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보태감三寶太監 서양기西洋記 통속연의通俗演義 제5회

제5회 마하살이 먼저 자발적으로 주인에게 돌아오고
가마아는 나중에야 본래 자리로 돌아오다
摩訶薩先自歸宗 迦摩阿後來復命 1

四月八日日遲遲 사월 초파일 낮은 길기만 한데
雨後熏風拂面吹 비 갠 후 훈훈한 바람 얼굴을 스치네.
魚躍亂隨新長水 물고기는 어지러이 뛰며 불어난 물길을 따라가고
鳥啼爭占最高枝 새들은 지저귀며 제일 높은 가지 차지하려 다투네.
紗厨氷簟難成夢 비단 휘장 속 얼음 같은 대자리 위에선 꿈도 꾸기 어렵고
羽扇綸巾漸及時 깃털 부채 들고 윤건(綸巾) 쓸 때가 점점 다가오네.
淨梵中天今日誕 정범왕(淨梵王)의 천중천(天中天)이 오늘 태어나셨으니
好將檀越拜階墀 시주들 계단 앞에 엎드려 절을 올린다네.

그러니까 벽봉장로는 남들이 왜 수염을 깍지 않느냐고 궁금해 해도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러나 말로는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나름대로 계산이 있었다. 경사롭게도 이날은 바로 사월 초파일 불상에 목욕을 시키는 날이어서, ‘벽봉회’에는 강설을 들으러 몰려든 사람들이 인산인해를 이루고 있었다.

‘오늘 중으로 머리는 깎고 수염은 기르는 이유를 해명하지 않으면 보물산에 들어갔다가 빈손으로 돌아오는 꼴이 되고 말겠구나.’

보라. 처음에 그는 벽봉회의 연화보좌(蓮花寶座) 위에 단정히 앉아 있었는데, 갑자기 금빛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그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여러 신도들은 그저 고개 숙여 큰절을 올리며 간청했다.

“스님의 불경 강설이 막 오묘한 곳에 이르러서 저희들은 그저 고해에서 구제되어 영원히 지옥을 밟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었습니다. 오늘 그 바람이 이루어질 수 있었지만 아직 끝나지 않았는데, 어찌하여 갑자기 떠나 버리신 겁니까? 엎드려 바라오니, 부디 돌아와주십시오!”

그 기원이 끝나기도 전에 길 가는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육화탑(六和塔) 위에 어느 나리가 앉아 계시는데, 온 몸에서 찬란한 금빛이 피어나는 것이 인간 세계에 내려오신 신선 같더구먼.”

불자들은 벽봉장로가 육호탑 위에 있다는 것을 알고 그저 경건하게 예배하고 염불을 하면서 간청할 따름이었다. 그러자 벽봉장로는 속으로 생각했다.

‘지금이야말로 저들에게 사실을 설명해 주기 좋은 기회로구나.’

이어서 한 줄기 금빛이 일어나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가 몸을 뒤집어 벽봉회의 연화보좌 위에 단정하게 앉아 있었다. 불자들이 한 목소리로 하소연했다.

“스님, 어이하여 저희 중생들을 버리셨습니까?”

“그대들이 줄을 어지럽게 서 있어서 내 눈이 흐려졌는지라 저 탑에 가서 잠시 눈을 씻고 왔노라.”

“어느 줄이 어지럽게 서 있사옵니까?”

“그대들 가운데 수염이 있는 사람과 없는 사람, 수염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들이 모두 한 곳에 서 있으니 어찌 어지럽지 않겠는가?”

“그럼 어떻게 나누어 서면 좋겠습니까?”

“수염이 있는 사람하고 없는 사람들이 각기 한 쪽으로 나누어 서도록 하라.”

불자들은 즉시 양쪽으로 나뉘어 수염이 있는 이들은 왼쪽에, 수염이 없는 이들은 오른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벽봉장로가 말했다.

“수염이 많은 사람과 적은 사람들도 각기 한 쪽으로 나누어 서도록 하라.”

불자들은 즉시 위아래로 나뉘어 수염이 많은 이들은 위쪽에, 적은 이들은 아래쪽에 자리를 잡았다. 그러자 벽봉장로가 말했다.

“잘 나누어 섰는가?”

“예!”

벽봉장로는 잠시 신통력을 부려놓고, 이렇게 물었다.

“저기 섬돌 왼쪽에 서 있는 이는 누구인가?”

모두들 고개를 돌려 바라보니 정말 섬돌 왼쪽에 성현이 한 분 서 있었다. 키는 열 자에 눈동자는 봉황 같고, 누에처럼 짙은 눈썹을 가진 그는 붉은 두건을 쓰고 아름다운 수염을 휘날리고 있었다. 벽봉장로가 물었다.

“그대는 어떤 성현이오?”

“삼국(三國)을 높이 들고 천하를 딛고 있는 이 몸을 사람들은 미염공(美髥公)이라 부르더이다.”

“그렇다면 돌아가도록 하시지요.”

그러자 “휘릭!”하는 소리와 함께 그 성현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벽봉장로가 또 물었다.

“저기 섬돌 오른쪽에 서 있는 이는 누구인가?”

사람들이 고개를 들어 보니 섬돌 오른쪽에도 성현이 한 분 서 있었다. 키는 열 자 정도에 얼굴은 푸르뎅뎅하고, 부리부리한 눈과 칼날 같은 눈썹을 한 그는 붉은 두건을 쓴 채 규룡(虯龍) 같이 덥수룩한 수염을 기르고 있었다. 벽봉장로가 물었다.

“그대는 어떤 성현이오?”

