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고대소설예술기법 36 소밀상간법疏密相間法

소밀상간법疏密相間法

【정의】

‘소밀상간법’은 중국의 전통 회화 기법 가운데 하나다. 이것은 단조롭고 판에 박은 듯한 구도를 피하기 위해 화가가 화면의 소밀疏密 관계를 유기적이고 변화가 풍부하게 처리하는 것을 말한다. 이른바 “말이 뛰어 놀 수 있을 정도로 성기고, 침 하나 용납할 수 없을 정도로 빽빽한 것疏可走馬, 密不容針”이다.

고대 소설의 작자들 역시 이 기법을 운용해서 결구를 안배하고 소재를 처리해, 이야기의 주요 정절과 인물 형상을 두드러지고 세밀하게 묘사하고 있다. 곧 이렇게 함으로써 이야기의 전체 구조가 상세한 부분도 있고 소략한 부분도 있으며 성긴 부분도 있고 빽빽한 부분도 있게 되어 변화로 생기가 넘치고, 전체적으로 통일된 느낌을 줄 수 있게 된다.

【실례】

당 전기 《훙셴 전紅線傳》은 결구나 포국, 제재 모두에 소밀상간의 수법을 채용했다. 작품에서 묘사하고 있는 것은 하녀 신분의 호협 훙셴紅線으로 금으로 만든 상자를 훔쳐내 번진 세력인 톈청쓰田承嗣와 쉐쑹薛嵩 간의 알력을 중지시키는 것이다. 여기서 중점적으로 묘사되고 있는 것은 훙셴이 ‘상자를 훔쳐내는’ 정절이다. 이것을 통해 훙셴의 호협적인 성격과 비범한 무예가 잘 드러나고 있다.

작자는 이 대목에서 훙셴이 길을 떠날 때 행장을 갖추는 것을 아주 세세하게 묘사했다. “머리는 오만계烏蠻髻 모양으로 빗어, 금작채金雀釵를 꽂고, 옷은 자주색 수를 놓은 짧은 저고리를 입고, 푸른 실로 만든 가벼운 신발을 신고, 가슴 앞에는 용무늬 비수를 차고, 이마에는 태을신太乙神의 이름을 썼다.” 훙셴의 행장은 일상적인 여행객의 그것과 다르기에 무언가 비범한 기운을 느끼게 해준다. 과연 훙셴의 이후 행적은 신행神行과 은신술 등 보통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는 현묘한 것이었다. 행역을 마친 훙셴이 쉐쑹에게 고하는 장면 역시 마찬가지다. 작자는 이 장면 역시 세세하게 작은 것도 놓치지 않고 묘사함으로써 그 당시 상황을 절절하게 전하고 있다.

하지만 상자를 다시 돌려보낼 때의 장면과 훙셴이 자신의 전생과 금생을 이야기하는 대목은 오히려 간략하게 묘사해 전자와 크게 대비된다. 작자는 여기서는 먹을 금과 같이 아껴가며惜墨如金 소략하게 묘사함으로써 훙셴의 행적을 두드러지게 하고 있는 것이다.

【예문】

당나라 루저우潞州 절도사 쉐쑹薛嵩의 집에 있는 하녀 훙셴紅線은 완함을 잘 타고 경전이나 사적에도 통하고 있어, 쉐쑹은 그녀로 하여금 서류와 문장을 담당하게 하고 칭호를 ‘내기실內記室’이라고 했다.

이때 군중에서는 큰 연회가 베풀어지고 있었는데, 훙셴이 쉐쑹에게 말했다.

“갈고의 소리가 매우 비통하게 들리는 것을 보니 저 갈고羯鼓를 치는 사람에게는 틀림없이 무슨 근심이 있는 모양이에요.”

쉐쑹도 평소 음률에 대해서 지식이 있었다.

“네 말이 맞다.”

그리고는 북 치는 사람을 불러서 물어보았다. 그 사람이 대답했다.

“저의 아내가 어제 저녁에 죽었습니다만 감히 휴가를 청하지 못했습니다.”

쉐쑹은 당장 그를 집으로 돌려보냈다.

