열미초당필기閱微草堂筆記 – 난양소하록灤陽消夏錄 1-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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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하현의 노유(老儒) 급윤초(及潤礎)는 옹정(雍正) 을묘년(乙卯年)에 향시를 보러 갔다가 저녁에 석문교(石門橋)에 갔다. 마침 객사는 모두 차 있고 방 하나만 남아 있었는데, 그 방의 창문이 마구간 쪽으로 나 있어 감히 머물려고 하는 사람이 없었기에 급윤초는 잠시 그곳에 여장을 풀었다. 그러나 말들이 펄쩍 뛰는 바람에 밤에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인적이 조용해지자 돌연 말들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급윤초는 평소 잡서(雜書)를 즐겨 보았던 터라 [말이 이야기하는 소리를 듣게 되자], 먼저 송(宋)나라 사람의 설부(說部) 가운데 소가 방죽 아래서 이야기했던 사건[堰下牛語事]을 떠올리며 [지금 이 일이] 귀신이 난동을 피워 일어난 일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숨죽인 채 그 이야기를 들었다.

한 말이 말했다.

“오늘에서야 비로소 굶주림을 참는 고통을 알겠구나. 생전에 내가 속여서 감추어둔 꼴 먹이 돈은 지금 어디에 있단 말인가?”

그러자 다른 말이 말했다.

“우리들은 대부분 마부에서 말로 태어났소. 죽어서야 겨우 알게 되고 살아서는 그것을 깨닫지 못하니 가히 탄식할 만하오.”

그 말에 말들이 모두 흐느껴 울었다. 그러자 또 다른 말이 말했다.

“저승 판관도 그다지 공평하다고는 할 수 없소. 왕오(王五)는 어째서 개로 태어나게 했단 말이오?”

이에 한 말이 말했다.

“저승사자가 일찍이 말하기를, 그 사람의 처와 두 딸이 모두 음란해서 그의 돈을 훔쳐 죄다 정부(情夫)에게 주는 바람에 그의 죄가 반으로 줄어들게 되었다고 했소.”

그러자 또 다른 말이 말했다.

“정말 그러하네. 죄에도 경중이 있네. 강칠(姜七)은 돼지로 태어나 도살되는 고통을 받았으니, 그 신세가 우리보다 더 말이 아니네.”

급윤초가 갑자기 기침을 가볍게 하는 바람에 말소리가 조용해졌다. 급윤초는 항상 이 일을 예로 들어 마부들을 타일렀다.

交河老儒及潤礎, 雍正乙卯鄕試, 晩至石門橋. 客舍皆滿, 惟一小屋窓臨馬櫪, 無肯居者, 姑解裝焉. 群馬跳踉, 夜不得寐.

人靜後, 忽聞馬語. 及愛觀雜書, 先記宋人說部中有堰下牛語事, 知非鬼魅, 屛息聽之. 一馬曰: “今日方知忍飢之苦. 生前所欺隱草豆錢, 竟在何處?” 一馬曰: “我輩多由圉人轉生, 死者方知, 生者不悟! 可爲太息.” 衆馬皆鳴咽. 一馬曰: “冥判亦不甚公. 王五何以得爲犬?” 一馬曰: “冥卒曾言之. 渠一妻二女並淫濫, 盡盜其錢與所歡. 當罪之半矣.” 一馬曰: “信然. 罪有輕重. 姜七墮豕身, 受屠割, 更我輩不苦也.” 及忽輕嗽, 語遂寂. 及恒擧以戒圉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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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게 시첩이 한 명 있었는데, 그녀는 평생 동안 욕이라곤 하지 않았다. 그녀가 말했다.

“제가 직접 본 일인데 저희 조모께서는 평소 욕을 잘하셨습니다. 후에 아무 병도 앓으시지 않았는데, 갑자기 혀가 썩기 시작하더니 목까지 썩어 들어가 먹지도 말하지도 못하게 되었습니다. 조모께서는 며칠을 그러시다가 돌아가셨습니다.”

余一侍姬, 平生未嘗出詈語. 自云: “親見其祖母善詈. 後了無疾病, 忽舌爛至喉, 飮食語言皆不能. 宛轉數日而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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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사람이 집에서 잠을 자다가 어쩌다 늦게 일어나 처첩을 불렀으나, 아무도 오지 않았다. 하녀에게 물어보았더니 어떤 젊은 사내를 따라 함께 갔다고 했다. 칼을 들고 뒤쫓아 가 세 사람을 나란히 목 베어 죽이려는 순간 젊은 사내가 돌연 사라졌다. 한 손에는 탁발을, 다른 한 손에는 석장(錫杖)을 든, 붉은 가사(袈裟)를 걸친 노승이 그 칼을 가로막으며 말했다.

“당신은 아직도 깨닫지 못했소? 당신은 이기심도 지나치고, 질투심도 많으며, 다른 사람들이 알아채지 못할 정도로 아주 간교하오. 귀신들은 숨은 악을 싫어하여 당신의 두 부인을 시켜 이러한 행동을 하게 해서 당신에게 알리려고 했을 뿐, 그들에게 무슨 죄가 있겠소?”

노승 역시 말을 다 하고는 사라졌다. 그 사람은 묵묵히 두 부인을 데리고 [집으로] 돌아왔다. 그러자 두 부인이 말했다.

“그 젊은 사내는 애당초 일면식도 없고, 그렇다고 사랑하지도 않았어요. 그런데 갑자기 꿈을 꾸듯 멍하니 그를 따라 가고 있었어요.”

이웃 사람들도 그렇게 말했다.

“두 부인께서는 음탕한 사람도 아니고 평소 그 사내를 알지도 못하는데, 어찌 기꺼이 그 사람을 따라 나섰겠어요? 또한 음탕한 사람이라면 반드시 사람들을 피해 달아나야 하는데, 어찌 벌건 대낮에 공공연하게 걸어가면서 마치 누군가가 쫓아오기를 기다리는 사람처럼 느릿느릿 걷겠습니까? 신의 꾸지람이라면 믿을 만 하오!”

그러나 끝내 그 죄악을 밝힐 수 없었는데, 정말 숨은 악이 있나보다.

有某生在家, 偶晏起, 呼妻妾不至. 問小婢, 云並隨一少年南去矣. 露刃追及, 將騈斬之, 少年忽不見. 有老僧衣紅架裟, 一手托鉢, 一手振錫杖, 格其刀曰: “汝尙不悟耶? 汝利心太重, 忮忌心太重, 機巧心太重, 而能使人終不覺. 鬼神忌隱惡, 故判是二婦, 使作此以報汝, 彼何罪焉!” 言訖亦隱. 生黙然引歸.

二婦云: “少年初不相識, 亦未相悅. 忽惘然如夢, 隨之去.” 隣里亦曰: “二婦非淫奔者, 又素不相得, 豈肯隨一人? 且淫奔必避人, 豈有白晝公行? 緩步待追者耶. 其爲神譴, 信矣!” 然終不能明其惡, 眞隱惡哉!