“한(漢)나라 말엽이 아니라 당(唐)나라 초기를 생각해 보시오. 모두들 나더러 규염객(虯髥客)이라 하더이다.”

“그렇다면 돌아가도록 하시지요.”

다시 한 번 “휘릭!”하는 소리와 함께 그 성현의 모습이 사라져 버렸다.

줄지어 서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외쳤다.

“아미타불, 공덕이 헤아릴 수 없나이다!”

그러자 벽봉장로가 말했다.

“아미타불이 아니라 한 분은 미염공이고 다른 한 분은 규염객이었지. 그래, 그대들 가운데는 어느 쪽이 더 대장부답게 생긴 것 같은가?”

“왼쪽의 수염 있는 쪽이 없는 쪽보다 더 대장부답게 생겼고, 위쪽의 수염이 많은 이들이 적은 이들보다 더 대장부답게 생겼습니다.”

벽봉장로는 사람들의 그 말을 듣자 한 손으로 자신의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다른 한 손으로 사람들을 가리키며 물었다.

“내 수염도 대장부처럼 보이는가?”

사람들은 그제야 꿈에서 깨어난 듯, 술에서 깨어난 듯 일제히 외쳤다.

“이제야 알겠습니다. 스님께서는 ‘수염을 길러 대장부임을 나타내려는’ 뜻이었군요!”

이것은 다섯 자로 된 대구(對句)에 지나지 않지만 만고의 역사에 길이 전해져서, 모든 이들이 벽봉장로가 번뇌를 없애기 위해 머리를 깎았지만 대장부임을 보이기 위해 수염을 길렀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名山閱萬古 명산은 만고의 세월을 겪었는데
明月來幾時 명월은 언제 왔던가?
顧遊屬中秋 나들이란 한가을에 하는 것
萬里雲霧披 온 세상에 운무가 퍼져 있지.
心閑境亦靜 마음이 느긋하니 사는 곳도 고요하고
月滿山不移 달빛은 산에 가득한 채 움직이지 않네,
況兹飛來峰 게다가 이 비래봉은
秀削淸漣漪 높고 빼어나게 솟아 발치에 맑은 물 찰랑거리지.
下有碧峰會 그 아래 벽봉회가 열리나니
颯颯仙風吹 산들산들 신선세계의 바람 불어오네.
主者碧峰老 회주는 벽봉장로인데
崑玉不磷緇 곤옥(崑玉)처럼 굳세고 고결하다네.
兹山暫寄逸 잠시 이 산에 머물며 노닐면서
所至琴且詩 거문고 타고 시를 읊었지.
削髮除煩惱 머리 깎아 번뇌를 없애고
躋彼仙翁毗 저 신선세계에 오른다네.
留鬚表丈夫 수염 길러 대장부임을 보이고
怡然大雅姿 기꺼이 고상한 자태 자랑한다네.
雲騈與風馭 구름 몰고 바람을 타고
來往誰可知 오가는 걸 누가 알랴?
但聞山桂香 산 속 계수나무 향기만 풍기고
繽紛落殘卮 고운 꽃잎 어지러이 떨어지네.
愧我羈軒冕 부끄러워라, 이 몸은 벼슬살이에 매여
妄意臯與夔 고요(皐陶)와 기(夔)의 뜻을 잊었다네.
那知涉幻境 어찌 알랴, 덧없는 인간세계에서는
百歲黍一炊 백년의 인생이 황량몽(黃粱夢)에 지나지 않음을?
風波世上險 세상에는 험한 풍파 일어도
日月壺中遲 술병 속의 세월은 느긋하게 흐르네,
何如歸此山 이 산에 귀의하여
相從爲解頤 그를 따라 기꺼이 사는 것만 못하리!
朝霞且沆瀣 아침노을과 항해(沆瀣)가 있고
火齊兼交梨 화제(火齊)와 교리(交梨)도 있다네.
晨夕當供給 아침저녁으로 먹으면
足以慰渴饑 갈증과 허기를 달래기에 충분하다네.
此事未易談 이런 일은 쉽게 말할 수 없거늘
聳耳聽者誰 귀 기울여 듣는 이 누구인가?
洗盞酹山靈 잔 씻어 산신령께 술을 올리나니
吾誓不爾欺 이 몸은 그대를 저버리지 않겠나이다.
天空萬籟起 하늘에서 만물의 소리 일어나니
爲奏塤與篪 질나발과 피리 부는 것 같네.

벽봉장로가 수수께끼에 대한 해답으로 대장부임을 보이기 위해 수염을 기른다는 사실을 밝히자 그 자리에 있던 불자들이 “아미타불!”을 외었을 뿐만 아니라 비사문과 삼막삼불타, 불파제와 니리타, 우바새와 우바이, 다라니와 여러 단월들, 승강과 승기, 차두, 반두, 채두, 화두, 정두까지 모두가 “아미타불!”을 외었다. 벽봉장로는 다시 예전처럼 연화대에 올라가 설법을 했고, 불자들도 예전처럼 강설을 들으며 귀의했다.

어느덧 세월이 흘러 추위가 지나고 더위가 찾아올 무렵 불경 강설이 오묘한 곳에 이르자 사람들은 저마다 이 법회가 무사히 끝나게 되리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어찌 알았으랴? ‘불문에는 끝남도 쉼도 없으니, 시시각각 물에 뜬 배처럼 흐르는 것[佛門無了又無休, 刻刻時時上水舟]’임을! 왜 그렇다는 것인가? 여러 불자들이 불사를 끝내려 할 때 신통력을 부려 불법의 힘을 보여주는 믿음[南無]이 나타났다.

