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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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원현(淸苑縣)의 장월(張鉞)이 일찍이 하남성(河南省) 정주(鄭州)에서 벼슬살이 할 때 관아에 오래된 뽕나무가 있었는데, 두 사람이 양팔로 껴안아도 남을 정도로 그 크기가 컸다. 사람들이 뽕나무에 신이 살고 있다고 하자, 장월은 이를 꺼림칙하게 여겨 뽕나무를 베어버렸다. 그 날 저녁 장월의 딸이 등불아래 한 사람이 서 있는 것을 보았다. 이 사람은 얼굴뿐만 아니라 손, 발 그리고 의복까지도 모두 짙은 녹색 빛을 띠고 있었다. 그가 장월의 딸에게 이렇게 소리쳤다.

“네 아비가 함부로 권력을 휘둘렀으니 내 잠시 너를 다스려 그에게 경고하겠다!”

딸이 깜짝 놀라 고함을 치자 하인들이 달려왔으나, 이미 정신이 나간 뒤였다. 후에 그 딸은 태복(太僕) 과선주(戈仙舟)에게 시집갔으나, 얼마 지나서 죽었다. 귀신을 몰아내고 음사(淫祠)를 부수는 것은 적량공(狄梁公)이나 범문정공(范文正公)등과 같은 사람의 일이거늘! 덕행이 진실로 부족하면서 요괴를 이기려 한다면 실패하지 않는 경우가 드물다.

淸苑張公鉞, 官河南鄭州時, 署有老桑樹, 合抱不交. 云棲神物, 惡而伐之. 是夕, 其女燈下睹一人. 面目手足及衣冠, 色皆濃綠, 厲聲曰: “爾父太橫, 姑示警於爾!” 驚呼媼婢至, 神已癡矣. 後歸戈太僕仙舟, 不久下世. 驅厲鬼, 毁淫祠, 正狄梁公ㆍ范文正公輩事! 德苟不足以勝之, 鮮不取敗.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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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문민(錢文敏) 공이 말했다.

“하늘의 화복은 군왕이 내리는 상벌과 다른 것입니까? 귀신의 감찰은 관리가 심의하여 내린 결론과 다른 것입니까? 지금 여기 탄원서가 있다고 합시다. ‘아무개는 입신함에 결점도 없고, 관리로서의 공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집의 방향이 나쁘고 불길한 날에 집을 지었으니, 마땅히 유배시켜야 합니다.’

담당 관리는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까? 아니면 반박해야 합니까? 또 추천서가 있다고 합시다.

‘아무개는 입신함에 흠이 많고, 관리로서의 공적도 없습니다. 그러나 좋은 방향에 집을 얻고, 길일에 집을 지었으니, 마땅히 승진시켜야 합니다.’

담당 관리는 이를 받아들여야 합니까? 아니면 반반해야 합니까? 관리들이 반박한 것을 귀신이 받아들일 것이라 생각하십니까? 따라서 저는 양택설(陽宅說)은 근본적으로 옳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전선생의] 비유는 아주 명확해서 풍수가들에게 물어도 반박할 수 없을 것이다.

그러나 내가 본 바에 따르면 흉가는 확실히 있다. 도성의 맞은편에 있는 급고사도(給孤寺道) 남쪽에 집이 한 채 있는데, 나는 그 집에 다섯 차례 조문을 갔다. 분방(粉坊) 유리가(琉璃街) 극북도(極北道) 서쪽에 집이 한 채 있는데, 역시 일곱 차례나 조문을 갔다. 예전에 급고사의 그 집에 종인부(宗人府)의 종승(宗丞)으로 있던 조학민(曹學閩)이 살았는데, 막 이사 들어가 하루 밤에 하인 두 명이 갑자기 죽어나갔기에 조학민은 두려운 나머지 급히 다른 곳으로 옮겨 갔다. 또 예전에 분방 유리가의 그 집에 교수(敎授) 소대생(邵大生)이 살았는데, 대낮에 종종 변고가 일어났다. 소대생은 본래 담이 큰 사람이라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결국 그도 그곳에서 죽었다. 여기에는 또 어떤 이치가 있는가?

유문정(劉文正) 공이 말했다.

