鬼大, 故鬼小. 世有見鬼者, 而不聞見羲軒以上鬼, 消已盡也. 酒, 散氣者也. 故醫家行血發汗, 開鬱驅寒之藥, 皆治以酒. 此鬼以僅存之氣, 而散以滿罌之酒, 盛陽鼓蕩, 蒸鑠微陰, 其消盡也固宜. 是澌滅於醉, 非澌滅於箠也. 聞是事時, 有戒酒者曰: “鬼善幻, 以酒之故, 至臥而受捶. 鬼本人所畏, 以酒之故, 反爲人所困, 沉湎者念哉!” 有耽酒者曰: “鬼雖無形而有知, 猶未免乎喜怒哀樂之心. 今冥然醉臥, 消歸烏有, 反其眞矣. 酒中之趣, 莫深於是. 佛氏以涅槃爲極樂, 營營者惡乎知之?” 《莊子》所謂“此亦一是非, 彼亦一是非”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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헌현(獻縣)의 한 농가에서 소가 기린을 낳았는데, 이를 본 농부가 놀란 나머지 기린을 때려 죽였다. 지현(知縣) 유징렴(劉徵廉)이 이를 거두어 장사지내고, 비석에 ‘견린교(見麟郊)’라 새겨 넣었다. 유징렴은 훌륭한 관리이기는 하나, 이 행동은 얼마나 비루한가! 기린은 본래 어진 짐승으로 실제 소의 종자와는 다르다. 송아지로 태어난 기린의 머리에 뿔이 있는 것은 비바람이 칠 때 교룡(蛟龍)과 감응했기 때문이다.

獻縣田家牛産麟, 駭而擊殺. 知縣劉徵廉收葬之, 刊碑曰: ‘見麟郊’. 劉固良吏, 此擧何陋也! 麟本仁獸, 實非牛種. 犢之麟而角, 雷雨時蛟龍所感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