벽봉장로가 윗자리에 앉아 있을 때 불자들은 좌우와 위아래의 네 무리로 나뉘어 줄을 서 있었다. 매일 불자들이 산문을 들어서서 자리에 앉을 때면 각자 품속에 비단 손수건을 넣고 있었는데, 날이 저물어 산문을 나갈 때면 모두들 그 손수건을 찾을 수 없게 되었던 것이다. 이 때문에 거리나 마을에서는 벽봉회에서 불경 강설을 듣다가 손수건을 잃어 버렸다는 얘기가 시끌벅적하게 퍼졌다. 그러니 ‘존장 앞에서 한 말은 전혀 맞지 않아도, 길거리 행인들의 말은 나는 듯이 빨리 퍼지는[尊前說話全無準, 路上行人口似飛]’ 격으로 그 말은 금방 벽봉장로의 귀에까지 들어갔다.

‘강설을 듣다가 비단 손수건을 잃어 버렸다는데, 그게 어디서 와서 어디로 사라진 걸까? 여기에는 분명 까닭이 있을 테니, 내일 진상을 밝혀 처리해야겠구나.’

이튿날 날이 밝자 불자들이 꿰인 생선들처럼 줄줄이 들어와서 좌우와 위아래로 무리를 나누어 앉았다. 벽봉장로는 불경의 구절에 대해 몇 마디 하다가 불자들에게 물었다.

“그대들 품속에 무엇이 들어 있는가?”

불자들이 황급히 각자의 품속에 든 물건을 꺼내 보니, 바로 어제의 그 손수건이었다.

“각자의 품속에 비단 손수건이 하나씩 있습니다.”

“비단 손수건이 맞는가?”

“예, 각자에게 하나씩 있습니다.”

“모두들 그걸 나에게 달라.”

불자들이 각자 자신의 손수건을 바쳤다.

“다들 자리에 앉으라.”

불자들이 예전처럼 네 무리로 나뉘어 앉자, 벽봉장로는 다시 불경에 대해 몇 마디 하다가 갑자기 물었다.

“지금 시간이 몇 시나 되었는가?”

왼쪽에 앉은 불자들을 이끄는 이가 바로 지재였는데, 그가 일어나 해시계 쪽으로 다가가 보니 오시(午時, 11~13시)가 끝나고 미시(未時, 13~15시)로 넘어가려 하고 있었다. 그가 돌아서서 시간을 알려주자 벽봉장로가 말했다.

“시간이 그리 되었다면 오늘 법회는 여기서 마쳐야겠구먼.”

그 말에 불자들이 자리에서 일어나 보니, 벽봉장로 앞에 놓여 있던 비단 손수건들이 또 보이지 않는 것이었다. 그러자 벽봉장로가 말했다.

“잠깐! 내가 그대들을 한 명씩 살펴보겠노라.”

벽봉장로가 지혜의 눈을 크게 뜨고 원신(元神)을 일으켜 산문 위에 서서 불자들을 하나하나 헤아리면서 각자 자신의 이름을 외치고 지나가게 했다. 그렇게 헤아리다가 다음 차례에 나타난 사람은 알고 보니 출가한 승려였다.

幾載棲雲祗樹林 몇 년 동안 기수(祗樹)의 숲에서 지냈던가?
琅琅淸梵發餘音 낭랑하게 불경 외는 소리 여운이 울리네.
三乘悟徹玄機妙 삼승(三乘)의 불법 깨달으니 현묘하기 그지없어
萬法通明覺海深 일체의 법을 환히 알아 바다의 깊음을 깨달았네.
玉麈揮時龍虎伏 옥진(玉塵)을 떨치니 용과 호랑이가 굴복하고
寶花飄處鬼神欽 보배로운 꽃 휘날리니 귀신들도 공경하네.
紅爐一點鵝毛雪 붉은 화로 떨어진 한 송이 눈처럼
消却塵襟萬慮心 속세의 마음에 담긴 온갖 근심 사라져 버렸네.

벽봉장로는 그 불자에게 어느 정도 신선의 기풍과 기개가 있는 것을 눈치 챘다.

‘틀림없이 이 작자가 농간을 부린 게로군!’

이에 그가 준엄하게 호통을 쳤다. 그야말로 이런 격이었다.

巫峽中霄動 무협이 한밤중에 요동치는 것은
滄江二月雷 창강의 이월에 우레가 치기 때문이지.
龍蛇不成蟄 용과 뱀은 숨지 못했는데
天地劃爭廻 천지를 갈라 다투어 돌아가게 하네.

벽봉장로가 사나운 기세로 다가오자 그 승려는 재빨리 도망치려 했다. 하지만 벽봉장로는 번쩍 금빛을 내쏘는가 싶더니 쌩 하고 쫓아갔다. 그런데 그 승려는 내달리는 게 아니라 날아갈 줄도 알았다. 벽봉장로는 날 줄도 구름이나 안개를 탈 줄도 몰랐지만, 한 줄기 금빛으로 변해 공중으로 내쏘았다. 그렇게 쫓아가니 그 승려도 어쩔 수 없었다. 그는 항주성 밖으로 도망치지 못하리라는 것을 알았지만, 눈앞에 몇몇 인가가 나타났다.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니 뽕나무 우거진 숲속에 작은 집이 하나 보였다. 울타리에는 두 짝 여닫이 대문이 달려 있고 높다란 틀이 하나 있었는데, 그 틀 위에 머리가 푸른 벌레들이 한 무리 모여 있었다. 그 벌레들의 모양은 이러했다.