이때는 바로 지덕至德 이후로 허난河南과 허베이河北의 싸움이 그치지 않은 때라, 조정에서는 푸양滏陽에 진을 치고 쉐쑹에게 명하여 그곳을 굳건히 지키고 산둥 지방을 통제하도록 했다. 서로 싸워서 죽거나 다친 터에 군부가 처음으로 창설되었기 때문에 조정에서는 쉐쑹의 딸을 웨이보魏博 절도사 톈청쓰田承嗣의 아들에게 시집을 보내게 하고, 또 쉐쑹의 아들은 화타이滑臺 절도사 링후장令狐彰의 아내로 맞게 함으로써 세 번진이 서로 인척관계가 맺어져 사자들이 열흘을 넘길세라 빈번히 왕래하였다.

그런데 톈청쓰는 일찍부터 폐병을 앓아 날씨가 더워지면 병세가 더욱 심해졌다. 그래서 항상 말했다.

“내가 만약 산둥 땅으로 진을 옮겨간다면 그곳의 시원한 공기를 마셔서 수년의 수명을 연장할 수 있을 텐데.”

마침내 그는 군중에서 무용이 뛰어난 군인 3천 명을 뽑아서 ‘외택남外宅南’이라 부르고 후하게 대우하면서 길렀다. 그리고 그 중에서 3백 명은 매일 밤 자기의 집에서 숙직을 서게 하는 한편, 좋은 날을 택하여 장차 루저우를 병탄하려고 했다.

쉐쑹이 이 소식을 듣고 밤낮으로 근심하며 중얼중얼 혼잣말만 되뇌고 있었지만 아무런 방책도 생각해 내지 못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밤, 시간은 벌써 물시계가 곧 초경을 알리려 했고, 영문營門은 이미 닫혔다. 쉐쑹은 그때까지 아직도 지팡이를 짚고 정원을 거닐고 있었다. 오직 훙셴 한 사람만 그의 뒤를 따르고 있었다. 이때 훙셴이 말했다.

“한 달 넘게 주인님께서 잠을 주무시나 식사를 하시나 늘 불안해하시고 무언가를 심각하게 생각하고 계시는데, 웨이보와의 변경 문제 때문이시지요?”

“이 일은 우리 루저우의 안위에 관한 것으로 네가 알 수 있는 일이 아니다.”

“제가 비록 비천한 몸이오나 주인님의 걱정을 풀어드릴 수가 있습니다.”

이 말을 듣고 쉐쑹은 그녀를 범상치 않게 여기고 말했다.

“네가 비범한 사람인 것을 몰랐다니 나는 정말 멍청했구나.”

그리고는 자기가 걱정하고 있는 일을 자세히 일러주었다.

“나는 조부님의 유업을 이어받고 또 국가의 막중한 은혜를 입고 있는데, 하루아침에 이 강토를 빼앗긴다면 곧 수백 년 동안 이어온 우리 집안의 공훈이 물거품이 되어버리고 말게 된다.”

“그 문제라면 간단해요. 주인님께선 조금도 걱정하실 게 없습니다. 저를 잠시 동안만 웨이 성魏城에 가서 그곳의 형세를 살피고 또 그들이 우리를 침공하려는 움직임이 있는지 여부를 알아보고 오도록 해주세요. 오늘밤 초경에 출발하여 5경이면 돌아와 복명할 수 있으니, 아무쪼록 먼저 한 명의 기마사자騎馬使者와 안부 편지 한 통만 준비해 두세요. 그리고 그밖의 일은 제가 돌아온 다음에 다시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렇지만 일이 만약에 성공하지 못하게 되면 오히려 그 화가 빨리 올 텐데 그렇게 되면 또 어떻게 하겠느냐?”

“제가 이번에 가는 일은 반드시 성공할 것입니다.”

훙셴은 내실로 들어가 행장을 갖추었다. 머리는 오만계烏蠻髻 모양으로 빗어, 금작채金雀釵를 꽂고, 옷은 자주색 수를 놓은 짧은 저고리를 입고, 푸른 실로 만든 가벼운 신발을 신고, 가슴 앞에는 용무늬 비수를 차고, 이마에는 태을신太乙神의 이름을 썼다. 그리고는 나와서 쉐쑹에게 정중히 인사를 하고 떠나가는데 순식간에 어디론지 사라졌다. 쉐쑹은 방으로 들어와 문을 닫고 등불을 뒤로 하고 단정히 앉았다. 평소에 술을 마시면 불과 몇 잔이면 그만이었는데, 이날 밤은 10여 잔을 마셔도 취하지 않았다.

그런데 홀연 새벽을 알리는 호각소리가 바람결에 들리고 나뭇잎 하나가 떨어지는 듯하여 놀라서 일어나 물었더니 바로 훙셴이 돌아온 것이었다. 쉐쑹은 기뻐하면서 그녀를 위로했다.