“주공이 일찍이 점을 쳐서 도읍을 정했다는 기록이 《서(書)》에 보이고, 점을 쳐서 길일을 택해 출행했다는 기록이 《예기(禮記)》에 보이는데, 진실로 길흉이 없다면 성인들은 왜 점을 보았겠는가? 다만 [성인들이 사용한 점복술은] 오늘날의 술사들이 알 수 있는 바가 아니다.”

이것이야말로 진실로 공평한 지론이다.

錢文敏公曰: “天之禍福, 不猶君之賞罰乎? 鬼神之鑒察, 不猶官吏之詳議乎? 今使有一彈章曰: ‘某立身無玷, 居官有績. 然門徑向凶方, 營建犯凶日, 罪當謫罰.’ 所司允乎? 駁乎? 又使有一薦牘曰: ‘某立身多瑕, 居官無狀. 然門徑得吉方, 營建値吉日, 功當遷擢.’ 所司又允乎? 駁乎? 官吏所必駁, 而謂鬼神允之乎? 故陽宅之說, 余終不謂然.” 此譬至明. 以詰形家, 亦無可置辯.

然所見實有凶宅. 京師斜對給孤寺道南一宅, 余行弔者五. 粉坊琉璃街極北道西一宅, 余行弔者七. 給孤寺宅, 曹宗丞學閩嘗居之, 甫移入, 二僕一夕並暴亡, 懼而遷去. 粉坊琉璃街宅, 邵敎授大生嘗居之, 白晝往往見變異. 毅然不畏, 竟歿其中. 此又何理歟?

劉文正公曰: “卜地見《書》, 卜日見《禮》, 苟無吉凶, 聖人何卜? 但恐非今術士所知耳.” 斯持平之論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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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주(滄州) 사람 반반(潘班)은 서화에 뛰어나 자칭 황엽도인(黃葉道人)이라 불렀다. 하루는 반반이 친구 집 서재에서 자는데, 벽 사이로 낮은 목소리가 들렸다.

“당신이 오늘 저녁에 다른 사람과 함께 자지 않으면 제가 나가 당신을 모실게요.”

반반이 깜짝 놀라 서재를 뛰쳐나오자, 친구가 말했다.

“이 서재에는 오래 전부터 예쁜 여자 요괴가 살고 있는데, 해를 끼친 적은 없네.”

후에 친구가 가까운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이야기했다.

“반반 그 친구는 어쩌면 수재로 곤궁하게 살다 죽을 지도 모르겠네. 이 요괴가 귀신인지 여우인지 도대체 어떤 물건인지는 모르겠지만, 저속한 사람이 머물렀다면 나타나지 않았을 걸세. 또한 부귀한 사람이 와도 나오지 않았을 걸세. 그 요괴는 회재불우한 선비가 와야만, 비로소 나와 잠자리를 청하네.”

훗날 과연 반반은 뜻을 이루지 못한 채 죽었다.

십 년이 지난 어느 날 밤 갑자기 서재 안에서 울음소리가 들리더니 이튿날 광풍이 불어 오래된 살구나무를 넘어뜨렸다. 이로부터 그 요괴는 더 이상 나타나지 않았다.

외조부 장설봉(張雪峰) 선생께서 일찍이 이렇게 농담하셨다.

“그 요괴는 아주 아름다웠을 뿐만 아니라 그 견식도 일반 아낙네보다 높았을 게야.”

滄州潘班, 善書畫, 自稱黃葉道人. 嘗夜宿友人齋中, 聞壁間小語曰: “君今夕無留人共寢. 當出就君.” 班大駭, 移出, 友人曰: “室舊有此怪, 一婉孌女子, 不爲害也.” 後友人私語所親曰:“潘君其終困靑衿乎! 怪非鬼非狐, 不審何物, 遇粗俗人不出. 遇富貴人亦不出. 惟遇才士之淪落者, 始一出薦枕耳.” 後潘果坎壈以終.

越十餘年, 忽夜聞齋中啜泣聲, 次日, 大風折一老杏樹, 其怪乃絶. 外祖張雪峰先生嘗戲曰: “此怪大佳, 其意識在綺羅人上.”