吐絲不羨蜘蛛巧 실을 토하는 건 거미의 재주 부럽지 않고
飼葉頻催織女忙 먹을 잎 달라 재촉하여 베 짜는 여인 바쁘게 하네.
三起三眠時化運 세 번 깨고 세 번 잠들어 때맞춰 변신하고
一生一死命天常 한 번 태어나 한 번 죽으니 하늘의 도리에 운명 맡기네.

알고 보니 그것은 베 짜는 여인이 기르는 누에였다. 누에들은 각기 머리에 실타래를 이고 있었는데, 그 모양은 이러했다.

小小彈丸渾造化 조그마한 탄환에 조물주의 솜씨 섞여 있어
一黃一白色相當 노랗고 하얀 색깔 서로 어울려 있네.
待看獻與盆繅後 고치를 바치고 고치 켜진 뒤에는
先與吾皇織袞裳 먼저 우리 황제께 곤룡포를 짜 드려야지.

알고 보니 누에들이 짠 고치였던 것이다. 그 승려는 몸을 흔들어 누에로 변신하여 그치 안으로 들어가 앉아 있었다.

벽봉장로도 그런 것은 오래 전에 익히고 있던 것인지라 몸을 뒤집어 쫓아 들어갔다. 그런데 따라잡기도 전에 어느 선사(禪師)를 만나게 되었다. 그 선사가 물었다.

“그대는 누구신가?”

“벽봉이라 하옵니다.”

“여긴 무슨 일로 왔는가?”

“조금 전에 어느 승려 하나가 신통력을 부려 장난을 쳐서, 그를 쫓아오다 보니 이렇게 실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 승려는 바로 떠났네.”

“스님께서는 법호(法號)가 어찌 되시는지요? 그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혜달(慧達)이라고 하네.”

“그런데 무슨 일로 고치 안에 살고 계십니까?”

“낮에는 높은 탐에 앉아 설법을 하고, 밤이면 누에고치를 빌려 잠을 잔다네.”

“설법을 왜 굳이 탑 위에서 하십니까?”

“구름 걸린 높은 벼랑은 두드리지 않아도 저절로 소리를 내는 법이지.”

“왜 누에고치 안에서 주무십니까?”

“돌로 지은 집이든 쇠로 만든 정원이든 그림자를 남길 형체가 없는 법이지.”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벽봉장로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온 몸에서 금빛을 피우며 공중으로 날아올라 지혜의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았다. 그러자 서호 옆 육선공(陸宣公)의 사당 왼쪽에 작은 잡화점이 하나 보였다. 가게 안에는 반질반질하게 붉은색을 칠한 두 개의 진열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새하얗고 마디가 있으며, 구멍이 있는 과일이 쌓여 있었다. 그 과일의 모양은 이러했다.

家譜分從泰華峰 족보는 태화봉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氷姿不染俗塵紅 고결한 자태에 속세의 때 묻지 않았네.
體含春繭千絲合 몸 안에 봄날 누에 명주 천 가닥 품었고
天賦心胸七竅通 타고난 마음에 일곱 개 구멍이 통했네.
入口忽驚寒凛烈 입에 넣으면 서늘한 맛에 깜짝 놀라고
沾唇猶惜玉玲瓏 입술 적신 영롱한 옥 같은 그 살이 아깝구나.
暑天得此眞風味 여름날 이 진정한 맛을 얻으니
獻納須知傍袞龍 바치게 되면 곤룡포 만드는 일 도우리라는 걸 알리라.

알고 보니 그것은 연뿌리[藕]였다. 그 승려는 신통력을 부려 재빨리 그 연뿌리의 구멍 안에 들어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신통력으로 어찌 벽봉장로의 지혜로운 눈을 속일 수 있겠는가? 과연 벽봉장로는 휙 하며 그 연뿌리의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승려를 잡기도 전에 또 안쪽에서 어느 선사를 만났다.

“그대는 누구인가?”

“벽봉이라 하옵니다.”

“여긴 무슨 일로 왔는가?”

“조금 전에 어느 승려 하나가 신통력을 부려 장난을 쳐서, 그를 쫓아오다 보니 이렇게 실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 승려는 바로 떠났네.”

“스님께서는 법호(法號)가 어찌 되시는지요? 그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아수라(阿修羅)라고 하네.”

“그런데 무슨 일로 연뿌리 구멍 속에 살고 계십니까?”

“제석(帝釋)과 싸우다가 져서 돌아가는 길에 여기에 숨어 있게 되었네.”

“어쩌다가 싸움에서 지셨습니까?”

“하늘 높이 나는 비둘기는 사나운 머리가 아홉 개이고, 세상을 지키는 나타(那咤)는 팔이 여덟 개라네.”

“연뿌리 구멍 속은 잠자리가 편합니까?”

“일곱 개 구멍 끊어지면 범인(凡人)도 성인도 죽기 마련이고, 열 개의 몸[十身]이 끝나면 무량국토(無量國土)와 같아지는 법이지.”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벽봉장로는 그 말을 마치자마자 온 몸에서 금빛을 피우며 공중으로 날아올라 지혜의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았다. 그러자 서호 옆 육선공(陸宣公)의 사당 왼쪽에 작은 잡화점이 하나 보였다. 가게 안에는 반질반질하게 붉은색을 칠한 두 개의 진열대가 놓여 있었는데, 그 위에 새하얗고 마디가 있으며, 구멍이 있는 과일이 쌓여 있었다. 그 과일의 모양은 이러했다.