“일은 뜻대로 잘 되었느냐?”

“감히 하명을 욕되게 하지는 않았습니다.”

“살상은 없었느냐?”

“거기까지 이르지는 않았습니다. 다만 침상 머리에 있던 금으로 만든 상자를 증거물로 가지고 왔을 뿐입니다.”

훙셴은 이어서 자세한 경위를 설명했다.

“저는 어제 밤 자정 두 시간 전에 웨이 성에 도착해서 여러 관문을 통과해 마침내 톈청쓰의 침실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는 시위병들이 침실 낭아에서 쉬고 있었는데, 그들의 코 고는 소리가 마치 우레처럼 크게 들렸습니다. 그리고 중군의 졸병들은 정원을 오가며 바람이 일듯 구령을 전달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곧 왼쪽 방문을 열고 그의 침대 휘장 앞으로 갔습니다. 톈청쓰는 휘장 안에서 자빠진 북 모양으로 누워 깊은 잠에 빠져 있었습니다. 머리는 무늬가 있는 코뿔소 가죽 베개를 베고 있었고, 상투는 노란색 오글쪼글한 직물을 감고 있었으며, 베개 앞에는 칠성검 한 자루가 드러나 있었습니다. 그 검 앞에는 금으로 만든 상자 하나가 위쪽으로 열려 있었는데, 그 속에는 그의 생년 팔자와 북두신의 이름이 적혀 있었고, 또 이름 있는 향료와 아름다운 구슬들이 그 위에 어지럽게 덮여 있었습니다. 그런데 장군 막사 안에 있는 위세당당한 주인공은 천하태평 세상 모르고 훌륭한 방에서 깊이 잠들어 그의 생명이 제 손안에 달려 있는 것도 알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저는 그를 잡느냐 놓아주느냐 하는 문제로 고심하기보다는 오히려 슬픈 탄식만 더해 갈 뿐이었습니다.

이때 촛불은 희미해져 가고 향로의 향도 꺼져 가고 있었으며 시종하는 사람들은 사방에 깔려 있었고 무기는 어울려 진열되어 있었습니다. 그런데 시녀들은 어떤 이는 머리를 병풍에 기대고 늘어져서 코를 골기도 하고 또 어떤 이는 손에 수건과 털이개를 가린 채 몸을 쭉 뻗고 자기도 했습니다. 저는 그들의 비녀와 귀고리를 뽑기도 하고, 또 저고리와 치마를 서로 묶어 놓기도 했지만, 그들은 마치 병들거나 술 취한 사람들처럼 한 사람도 깨어나지 못했습니다. 그리고는 금으로 만든 상자를 갖고 돌아왔습니다. 웨이 성의 서문을 나서서 2백 리 길을 오는데, 높이 솟은 동작대가 보이고, 장수는 동쪽으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새벽 닭 울음소리가 들판에 퍼지고 기운 달은 수풀에 걸려 있었습니다. 분한 마음으로 갔다가 기쁜 마음으로 돌아오니 행역行役의 고통도 문득 잊어버렸습니다.

주인께서 알아봐 주시는 데 감사하고, 저에게 베풀어주신 은혜에 보답하며, 애오라지 저에게 부탁하신 뜻에 부응하기 위해 한밤중 세 시간 동안 7백 리를 왕복하였고, 경계가 삼엄한 구역으로 들어가 대여섯 개의 성문을 통과하면서 오직 저는 주인님의 근심을 들어 드리기를 바랐을 뿐인데, 어찌 감히 저의 노고를 입에 담겠습니까?”

쉐쑹은 곧 웨이 성으로 사자를 보냈다. 톈청쓰에게 보낸 편지에는 이렇게 쓰여 있었다.

“어제 밤에 어떤 손님 한 사람이 웨이 성에서 와서 원수님의 침상 머리에서 금으로 만든 상자 하나를 갖고 왔다고 말하기에 감히 여기에다 놓아 둘 수가 없어 삼가 봉해서 되돌려 보내드립니다.”

사자는 쏜살같이 달려 밤중이 되어서야 겨우 웨이 성에 도착했다. 도착해서 보니 그 금으로 만든 상자를 훔쳐 간 도적을 잡기 위해 전군이 발칵 뒤집혀 있었다. 이때 사자가 말채찍으로 대문을 두드리고 긴급 면회를 요청했다. 금으로 만든 상자를 돌려 받을 때 톈청쓰는 절도할 만큼 깜짝 놀랐다. 이윽고 사자를 자기 집안에 머물게 하고 아주 극진히 연회를 베풀어 환대하고 많은 선물을 내렸다.