家譜分從泰華峰 족보는 태화봉에서 갈라져 나왔는데
氷姿不染俗塵紅 고결한 자태에 속세의 때 묻지 않았네.
體含春繭千絲合 몸 안에 봄날 누에 명주 천 가닥 품었고
天賦心胸七竅通 타고난 마음에 일곱 개 구멍이 통했네.
入口忽驚寒凛烈 입에 넣으면 서늘한 맛에 깜짝 놀라고
沾唇猶惜玉玲瓏 입술 적신 영롱한 옥 같은 그 살이 아깝구나.
暑天得此眞風味 여름날 이 진정한 맛을 얻으니
獻納須知傍袞龍 바치게 되면 곤룡포 만드는 일 도우리라는 걸 알리라.

알고 보니 그것은 연뿌리[藕]였다. 그 승려는 신통력을 부려 재빨리 그 연뿌리의 구멍 안에 들어가 숨어 있었던 것이다.

하지만 이런 정도의 신통력으로 어찌 벽봉장로의 지혜로운 눈을 속일 수 있겠는가? 과연 벽봉장로는 휙 하며 그 연뿌리의 구멍 속으로 들어갔다. 그런데 그 승려를 잡기도 전에 또 안쪽에서 어느 선사를 만났다.

“그대는 누구인가?”

“벽봉이라 하옵니다.”

“여긴 무슨 일로 왔는가?”

“조금 전에 어느 승려 하나가 신통력을 부려 장난을 쳐서, 그를 쫓아오다 보니 이렇게 실례를 범하게 되었습니다.”

“그 승려는 바로 떠났네.”

“스님께서는 법호(法號)가 어찌 되시는지요? 그 일에 대해 좀 더 자세히 말씀해 주십시오.”

“나는 아수라(阿修羅)라고 하네.”

“그런데 무슨 일로 연뿌리 구멍 속에 살고 계십니까?”

“제석(帝釋)과 싸우다가 져서 돌아가는 길에 여기에 숨어 있게 되었네.”

“어쩌다가 싸움에서 지셨습니까?”

“하늘 높이 나는 비둘기는 사나운 머리가 아홉 개이고, 세상을 지키는 나타(那咤)는 팔이 여덟 개라네.”

“연뿌리 구멍 속은 잠자리가 편합니까?”

“일곱 개 구멍 끊어지면 범인(凡人)도 성인도 죽기 마련이고, 열 개의 몸[十身]이 끝나면 무량국토(無量國土)와 같아지는 법이지.”

“가르침에 감사합니다.”

그 말을 마치자마자 벽봉장로는 온 몸에서 금빛을 피우며 공중으로 날아올라 지혜의 눈을 크게 뜨고 살펴보았다. 그러자 서호 북쪽 보석산(寶石山)에 이런 모습이 보였다.

높고 큰 소리 울려
사방이 어둑해지고
붉은 기운 하늘을 찔러
검은 연기 해를 가리고
바람소리에 불길 거세게 일어나네.
공중에 수많은 황금 뱀들이 내달리는 듯
열기는 세차게 치솟고
온 땅에 수많은 불덩이들이 굴러다니니
산에는 초목이 없이 붉은 흙만 쌓여 있네.
순식간에 수많은 건물들 한꺼번에 무너지며
물은 들끓고 숲은 말라
잠깐 사이에 수많은 대문들 쓰러져 버리나니
옥석을 가리지 않네.
곤강(崑岡)의 통곡소리 들판에 전해지니
재앙이 물고기와 새우에게도 미치고
뜨거운 바다가 하늘 밝히는 불길의 재앙 퍼뜨리니
항우가 함양을 불태우는 듯하고
염주(炎洲)의 불꽃처럼 거침없이 타올라
목동이 진(秦)나라의 무덤을 태우는 듯하네.
애처롭구나, 상군(上郡)의 불꽃이여!
알백(閼伯)은 상구(商丘)에서 대화(大火)에 대한 제사를 맡았지.
옥 그릇[瓘]이나 청동 술잔[斝]으로 제사지낼 수 있는 일이 아니나니
송(宋)나라 제후의 희첩은 박사(亳社)의 징조에 따라 요절했지.
뉘라서 흙을 퍼 날라 방비할 수 있었으랴!
놀랍게도 둥근 연못처럼 환하게 불타버렸지.
미축(糜竺)의 재물도 사라져 버릴 뻔했고
놀랍게도 무기고에 불이 났지만
임공(臨邛) 땅엔 우물도 부엌도 남아 있지 않게 되었다네.
제갈량이 적벽에서 위나라 군대를 무찌른 것은 아니지만
강릉(江陵)의 길을 끊고 바람 돌려 큰비 내리게 한 이 없다네.

一聲響亮, 四塞昏沉.
紅氣撲天, 黑烟障日.
風聲刮雜, 半空中走萬萬道金蛇.
熱氣轟騰, 遍地裏滾千千團烈焰.
山童土赤, 霎時間萬屋齊崩.
水沸林枯, 一會裏千門就圮.
無分玉石, 崑岡傳野哭之聲.
殃及魚蝦, 炎海播燭天之禍.
項羽咸陽, 肆炎洲之照灼.
牧童秦冢, 慘上郡之熒煌.
閼伯商丘之職, 非瓘斝之能禳.
宋姬亳社之妖, 誰畚梮以爲備.
訝圓淵之灼昭, 糜竺之貨財殆盡.
驚武庫之焚蕩, 臨邛之井竈無存.
雖不是諸葛亮赤壁鏖兵, 却沒個劑江陵返風霈雨.

이날의 불은 너무 엄청났다. 벽봉장로가 지혜의 눈을 뜨고 보니 그 승려가 신통력을 부려서 시뻘건 불길 속에 숨어 있는 것이었다. 벽봉장로도 노기가 치밀어 금빛을 번쩍이는가 싶더니 한 손으로 보숙탑(保俶塔)을 집어 들며 그 위에 얹혀 있던 아홉 개의 생철반(生鐵盤)까지 가져와 왼손에서 오른손으로, 오른손에서 왼손으로 옮겨 잡으면서 주물러 선장(禪杖) 모양으로 만들었다. 아홉 개의 생철반은 주물러서 아홉 개의 쇠 고리로 만들었으니, 이것이 바로 벽봉장로가 평생 동안 사용하던 구환석장(九環錫杖)이다. 이를 증명하는 시가 있다.

九節蒼蒼碧玉同 푸릇한 아홉 마디는 벽옥 같은데
隨行隨止伴禪翁 길을 갈 때나 쉴 때나 스님과 함께 했네.
寒蹊點雪鳩頭白 추운 길 눈 위에 비둘기 머리처럼 하얀 점을 찍고
春徑挨花鶴膝紅 봄날 오솔길에선 지팡이 옆의 꽃이 학 무릎처럼 붉었지.
縮地一從人去後 축지법을 부려 사람이 떠난 뒤
敲門多在月明中 대문 두드릴 때는 대개 달 밝은 밤이었지.
扶危指佞兼堪用 위태로울 때 도와주기도 하고 사악한 무리 다스리기도 하니
亘古誰知贊相功 예로부터 누가 알까, 공을 세우는 데 도움이 되었음을?

벽봉장로는 이 구환석장을 쥐고 눈으로 잘 살피더니 손에서 미끄러지듯 휙 던져서 그 불꽃을 향해 매섭게 후려쳤다. 그리 세게 후려친 것도 아니었는데 재가 날리고 연기가 사라지면서 하늘이 걷히고 공기가 맑아졌다. 이제 날아 도망칠 곳이 없어진 그 승려는 납작 엎드려 합장을 한 채 땅바닥에 두 무릎을 꿇고 애원했다.

“사부님, 사부님, 이 제자를 구제해 주십시오!”

“너는 누구인데 감히 내 법회에서 신통력을 부려 불법의 힘을 매도했느냐?”

“다시는 그러지 않겠습니다.”

“법회에서 손수건이 없어지게 한 것도 네 짓이었더냐?”

“예.”

“저번에도 법회에서 가죽들이 많이 없어졌다고 하던데, 그것도 네 짓이었더냐?”

“예.”

“그런 못된 짓을 저질렀으니 내 석장으로 한 대 맞아야 되겠구나!”

그가 막 석장을 들어 올렸으나 그 승려의 말이 더 빨랐다.

“사부님, 잠깐만요! 이 덕분에 제가 깨달음을 얻었습니다.”

“무얼 깨달았다는 게냐?”

“옛날에 대지선사께서 이 법회에서 《법화경》을 강설하셨을 때는 목소리가 너무나 맑고 느긋하여 듣는 이들이 감동하여 피곤함을 잊게 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오늘 사부님께서 강설하실 때에도 목소리가 그와 비슷해서 듣는 이들이 감동하여 피곤함을 잊게 해 주셨으니, 어찌 정말로 가죽을 잃은 것이겠습니까? 또 듣는 이들의 고단함을 잊게 해 주셨으니, 어찌 정말로 비단 손수건을 잃은 것이겠습니까?”

이 말은 제법 그럴듯해서 벽봉장로도 무척 기분이 좋았다.

“그럴 듯한 말이긴 하지만 피곤하다고 할 때의 ‘피’와 가죽의 ‘피’, 고단하다고 할 때의 ‘권’과 비단의 ‘견’은 다른 것이지 않느냐?”

“그렇긴 합니다.”

“어쨌든 ‘피곤’이라는 두 글자는 제법 잘 풀이했구나. 그런데 네가 나를 ‘사부’라고 부르는데, 이 글자들에는 무슨 뜻이 들어 있는지 아느냐?”

“그 말은 남해 보타낙가산에서 가져온 것입니다.”

“왜 그렇다는 것이냐?”

“보타산에서 비단 주머니에 담긴 계획을 받고, 사부님을 따라 인간 세계에 내려오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비단 주머니니 뭐니 하는 건 나도 기억하지 못한다. 그나저나 그 비단 주머니 안에는 무슨 내용이 들어 있더냐?”

“딱 세 글자만 들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더냐?”

“바로 ‘하늘이 눈을 뜨다.[天開眼]’입니다.”

“그걸 어디다 쓰는 것이더냐?”

“인간 세상에 태어나는 데에 쓰는 것입니다.”

“정말 ‘하늘의 눈[天眼]’ 위에 살았다는 것이냐?”

“눈을 뜰 방법을 찾지 못해서 얼마나 많은 우여곡절을 겪었는지 모릅니다!”

“그래, 나중에는 어찌 되었느냐?”

“남선부주를 여러 차례 드나들며 샅샅이 찾았지만 눈을 뜰 방도를 찾지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이곳 항주에서 서북쪽으로 이삼백 리쯤 떨어진 곳에서 어느 산을 보았습니다. 높이는 삼천구백 길[丈]이 넘고 둘레가 팔백 리 남짓 되는데, 거기 있는 두 개의 봉우리에 각기 연못이 하나씩 있었습니다. 봉우리 가운데 하나는 임안현(臨安縣)에서 관할하고, 다른 하나는 우잠현(於潜縣)에서 관할하고 있습니다. 두 봉우리가 동서로 마주보고 있는데, 물이 가득 차서 일렁이는 것이 꼭 눈동자 같아서 천목산(天目山)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이게 바로 ‘하늘이 눈을 뜬’ 게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게다가 도교의 책에 따르면 이 산에는 서른네 번째 동천(洞天)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증거가 있느냐?”

“이걸 증명하는 시가 있습니다.”