그 다음날 뎬청쓰는 사자를 파견하고 비단 3만 필, 좋은 말 2백 필 그리고 그밖에도 여러 가지 진귀한 예물들을 쉐쑹에게 보냈다. 편지 답장에는 다음과 같이 적었다.

“나의 목숨은 은혜로운 그대의 생각에 달려 있습니다. 이제부터 나는 개과천선하여 다시는 그대에게 심려를 끼쳐드리지 않을 것이며, 오로지 그대의 지시만 따를 것이고, 삼가 사돈과 친하게 지내는 일만을 꾀하겠습니다. 그래서 그대가 행차할 때는 항상 수레의 앞뒤에서 채찍질을 하고 바퀴를 미는 마부와 같은 역할을 하겠습니다. 그리고 내가 조직해 놓은 ‘외택아’들은 본래 다른 도적을 방비하자는 것이었지 결코 다른 의도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들도 이제는 모두 무장을 해제시켜서 각기 그들의 농촌으로 돌려보냈습니다.”

이런 일이 있은 지 한 달 안에 허베이와 허난 사이에는 친선 사절들이 서로 내왕하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훙셴은 갑자기 쉐쑹에게 하직 인사를 하고 떠나가려고 했다. 그래서 쉐쑹이 말했다.

“너는 내 집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아왔는데 이제 와서 어디로 간단 말이냐? 또 지금은 너에게 의지하고 있는 형편인데 어찌 떠난다는 말을 입에 담을 수 있겠느냐?”

“저는 전생에 남자였습니다. 강호간을 떠돌아다니면서 공부를 했고, 신농씨의 의학서를 익혀서 세상 사람들을 병환으로부터 구제해 주었었는데 그때 마침 동네에 임산부 한 사람이 갑자기 고징蠱癥을 앓아서 제가 완화주莞花酒를 먹였더니 부인과 뱃속에 있던 쌍둥이가 다 죽어버렸습니다. 이는 제가 일거에 세 사람을 죽인 것이 되어 명부에서 저에게 벌을 내려 이 세상에서 여자로 태어나게 했으며 저의 몸은 천한 하녀로 살게 하고 기질은 범속하게 정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다행히도 주인님 댁에서 태어나 올해로 벌써 19년의 세월이 흘렀습니다. 그 동안 화려한 비단옷을 실컷 입었고 산해진미를 다 먹었으며 그 위에 주인님의 두터운 대우를 받았고 그 영화 또한 많이 누려 왔다고 하겠습니다. 더욱이 나라에는 황제가 새로 등극하여 경사가 한없이 많을 것인데, 이런 때 하늘을 거스르는 무리들은 이치상 모두 소멸되어야 마땅할 것입니다. 그래서 지난번에 웨이 성에 다녀옴으로써 은혜에 보답하였던 것입니다. 이제는 두 곳이 모두 성지를 보존하고 만백성이 모두 그 생명을 보전하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함으로써 난신에게는 두려움을 알게 하였고, 열사列士에게는 평화를 도모하게 하였으니 저와 같은 한 아녀자로서는 그 공 또한 적지 않습니다. 그래서 저의 전생의 죄를 속하고 본래 모습인 남성으로 돌아갈 수 있게 되었으니, 곧 이 속세를 떠나 마음을 물외에 두고 원기를 맑게 수양하여 장생불사해야겠습니다.”

“진정 네가 떠나야 한다면 내 천금의 돈을 들여 너에게 산중에 수도하는 집을 지어 주겠다.”

“이것은 내세에 관한 일인데 어찌 알고 주인님께서 미리 도모하실 수 있겠습니까?”

이에 쉐쑹은 그녀를 만류할 수 없다는 것을 알고 마침내 송별연을 크게 열고 빈객과 친구들을 모두 모이게 했다. 그날 저녁 대청에서 연회를 베푸는데 쉐쑹은 직접 노래 한 곡을 불러 훙셴에게 술을 권하려고 좌객 렁차오양冷朝陽에게 청하여 가사를 짓게 했다. 가사의 내용은 이러하였다.

노래를 다 부르고 나서 쉐쑹은 슬픔을 가누지 못했으며, 훙셴은 일어나서 절을 하며 눈물을 흘렸다. 그리고는 술에 취한 척 자리에서 떠나더니 마침내 어디론가 사라지고 말았다.( 《훙셴 전紅線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