“그게 어떤 시이더냐?”

“송나라 때 공풍(巩豊)이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我來將値日午時 도착해 보니 정오 무렵이 되어 가는데
雙峰照耀碧玻璃 두 개의 봉우리 푸른 유리처럼 빛나네.
三十四天餘福地 서른네 번째 선경(仙境)에는
上中下池如仰箕 상중하 연못들이 기수(箕宿)를 우러르는 듯하네.
人言還有雙徑雄 이 외에도 웅장한 두 개의 산길이 있다지만
勝處豈在阿堵中 빼어난 곳이 어찌 여기에 있으랴!
兩泓秋水淨於鑒 가을 물 일렁이는 두 호수는 거울보다 깨끗하고
恢恢天眼來窺東 드넓은 하늘의 눈이 동쪽에서 지켜보네.

벽봉장로가 물었다.

“비단 주머니 속에 적힌 글이 가리키는 곳을 찾고 나서 어느 곳에서 사람의 몸을 빌려 태어났느냐?”

“그 산발치에 사는 은(鄞)씨 성을 가진 어르신의 집에서 사람의 몸을 빌려 태어났습니다.”

“그러면 출가는 어디에서 한 것이냐?”

“그 산 서쪽에 있는 보복사(寶福寺)에서 출가했습니다.”

“네 법명은 무엇이냐?”

“저는 날아다닐 수 있고 바람과 비를 부를 수도 있기 때문에 ‘비환(飛唤)’이라는 법명을 갖게 되었습니다.”

“법명으로는 어울리지 않는구나. 그래, 서천에 있을 때는 뭐라고 불렸느냐?”

“마하살이라고 불렸습니다.”

“너 혼자만 있었더냐?”

“가마아라는 제자가 있었습니다.”

“그 아이는 지금 어디 있느냐?”

“그 아이도 보타산에서 비단 주머니를 하나 받았습니다.”

“그 아이 주머니에는 무슨 글이 들어 있더냐?”

“거기에는 다섯 글자가 들어 있었습니다.”

“그게 무엇이냐?”

“바로 ‘기러기도 날아가지 못하는 곳[雁飛不到處]’이었습니다.”

“그걸로 어떻게 인간 세계에 내려올 곳을 찾았느냐?”

“그 아이도 남선부주를 여러 차례 돌며 샅샅이 찾아다녔습니다.”

“그래 거기가 어디더냐?”

“바로 온주부(溫州府)에서 동북쪽으로 백 리쯤 떨어진 곳에 산이 하나 있었습니다. 높이는 사십 리쯤 되는데, 동쪽으로 온령(溫嶺)과 이어지고 서쪽으로는 백암(白巖)과 인접해 있고, 남쪽에는 옥환현(玉環縣), 북쪽에는 괄창산(括蒼山)이 있습니다. 그 꼭대기에 폭이 십 리 정도 되는 호수가 하나 있는데, 항상 물이 마를 날이 없어서 봄에 기러기가 돌아갈 때 대개 여기서 묵어갑니다. 그래서 산 이름이 안탕산(雁蕩山)인데, 그 아이는 거기가 바로 ‘기러기도 날아가지 못하는 곳’이 아닐까 생각했습니다.”

“조금 전에 봄이면 기러기가 돌아갈 때 들른다고 했는데, 왜 ‘기러기도 날아가지 못하는 곳’이라고 여긴 것이더냐?”

“하하, 그게 바로 ‘거꾸로 돌아가서 간략하게 말하는 것[將以反說約也]’이 아니겠습니까?”

“그건 유가(儒家)에서 한 말이 아니더냐?”

“하하, 유가와 불가, 도가가 결국 ‘하나의 흐름[同流]’ 속에 있는 게 아니겠습니까?”

“훌륭한 말이로구나. 하지만 그곳이 안탕산을 가리킨다는 것을 어찌 증명할 수 있겠느냐?”

“그것도 증명하는 시가 있습니다.”

“어떤 시가 있다는 게냐?”

“왕십붕(王十朋)이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歸雁紛飛集澗阿 돌아가는 기러기 분주히 날아 굽은 계곡에 모이며
不貪江海稻粱多 곡식 많은 강과 바다를 탐하지 않네.
峰頭一宿行窩小 산꼭대기에서 하룻밤 묵어가기엔 둥지가 작지만
飮啄偏堪避網羅 마시고 먹어도 사냥꾼의 그물 피할 수 있다네.

그리고 임경희(林景熙)는 이런 시를 남겼습니다.

驛路入芙蓉 역의 길은 부용꽃 속으로 들어가고
秋高見旱鴻 높은 가을하늘에 뭍을 나는 기러기 보인다.
蕩雲飛作雨 쓸린 구름은 날아가 비가 되고
海日射成虹 바다의 햇빛은 무지개를 만들었구나.
一水通龍穴 한 줄기 강물은 용의 동굴로 통하고
諸峰盡佛宮 봉우리마다 절이 숨겨져 있구나.
如何靈運屐 어찌하면 등산화 신은 사람들
不到此山中 이 산속에 오지 않게 할 수 있을까?

벽봉장로가 말했다.

“비단 주머니 속의 글이 가리키는 곳을 찾았다면, 그 아이는 어디에서 인간의 몸을 빌려 태어났느냐?”

“산발치의 동(童)씨 성을 가진 어르신의 집에서 태어났습니다.”

“그 아이는 어디에서 출가했느냐?”

“동내곡봉(東內谷峰)의 백운사(白雲寺)에서 출가했습니다.”

“법명은 무엇이냐?”

“그곳 지명이 동내곡이고 절 이름이 백운사라서 양쪽의 의미를 다 담아서 ‘운곡(雲谷)’이라고 지었습니다.”

“그 얘기를 어디서 들었느냐?”

“이런 말이 있지 않습니까?

風送水聲來枕畔 바람은 물소리를 베갯맡으로 전해오고
月移山影到牀前 달이 옮겨 가니 산 그림자가 침상 앞으로 오네.

“알고 보니 네가 그 아이를 만났던 모양이구나?”

비환이 다시 이렇게 읊조렸다.

曾遊松下路 소나무 아래 길을 가다
看見洞中天 동굴 속의 하늘을 보았네.

“먼저 깨우친 이가 뒷사람을 깨우쳐주고, 자신의 이익을 챙겼으면 남을 이롭게 해 줘야 하는 법이니, 어서 가서 제자를 데려오너라.”

“깨닫는 것은 자신에게 달렸지만 그걸 인증해주는 것은 스승에게 맡긴다고 했으니, 그럼 다녀오겠습니다.”

과연 ‘비환’이라는 이름이 무색하지 않게 그는 말을 마치자마자 바로 떠났다. 공중에 휭 하니 바람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어느새 그는 안탕산에 도착했다. 그리고 그곳에 있는 열여덟 개의 절을 돌아다니고, 동쪽의 온령과 서쪽의 백암, 남쪽의 옥환현과 북쪽의 괄창산을 한 바퀴 돌아 다시 동외곡(東外谷)의 다섯 개 산봉우리와 동내곡의 마흔여덟 개 봉우리, 서내곡의 스물네 개 봉우리와 서외곡의 스물다섯 개 봉우리를 샅샅이 뒤졌다. 이어서 대룡추(大龍湫)와 세룡추(細龍湫), 상룡추(上龍湫)와 하룡추(下龍湫)까지 살펴보았으나 제자의 모습을 찾을 수 없었다.

‘사부님께서 제자를 찾아오라고 하셨는데, 찾지 못하면 드릴 말씀이 없잖아?’

그는 다시 그 열여덟 개의 절을 찾아갔다. 영암사(靈巖寺)를 지나자 능인사(能仁寺)가 나타났는데, 고개를 들어 살펴보니 그래도 상당히 훌륭한 동천복지(洞天福地)여서, 상서로운 구름이 유유히 흐르고 상서로운 기운이 무성히 피어나고 있었다.

비환이 안으로 달려가서 구불구불 모퉁이를 돌아가니 수도원이 나타났는데, 대문 위의 현판에는 ‘서산도원(西山道院)’이라고 적혀 있었다. 그 안으로 들어가니 선방(禪房)이 하나 있었고, 그 양쪽에 몇 명의 승려들이 있었다. 비환이 인사하며 물었다.

“운곡이라는 제 제자를 찾고 있는데, 여기 있습니까?”

하지만 승려들은 모두 아무 말도 없이 앉아 있는 것이었다. 그 대신 안쪽에서 어느 노승이 대답했다.

“대룡추를 지나 몇 리를 올라가면 상룡추가 나오는데, 그곳 암벽 중간에 동굴이 하나 있소. 운곡은 바로 거기에 있소.”

그 말을 듣자 비환은 마치 ‘공중에 돌이 서고, 불길이 물을 향해 타는[石從空里立, 火向水中焚]’ 듯한 기분이었다. 그가 다시 인사를 하고 한 줄기 바람이 되어 대룡추를 지나 상룡추로 올라가 보니, 높이가 몇 천 길이나 되어 보이는 폭포가 쏟아지고 있었다. 그리고 과연 괴이한 돌이 층층이 쌓인 암벽 중간에 폭이 여덟 자나 아홉 자쯤 되어 보이는 조그마한 동굴이 하나 있었다. 동굴 밖에는 기화이초들이 가득했고, 동굴 안에는 돌로 만든 걸상과 침상이 놓여 있었다. 비환이 죽 둘러보았으나 거기에는 운곡이 없었다.

‘기어이 찾고 말겠어!’

곰곰이 생각하며 주위를 둘러보는데, 동굴 문 위쪽에 몇 줄 글이 희미하게 적혀 있었다. 자세히 살펴보니, 칠언으로 된 여덟 구의 시였다.

蓬島不勝滄海寒 봉래도(蓬萊島)에서는 바다의 추위 견딜 수 없는데
巨鰲擎出九泉關 거대한 자라가 저승의 자물쇠 들고 나오네.
洞中靈怪十三子 동굴 속 신령하고 괴이한 신선이 열셋이라
天下瑰奇第一山 세상에서 가장 기이하고 아름다운 산일세.
棹曲浩歌蒼靄外 자욱한 구름 밖에서 뱃노래 호탕하게 부르고
幔亭高宴紫霞間 자줏빛 노을 속에서 만정(幔亭)에 모여 고상한 잔치 벌이네.
金芽自蛻詩人骨 귀한 찻잎에 저절로 허물 벗어 시인의 기골이 드러나는데
何必神丹煉大還 기사회생의 신령한 단약 만들 필요 있으랴!

이 시를 읽고 나자 비환은 나름대로 생각이 들었다.

‘제자는 찾을 수 없고 남긴 시만 찾았구나. 이거라도 찾았으니 사부님께 돌아가서 말씀드릴 증거가 되겠지.’

그는 이 칠언시를 잘 기억해두고, 휙 하는 바람소리와 함께 어느새 항주성으로 돌아와 벽봉장로에게 보고했다.

이 칠언시에 무슨 의미가 담겨 있는지, 벽봉장로가 이 칠언시를 어떻게 해석하는지에 대해서는 다음 회를 보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